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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반진반 Mar 07. 2023

원작을 읽고서야 이해한 <사랑의 이해>

설탕을 잔뜩 쳤더니 고구마가 돼 버렸다

고구마 중에서도 퍽퍽하기로 일등인 밤고구마 같았던 <사랑의 이해>를 보면서 사랑은커녕 드라마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해하기 힘들다고 재미없다는 건 아니다. 재미있게 봤다.) 아주 친했던 사람인데 이름이 기억 안 나거나, 분명히 와 봤던 식당인데 언제 누구랑인지는 알 수 없을 때 느낌이랑 비슷했다. 이거 좀 이상한데. 아닌 거 같은데. 드라마를 보면 명치 끝이 간질간질하고 자꾸 고개를 외로 꼬게 됐다. 뭔가 이유를 알 것도 같은데 혀끝에 딱 걸려서 말로 나오지 않는 상황.


(아래 내용에는 드라마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지만요.)


저게 말이 되냐, 저건 너무 나갔다, 무리다 무리. 드라마를 보면서 말이 많아졌다. 같이 보는 사람이 시끄럽다고 눈을 흘겼다. 대사나 화면의 느낌은 나의 해방일지나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풍인데 내용은 아침 막장 드라마다. 그런데 나는 막장 드라마, 좋아한다. 따지고 보면 박찬욱의 아가씨나 봉준호의 기생충도 막장 스토리 아닌가. 그레이 아나토미나 하우스 오브 카드는 막장이 아니었나.

 

온갖 종류의 막장 백신으로 100차 접종까지 마친 내가 스토리가 다소 무리하다고 드라마를 함부로 평가하지는 않는다. 쟤가 쟤랑 왜 자? 쟤랑 쟤가 왜 만나? 이 정도 멘트는 불만이 아니라 그냥 드라마 볼 때 내뱉는 날숨에 불과하다. 물론 이 드라마의 경우 방송국 놈들의 낚시질이 가끔 지나쳤지만 그것도 수퍼항체 보유자에게는 애교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를 보면서 계속 까끌까끌했던 건 뭔가 다른 게 있다는 이야기다. 그게 뭔지 궁금했고, 결국은 원작 소설까지 읽게 됐다.  


드라마 사랑의 이해는 은행에서 일하는 네 명(사실은 다섯 명)의 남녀의 얽히고 섥힌 치정이 기본 줄거리다. 이 네 명은 부유층부터 극빈층까지 각 계급을 대표한다. 위 계급부터 순서대로 <여1-남1-여2-남2>이다. 여1과 남2는 다소 극단적인 상류와 하류에 속해 있다. 중간에 있는 남1-여2가 사귀면 딱 좋을 것 같은데 그럼 드라마가 안 된다. 1-1이 사귀고, 2-2가 동거하고, 3이 끼어들고 난리 부르스를 춘다.


남1는 유연석이 연기한 하상수 대리, 여2는 문가영이 맡은 안수영 주임이다. 하상수는 행원이고 안수영은 텔러다. 남자 계급이 한 단계 위다. 둘이서 썸을 타다가 뭔가 고백을 할 타이밍에 저녁을 먹기로 했다. 남자가 약속에 늦었는데 식당 문 앞에서 잠깐 망설였다. 그걸 본 여자가 삐져서 사라졌다. (조금 너무한다고 생각했지만 뭔가 다른 이유가 있다고 추측했다.) 여자는 자기 보다 계급이 낮은 남2와 연애를 하고 남자는 하이클라스 여1과 사귄다. 남1과 여2, 하상수 안수영은 계속 될 듯 말 듯 보는 사람 애간장을 태운다. 안수영은 엄청난(?) 사건을 기획하고 실행해 모든 관계를 파국으로 몰아간다.


