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요! 요즘 인터넷에서는 ‘아재’가 화제다. 옛날에 방영했던 만화의 한 장면이나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 사진 등을 올리고 “이거 알면 최소 아재”라며 아재를 구분짓는 글도 나타났다. 그런데 이런 글에 등장하는 만화나 장난감은 사실 그리 오래된 것들은 아니다. 그랑죠, 드래곤볼, 스네이크 척척 등 늦으면 90년생, 빨라도 80년생이면 알 만한 것들이다.
지금 30대 후반에서 20대 후반의 청년들이 알 법한 이 만화와 장난감을 알면 어째서 ‘아재’가 되는 걸까?
어릴 적 내게 아재는 5촌 당숙을 일컫는 말이었다. 아버지와 비슷한 연배의, 삼촌들보다는 조금 더 먼 친척. 그 당숙을 부를 때 외에는 써 본 적 없는 아재라는 말을 요즘 들어 이리 흔하게 접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심지어 내가 그 대상이 될 줄은 더더욱 몰랐다.
아재란 말이 유행하게 된 기원은 ‘아재개그’로부터인 것 같다. 최근 TV에 나오는 연예인들 중 옛날에 유행하던 말장난식 개그를 선보이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의 개그가 당시를 회상시키며 단숨에 ‘아재개그’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예를 들면 유해진이 “영상통화는 안 돼. 영하통화라면 몰라도. 더우니까~” 하는 게 바로 아재개그다.
그런데 대개 유치한 말장난인 아재개그의 여파는 순간의 유행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당시를 기억하고 공감하며 웃을 수 있는 시청자들이 아재로 분류되었고, 인터넷을 이용하는 다양한 연령대에서 이들을 아재로 지칭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다 보니 팔구십년생들이 인터넷의 주류 아재가 되고, 오히려 그보다 ‘진짜 아재’ 소리를 들을 사오십대 중장년층은 스스로를 ‘할배’로 지칭해야 하나 겸연쩍어 하는 것이 오늘날 인터넷 현장의 모습이다.
89년에 태어나 당당히 ‘온라인 아재’의 한 자리를 맡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현상 뒤에는 몇 가지 생각해 볼만한 원인이 있지 않나 싶다.
하나는 아재라는 말에서 풍겨나는 넉넉한 인간성, 푸근한 인상, 과거에 대한 향수 같은 것들을 사람들이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제나 돈을 따지고 경쟁하며 살아가야 하는 팍팍한 세상 속에서 ‘아재’란 말은 참으로 푸근한 인상을 주지 않는가?
아저씨를 친근하게 부르는 이 말은 요즘 ‘급식충’ ‘개저씨’ 같은 비속어가 횡행하는 가운데 보기 드물게 좋은 단어로 사람들 사이에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청년들이 스스로 청년이라는 이름의 ‘무게’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원래 청년이란 단어는 한자부터가 푸를 청에 해 년으로 파릇파릇한 젊은이들을 상징하는 것이지만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말이 힘들게 살아가는 청년들의 가슴을 찌른 뒤로 그 말이 그리 아름답지 만은 않게 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푸르지 못한 젊은이들은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는가. 제 스스로도 그러고 싶지는 않았던 것을. 비좁은 고시원에서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사는 젊은이들은 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 노래>만을 홀로 조용히 외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러한 젊은이들은 스스로를, 그리고 동년배 친구들을 ‘아재’로 지칭하며 “그래, 꼭 푸르러야만 하는 건 아니야. 너도 네 어깨에 짐을 내려 놓아. 우린 열심히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잖아. 함께 힘내자.”라고 각자 모니터 뒤의 푸근한 얼굴을 그리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아재 유행이 반갑고도 슬프다. 온 사회에 정이 넘쳐나고 청년들은 가슴을 활짝 펴고 살던 시대를 그리워 하는 그 마음에 동감하고, 이제는 항상 빛나야 한다는 청춘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그 마음에 다시 한 번 동감한다.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힘내자, 친구들아. 편히 놀자, 아재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