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에 영덕을 찾았다. 실은 겨울에도 한 번도 가 본 기억이 없다. 영덕대게는 먹어도 영덕에는 안 가본 것이다. 그래서 아무도 안 갈 것 같은 한여름의 영덕을 방문했다.
영덕 삼사해상공원에 차를 세우고 내리자 정말이지 나를 태워버릴 것 같은 햇살이 쬐고 있었다. 다행히 멀리 보이는 바다가 조금은 더위를 달래 주었다. 하지만 별로 볼 건 없었다. 현지 주민의 표현을 빌리자면 '모텔과 음식점만 많은 커다란 공원'이었다.
한 15분을 걷다가 문을 연 식당에 들어갔다. 주문한 것은 미주구리 횟밥 1인분. 미주구리가 뭔지도 모르고 시켰다. 꼬들꼬들 씹히는 뼈가 인상적인 횟밥이었다. 가격은 만원. 더위를 피하며 시간을 보냈다는 것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삼사해상공원 바로 옆에는 어촌전시관이 있다. 입장료는 성인 2,000원. 그럭저럭 볼 만한 것들이 많았다. 그리고 중요한 건 볼 게 많냐 아니냐가 아니다. 무조건 '더위'를 피할 수 있으면 장땡이다. 찬찬히 다 둘러보는데 1시간 가까이 걸렸다. 세 개의 층에 해녀, 대게, 은어, 고대 생물 등에 관하여 전시를 해 놓고 있었다.
어촌전시관의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길에 강구항이 바라보인다. 시원한 경치에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어촌전시관을 나와 강구항을 찾아갔으나 오히려 강구항은 멀리서 볼 때가 좋았다. 차를 몰고 갔는데 길이 좁고 주차공간이 부족한데다 길에 빼곡한 가게 앞마다 호객꾼이 서 있었다. 운전자와 어떻게든 시선을 마주치려 하는 그들의 몸에서 풍겨 나는 기세가 피로하게 느껴졌다. 차에서 내리지 않고 곧바로 해맞이 공원으로 내빼버렸다.
이렇게 바닷가를 따라 달리는 영덕 20번 지방도(맞나?). 블루로드라고도 부르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런 바닷가 드라이브 도로의 공통점은 운전자는 바다를 보기 힘들고 동승자만 볼 수 있다는 것. 도로가 구불구불하고 민박과 바닷가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 운전에 주의해야 한다.
해맞이공원에 가면 다소 당황스러울 수도 있는데 도로가 이어지는 절벽에다가 쉼터 같은 곳 만들어 놓고 그걸 공원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해를 못 볼 건 아니지만 뭔가... 삼사해상공원에 쓸 돈을 여기가 투자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삼사해상공원보다도 해맞이공원에 훨씬 사람들이 많고 바다도 더욱 잘 보였다.
이 곳은 풍력발전단지. 해맞이공원에서 거리로는 몇 킬로 안 되지만 주야장천 산꼭대기로 올라야 하기 때문에 걸어서는 가지 않을 것을 추천한다. 위에 올라가 보면 풍력발전하는 곳이기 때문에 바람이 많이 불어 시원하다는 것 이외에는 볼 만한 걸 찾을 수가 없었다. 한 10분 머무르며 사진만 찍다가 곧바로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그다음 찾아간 곳이 영덕대게원조마을이라는 차유마을. 영덕대게원조마을이라니 뭔가 굉장한 게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은가? 실은 조용한 어촌마을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여름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겨울에는 과연 이 곳에 사람이 득실득실할는지. 어쨌거나 사람 많은 걸 좋아하지 않는 내겐 꽤나 좋은 인상을 주는 마을이었다.
차유마을의 식당들은 비수기라 그런지 영업을 하지 않는 곳이 많았는데, 그 와중에 한두 군데가 문을 열었기에 들어가 보았다. 혼자 갔으니 회나 게를 먹을 수는 없고 결국 고를 수 있는 거라곤 물회뿐. 그러나 이 12,000원짜리 물회는 정말 맛있었다. 설탕과 식초가 과하게 들어가지 않아 상큼한 단맛이 났고 물회를 다 먹은 뒤 소면을 말아먹어도 기대 이상의 맛이 났다. 이렇게 더운 여름날 물회 한 그릇만으로도 영덕에 대한 좋은 이미지는 한층 업 된다.
저녁을 먹고 나오니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서둘러 찾아간 마지막 여행지는 괴시 전통마을. 정도전의 스승인 목은 이색의 기념관이 있는 곳이라고 했다. 그냥 기념관만 덩그러니 서 있을 줄 알았는데 '전통마을'이라는 이름대로 그곳에는 많은 한옥이 있고 사람들이 여전히 살고 있었다. 거의 모든 집에 사람들이 살고 있어 어쩐지 그냥 관광지처럼 둘러보기는 죄송한 마음이 들었지만 한옥 사이로 난 길을 걷고 있으면 내가 조선시대에 온 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현대적인 구조물이 많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총 35km를 이동하는 약 6시간의 영덕 당일치기 여행을 마쳤다. 비록 무더위에 돌아다니기 힘들긴 하지만 원 없이 바다를 보고 바다 음식을 먹고 대게의 고장을 구경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