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정주행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농반진반 Feb 10. 2023

예상하지 못한 이부진 백일장

대상 수상작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지난 8일 아들 중학교 졸업식에 참석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상당수 언론이 관련 기사를 썼다. 네이버에서만 50개 정도의 기사가 검색이 된다. 매우 다양한 내용과 관점의 기사들이었다. 과거의 유물이라고 할 수 있는 ‘재벌 예찬’이라는 획일성을 벗어난 우리 언론의 다양성은 매우 칭찬받을 만하다. 언론이 주목한 '지점들'은 아래와 같다.

  

내로라하는 언론과 기자들이 참여하는 삼성 백일장은 꽤 자주 열리는 행사다. 그런데 이번 졸업식은 예상하지 못했다. 미국에 있어서 촉이 떨어진 모양이다.


1. 이부진의 각별한 자식 사랑

상당수 기사는 제목에서 이부진 앞에 ‘자식 사랑’ ‘각별한’ 등의 수식어를 배치했다. ‘각별하다’는 형용사의 사전적인 뜻은 ‘유달리 특별하다’이다. 대다수의 부모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자녀의 졸업식에 참석한다. (재벌들 별로 안 바쁘다. 아버지 이건희는 짬짬이 집으로 여성들을 대거 초청해 온몸으로 실행하는 파티를 벌였고, 오빠 이재용도 병원에서 집에서 프로포폴을 투약하면서 휴식을 즐겼다. 이부진이 이 둘보다 바쁠 이유는 크게 없다.) 좀 더 '각별한' 취재가 필요했다. 아들을 위해 아침에 주스를 따라줬다든가, 졸업식이 끝나고 평생 처음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였다든가 정도의 팩트는 있어야 했다.   


2. 이부진의 소탈한 면모

다른 학부모와 같이 나란히 앉아서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격의 없는 모습을 보였다, 학부모들과 사진을 찍었다, 학부모 사이에서 인기 만점이었다는 등의 내용이다. 옆 사람이 아니라 앞사람과 이야기를 나눴으면 뉴스속보 뜰 뻔했다. 아깝다.

 

3. 이부진의 특별한 패션 감각

크롭 기장의 트위드 재킷에 여유로운 핏의 부츠컷 데님 팬츠, 심플한 가죽 소재의 가방, 트위드 재킷은 프랑스 명품인 샤넬 2019 가을·겨울(F/W) 제품, 밑단 부위의 프린지 디테일이 돋보인다. 한국말인가 쏘련말인가. 보그체 기사를 이런 곳에서 만날 줄이야.  


4. 이부진의 연예인 뺨치는 외모

“24살 같다”는 제목의 기사가 압권이다. 기사를 쓴 기자는 4살 같다.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5. 삼성 갤럭시 홍보

이부진이 졸업식장에서 삼성 갤럭시를 꺼내서 찍었다는 내용도 대서특필. 많은 기사는 갑자기 이부진이 사용한 갤럭시의 스펙과 가격을 사진과 함께 자세히 실었다. 광고성 기사의 모범 사례들이다. 그런데 이것은 앞광고인가 뒷광고인가 옆광고인가.  


(깜짝 문제) 그렇다면 이 기사는 경제, 사회, 교육… 어떤 면으로 분류됐을까?
①이부진은 기업인이므로 경제면이다.
②졸업식은 전통적으로 사건 기사이므로 사회면이다.
③졸업식은 교육기관에서 벌어진 일이므로 교육면이다.
④졸업식은 핑계고 이부진의 패션과 관련된 기사이므로 패션/생활면이다.
⑤웃기는 기사이기 때문에 유머 코너에 들어간다.  


MBN이라는 방송국이 있는 모양이다. 여기서 하는 ‘뉴스파이터’라는 프로그램. (시청자랑 싸우려고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이부진 사장의 졸업식 참석을 무려 8분이나 다뤘다. 무척 흥미로운 프로그램이다. 요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시는 이수정 교수님과 몇 년 전부터 활약이 두드러진 최진봉 교수님도 출연하신다. 잠깐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MBN의 <뉴스파이터>. 시청자와 싸우겠다는 생각으로 만든 것이 분명하다.


<MBN 뉴스파이터>
►꼭지 제목 : 아들과 기념사진 찍는 이부진… 왜? (MBN은 졸업식에서 엄마와 아들과 기념사진을 왜 찍는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진행자 : 엄훠 (이분은 엄훠라는 감탄사를 사랑한다.) 세상에 이분이 그분 아니에요? 호텔 신라 사장, 그분↗.
►기자 : 네 그분 맞습니다. 이날은 CEO가 아니라 학부모의 모습.
►진행자 : 엄훠 대박사건. 영상까지 있어요. 엄훠 엄훠 이수정 교수님. 이부진 사장의 자식 사랑이 평소에 잘 알려져 있었나요?
►이수정 교수 : 아들 바보다 이런 얘기가 있을 정도로. 자식 사랑 끔찍한 것으로 알고 있고요. (이재용도 자식 관련된 기사만 나오면 딸 바보라고 불린다. 삼성가 3세들은 모두 바보인 건가.)  졸업식 입학식 발표회 다 갔다고 알려지고 있고…
►진행자 : 다 갔어요? 엄훠.
►최진봉 교수 : 한 가지 눈길을 끈 건 저 휴대전화예요. 삼성전자가 한정판으로 마련한 휴대전화였다고 합니다.
►허주연 변호사 : 캐주얼하면서도 격식을 갖춘 패션이라는 평가가 많았고요. 머리숱 부럽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합니다.


내가 소설 <삼성동 하우스>를 쓰게 된 것도 2021년 이재용이 감옥 들어갔을 때 언론들이 대거 참여해 1년여 동안 벌인 ‘백일장’ 때문이었다. 소설 말미에 쓴 '작가의 말'에서 당시 백일장 대상은 조선일보의 <매일 웃통 벗고 구치소 운동장을 달렸다>는 역작이라고 밝혔다. 이번에는? 매일경제의 <샤넬 재킷에 청바지, Z플립…아들 졸업식서 포착된 ‘엄마 이부진’>으로 하겠다. 제목이 다소 길고 장황하지만, 기사 하나에 앞에서 말한 모든 ‘지점들’을 다 포괄하겠다는 의지가 가상하다. 대상 수상자에게는 <삼성동 하우스>를 서점에서 살 수 있는 권리를 드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JMS를 잡은 건 '용감한' 언론이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