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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반진반 Mar 10. 2023

JMS를 잡은 건 '용감한' 언론이었다

멍청한 언론이 득세하는 시절 

최근 넷플릭스에서 <나는 신이다>라는 다큐멘터리가 화제다. JMS 정명석을 비롯한 몇몇 사이비 종교를 정면으로 다룬 모양이다. 지상파가 아니라 수위가 꽤 높다고 한다.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 와중에 요 며칠 사이 지인들로부터 메시지를 몇 개 받았다. 다큐가 인기를 끌면서 내가 옛날에 제작했던 뉴스 링크가 돌아다닌다고 했다. 열어봤더니 15년 전 뽀송뽀송한 내가 스튜디오에 앉아 언론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어마어마한 이야기를 아주 확신에 차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JMS 관련 아이템이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누구나 그렇듯 어릴 때는 확신이 가득한 법이다. 그나저나 참 뽀송하다. 

 https://news.kbs.co.kr/mobile/news/view.do?ncd=1503798 


JMS와의 대단찮은 인연은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뭘 했다고 나이가 이렇게 많은가.) 


대학에 JMS라는 동아리가 생겼다. JMS는 열심히 활동해 회원 모집에 열을 올렸고, 동아리연합회(동연)에 정식으로 등록을 신청했다. 당시는 정명석이라는 인간(이라는 단어가 어색할 수도 있겠다)에 대해서 알려진 바가 별로 없었다. 다만 이단이라는 얘기가 좀 돌았다. 다른 종교 관련 동아리(특히 기독교 계열 동아리)에서 극심하게 반대했다. 나 같이 별 관심 없는 학생들이야 그러거나 말거나였다. 격론 끝에 정식 등록은 허용되지 않았고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천만다행이다.) 그리고 잊어버렸다. 


기자질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아마 2003년쯤이었을 거다. JMS 관련 제보를 받은 적이 있었다. 이미 몇 년 전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방송을 했던 아이템이라 큰 관심은 없었다. 기자들은 남들이 이미 보도한 건 극도로 싫어한다. (피디는 좀 덜하다.) 만약 중요한 문제라면 남들이 했든 안 했든 더 깊이 취재를 해서 보도를 하면 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새로운 내용이 없으면 아이템이 아예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 일이라는 게 쉽지 않다. 방송 한 번 나갔다고 금방금방 해결이 되지 않는다. 세상이 변하는 데는 시간이라는 것이 걸린다. 그렇게 말이 많았던 JMS만 해도 아직 활동을 하고 있지 않나. 당시 그알은 JMS와 길고 긴 법적 분쟁을 진행하고 있었다. 기자로서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픈 아이템이다. 제보자는 나중에 해외로 정명석을 체포하러 직접 갈 정도로 절실한 분이었다. 제보자는 끊임없이 기자인 나를 접촉했고 설득했다. 결국 어찌어찌 취재를 해서 KBS 뉴스에 내보냈다. 


큰 기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자극적인 내용의 사건 기사였고 그 정도에 맞게 취재를 했다고 생각했다. 보도가 나간 뒤 제보자와도 약간 거리를 뒀다. 제보자가 워낙 열정적이어서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었고, 사이비 종교 쪽에 큰 관심이 없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부족했다.) 그리고 또 잊어버렸다.   


몇 년이 흐른 2008년 제보자에게 갑자기 연락이 왔다. 조선 연합 기자들이 JMS에 무릎을 꿇었다는 내용이었다. (마침 나는 KBS <미디어 포커스>라는 매체 비평 프로그램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조선일보 기자와 부장이 카메라 앞에서 사과문을 낭독하는 영상까지 있었다. 보통 일은 아니었다. 우리 언론은 사과 안 하기로 명성이 자자하다. 더구나 그 콧대 높은 조선이 이렇게 빌다시피 사과를 하다니. 뭔가가 큰 오보를 했구나, 생각했다.  


확인해 보니 그게 아니었다. 


조선일보, 연합뉴스 기자가 쓴 문제의 기사는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정명석이 해외에서 송환된다는 아주 간단한 스트레이트 기사였다. JMS 측에서 오보라고 항의를 했다는데 그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조선일보 측에서 철저하게 입을 다물었기 때문이다. 조선은 기사를 삭제하고, 사과문을 낭독하고, 정정기사를 써줬다. 따지고 보면 무릎을 꿇은 게 아니라 발가벗고 오체투지를 한 셈이다. 


무서웠을 거다. 그런 사람들 실제로 만나보면 섬찟하다. 기사가 맘에 들지 않으면 집단으로 몰려와 시위를 한다. 사무실에 난입하는 건 흔한 일이다. 물리적인 위력이 느껴진다. 삼성이나 검찰은 강한 권력이지만 양아치는 아니다. 두렵긴 하지만 예측이 가능한 권력이다. 하지만 사이비 종교는 어떤 짓을 저지를지 가늠이 되지 않는 집단이다. 밤길에 뒤통수가 서늘하다. 조선일보 기자가 인간적으로는 이해가 된다. (하지만 당시 똑같은 상황에서 동아일보 기자는 자존심을 지켰다. 기사도 지켰다.) 


나도 별 다르지 않다. 짧은 기사를 쓰기는 했지만, <미디어 포커스>에서 조선일보가 비겁하다고 일갈했지만, 내가 한 일은 없다. 의무감으로 잠깐 취재하고 곧바로 잊어버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호소했지만 그냥 넘겼다. 내가 관심이 없는 분야라는 이유로. 크게 기사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는 개인적으로 사이비종교와 관련된 선정적인 프로그램들을 그렇게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자극적인 소재를 취재하는 것은 거의 대부분 시청률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류의 고발 프로그램들은 피해자의 진술에 의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증거라고 할 만한 게 있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사실 관계가 듬성듬성할 수밖에 없다. 필연적으로 보도의 완성도가 떨어지게 된다. 이후에는 소송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내가 선호하는 쪽은 이른바 '엄밀하고 냉정하고 건조한 탐사보도'다. 영화 <스포트라이트>에서 다룬 보스턴 글로브의 ‘사제 성범죄’ 보도 같은 거 말이다. 피해자의 진술이 아니라 자료와 데이터를 통해 꼼짝달싹할 수 없는 증거를 잡아 내고, 가해자의 시인을 받아 내고, 결국 시스템의 개혁을 이끌어 내는 수준 높은 탐사보도.

   

하지만 이번에 내가 취재한 JMS 관련 동영상을 다시 보면서, 실제로 세상을 바꾸는 건 '수준 높은 탐사보도'가 아니라 가끔은 '용감한 보도'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협박에 굴복하고, 누군가는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때, 어떤 언론인은 피해자의 고통을 진심으로 들어주고, 취재하고, 보도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피디가 그런 사람일 거다. 얼마나 고초를 겪었을지 눈에 선하다.) 그리고 그런 언론이 결국 세상을 조금이나마 바꾼다. 좋은 쪽으로. 


언론은 엄밀해야 하고, 냉철해야 하고, 건조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그렇다. 그런데 언론이 용감하지 않으면 제 아무리 엄밀하고 냉철해도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물론 용감하기만 한 언론은 또 다른 문제다. 청담동 가라오케에서 윤석열을 봤다고 외칠 수 있는 건 용감한 게 아니라 멍청한 거다. 


용감한 언론인은 드물고, 멍청한 기레기가 득세하는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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