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은 왜 자국민들에게 공포를 주는 기관이 되었나

영화 <자백> 감상평

by 유송

지금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영화

정말 잘 만들었다. 이 시기에 이런 내용의 영화가 우리 사회에 반드시 필요했다.

요즘 사람들은 뉴스를 대개 SNS를 통해 소비한다. 혹은 포털사이트의 메인 화면을 통해서 제목만 훑어보기도 한다. 그래서 정치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어떤 정치인이 어떤 말을 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일이 많고 워낙 매일 생기는 일이 많아 금세 잊어버린다.

하지만 꼭 알아야 할 정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 사람들은 2시간 동안 극장에 앉아 스크린을 지켜봐야 하고, 그 영화가 2시간 내내 다루는 주제에 대해서 전문가 못지않게 상세하게 많은 내용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결과적으로 현 정부가, 정확히는 박정희 때부터 이어져온 간첩 조작이 21세기에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 그 더러운 내막을 알게 된다.


범죄의 주역을 영화의 주인공으로

이 영화의 출연진은 김기춘, 원세훈, 최승호로 되어 있는데 사실 더 많은 사람이 나온다. 간첩으로 몰린 유우성 씨와 그 동생 가려 씨,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의 검사인 이시원 검사 등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 남한에 간첩이 못 해도 2만 명은 된다는 국회의원의 발언과 그 발언에 동조하는 국정원장의 발언도 나오며, 국정원에서 말하는 대로 대서특필 하는 종편의 뉴스도 그대로 나온다.

한 마디로 간첩 조작 사건에 대한 역사적 기록물인 셈이다.

이시원 검사와 원세훈 국정원장, 김기춘 비서실장 등 많은 사람이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이렇게 만들고 있습니다. 종편은 그야말로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라고 말해주는.

많은 사건사고 기록이 사라진다지만 이 영화가 사라질까? 정부와 국정원에서 그 어떤 수단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이 영화의 존재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 고로 우리의 후손들까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그 주역은 누구인지 속속들이 알게 될 것이다.

이 영화의 주연으로 등장한 이들, 부끄러운 줄 아시라!


알면 알수록 구역질 나는 간첩 조작 행태

얼마 전 영화 <그물>을 보면서도 간첩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저 군사 분계 지대에서 가까운 곳에 사는 북한 어부는 배 고장으로 인해 남한으로 떠내려오고 곧바로 국정원에 끌려가 간첩이 아닌지 신문을 받는다. 그거야 당연하다. 북한 사람이 갑자기 남한에 왔으니 응당 조사를 해야 한다. 그러나 간첩이 아닌 사람을 간첩으로 만들기 위해 고문과 구타가 행해지고, 남철우가 저항하자 팀장과 원장은 이런 대화를 나눈다.

팀장: 더 세게 해야 뭐가 나오죠.
원장: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더 세게 하지.

원래 국정원에서 지향해야 하는 것은 원장의 태도다. 더 세게 해야 뭐가 나온다니, 그야말로 고문을 해서 자백을 받자는 이야기 아닌가? 적국의 간첩을 포획했다 할 때 간첩이 입을 다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도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입을 다물 수 있다. 이때 두들겨 패고 굶겨서 간첩이라는 자백을 받아낸다면 도대체 이것이 무슨 소용인가? 죽음에 대한 공포 앞에서 그 누가 자신이 간첩이 아니라고 끝까지 저항할 수 있단 말인가? 국정원은 첩보 능력을 강화해서 입국자든 밀입국자든 그들이 간첩이라는 증거를 찾을 수 있도록 해야지, 절대 폐쇄된 공간에서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아서는 아니 될 것이다.

<자백>에서 다루는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에서 국정원의 행태는 영화 <그물>에 나오는 것과 완전히 똑같다. 동생인 유가려 씨를 독방에 가두고, CCTV가 달려 있어 일어서서 샤워조차 할 수 없는 화장실을 사용하게 하고, 엄마 뻘의 수사관을 보내 때로는 두들겨 패고 때로는 부둥켜안고 울면서 사람의 정신을 피폐하게 하고 세뇌시킨다. 또 오빠가 간첩이라고 인정을 해야 오빠에게 도움이 되며, 오빠와 남한에서 같이 살게 해 주겠다면서 거짓말로 유혹한다. 세상에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우리는 때로 '반인반신의 딸이 통치'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농담하지만, 실은 지금이 유신 시대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엄청난 용기를 갖고 발로 뛴 최승호 PD에게 박수를

아주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논픽션 영화지만 그래도 종종 웃음이 나올 때가 있다. 바로 최승호 PD가 범죄자들을 향해 거침없이 마이크와 수첩을 들이댈 때다. 그는 집요하게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의 서류가 위조되었다는 것을 확인하러 중국 화룡시의 공안국을 들락거리고 영사를 방문하며, 원세훈 국정원장을 기다렸다가 사과하라고 엘리베이터까지 같이 타서 요구하며, 공항에서 김기춘 비서실장을 쫓아가 학원간첩단 사건에 대해 할 말이 없냐고 따진다. 관객이 조마조마해질 정도로 험악하고 긴장된 분위기지만 그의 발걸음과 질문은 거침이 없다. 그야말로 살아있는 기자정신, 대한민국 최고의 기자라 칭하고 싶다. 그가 아니었다면 누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영화를 만들겠는가? 게다가 영화의 엔딩까지 정말 완벽한, 영화 자체로서 좋은 작품이었다는 것도 강조하고 싶다.


국정원이 변해야 할 방향

여태까지 국정원은 어떤 기관이었는가? 걸핏하면 간첩이라며 탈북자나 정권 반대 세력을 붙잡아가서 두들겨 패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하는 공포의 기관이었다. '남산'이나 '설렁탕(코렁탕)' 같은 말은 지금도 사람들 사이에서 국정원의 횡포를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말로 쓰이고 있다.

그렇게 사람을 두들겨 패고 죽이면서 방첩활동을 잘했으면 모르겠지만 걸핏하면 조작임이 들통나 망신을 당하고 심지어는 외국에서도 방첩활동 중에 정체를 들키는 일까지 있었다. 그야말로 해야 할 일은 똑바로 못하면서 자국민들에게만 공포스러운 꼴사나운 기관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남한에 2만 간첩이 있는데 그걸 잡기 위해 더욱 수사 능력을 강화하겠다"이니 코웃음을 칠 수밖에.

설령 그 자의 말대로 남한에 2만의 간첩이 있다면 2만 명 중 단 하나도 제대로 잡지 못하는 국정원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 오늘 자로 해체해도 대한민국에 아무런 영향이 없는, 그야말로 쓰레기 조직인 것이다. 2만의 간첩이 없는데 2만이라고 과장했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국민의 안전을 의심케 하는 위험한 발언이고 말이다.

이제는 근거 없는 헛소리와 뒷돈 주고받아낸 증언, 수시로 행해진 폭행 같은 구시대적 행태를 버려야 한다. 이미 벌써 버렸어야 했는데 원세훈 국정원장으로 인해 악화되기만 한 행태다. 앞으로 이것을 전면 개혁하지 않을 거라면 2만 명 중 한 명도 못 잡는 국정원은 해체해 버리고, 전면 개혁할 거라면 정말로 백지상태에서 다시 시작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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