헷갈리지 않게 반전했다. 왼쪽부터 여1 -> 남1 -> 여2 -> 남2


주인공 안수영과 하상수는 매우 매력적인 인물이다. 당연하다. 드라마 주인공이니까. 능력과 외모는 기본이고, 경우가 바르고, 예의도 있으며, 가끔은 강단도 있다. 하상수는 아이스하키에 기가 막히고, 안수영도 음악과 미술에 조예가 깊다. 이 와중에 배려심도 넘치고 사려 깊고, 결정적으로 착하다. 모두 부모를 사랑하고(안수영은 상처가 있지만 결국은 치유하고 관계를 회복한다), 고객인 시장 사람들에게 허물 없이 대할 수 있는 여유와 인성을 가진 인물이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두 주인공은 첫 눈에 반해 서로에게 감정을 품는다. 번번히 엇갈린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감정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긴 엇갈림 끝에 둘은 다시 만난다. 첨밀밀 같은 스토리다.


중간에 벌어지는 큰 사건이 핵심이다. (안수영이 하상수의 절친과 잔다.) 모든 관계가 정리되고 리셋된다. 그런데 무엇을 위한 기획인지, 어떤 감정에 따른 파국인지는 모호하다. 심지어 그 사건은 연극이었음이 사후에 밝혀진다. 안수영이 왜 연극을 했는지 하상수의 절친은 왜 손해를 보면서까지 연극에 동의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드라마의 에필로그에서 주인공 안수영은 팬시한 카페를 하면서 아주 여유롭고 팬시한 인생을 산다. 우연히 하상수를 다시 만나 서로 이야기 한다. 그때 망설였던 이유가 뭘까 아쉬워 한다. 그리고 사랑이란 ‘별거 아닌 걸 함께 하는 거’라는 역시 팬시하고 안전한 결론으로 막을 내린다. 팬시하게 설정된 인물을, 팬시한 에피소드 속에 넣고, 팬시하게 결론을 내린 팬시한 드라마다.


그런데 말했듯이 까끌까끌하다. 여운이 길다는 말이 아니다.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마구 뒤섞여 있는데 드라마는 거기에 크게 관심이 없는 것 같다는 말이다. 도대체 이 팬시한 드라마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계급 설정은 무엇이고, 팬시한 에피소드 중간중간 벌어지는 섬뜩하고 서늘한 사건들은 또 무엇인가.  


원작을 보니 이해가 됐다. 드라마에 나오는 필요 이상으로 달달한 에피소드는 소설에는 없는 거다. 주인공 하상수와 안수영은 모범적인 생활인이긴 하지만 드라마에서처럼 배려심 넘치는 착한 인물이 절대 아니다. 첫눈에 반하지도 않았고 서로에 대한 감정을 계속 끌고 가지도 않는다. 현실적인 계산에 따라 행동하고 좌절하고 다시 시작할 뿐이다. 결정적으로 안수영은 하상수의 절친과 실제로 잔다. 연극이 아니다. (드라마는 그렇게 만들 수 없었다. 전혀 다른 인물이기 때문이다.) 책 표지에 나오는 것처럼 사랑을 원하지만 사랑만 원하는 게 아니었다.


그럼 이해가 된다. 안수영과 하상수가 왜 다른 사람을 선택했는지. 그 선택이 왜 파국을 맞이하는지. 둘의 선택은 드라마에서 그린 것처럼 결코 자기 기만이 아니었다. 두 주인공은 헤어지는 게 맞다. 소설은 둘이 다시 만나는 데 크게 관심이 없다.


원작은 훌륭한데 드라마는 그렇지 않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가내수공업인 소설과 대공장산업인 드라마가 같을 수는 없다.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달달한 장치는 필수적이다. 예술적인 야망보다는 산업적으로 안전한 길을 택하는 게 당연하고 그게 나쁜 일이 아니다. 심지어 이 드라마는 대사도 좋고 연기도 좋고 연출도 좋다.


다만 이질적인 것들을 섞다 보면(그 과정에서 엄청난 합리화 과정이 필요했을 거다), 그리고 그 블렌딩이 성공적이지 않으면, 뭔가 까끌까끌한 느낌이 남을 수밖에 없다. 아마 소설을 먼저 읽었더라면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 소설을 쓴 작가는 드라마를 어떻게 생각했을지 궁금하기는 하다.


*만약 다른 견해를 가지고 계신다면 당신이 전적으로 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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