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살 찌는 이유
얼마 전 저탄수 고지방 식이요법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TV에서 다큐멘터리로 방영을 하고, 그 기반이 된 책 <지방의 역설>이 유명세를 탔습니다. 사람들은 지방을 마음껏 섭취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곧장 슈퍼로 달려가 버터와 고기를 잔뜩 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불룩한 배를 두드리며 만족스럽게 눕자마자 각종 매체를 통해 경고 메시지가 날아들었습니다.
저탄수 고지방 식이는 위험할 수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이런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언제는 A가 몸에 좋다고 했다가, A와 B를 같이 먹으면 몸에 안 좋다고 했다가, 그래도 A를 끓여서 먹으면 몸에 좋다고 한다.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먹어야 할지, 최첨단 과학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21세기에도 여전히 많은 과학자들과 의료인들이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섯 권의 책을 골라서 읽어봤습니다. 이 글은 해당 다섯 권에 대한 종합적인 감상이며, 한의사로서 어떠한 생각을 했고 어떠한 결론을 내리게 되었는지 밝히고자 하는 글입니다. 선택한 다섯 권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방의 역설
구석기 다이어트
무엇을 먹을 것인가
요리 본능
비만의 진화
이 책들은 같은 한의사들에게 추천받았고 대중적으로 이미 건강과 식이요법 분야에서 스테디셀러 혹은 베스트셀러에 올라있는 것들이기도 합니다. 이제 각각의 핵심 메시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지방의 역설
여태까지 지방은 그 이름이 우리의 배와 허벅지에 끼어 있는 지방과 같다는 이유로 무척 억울하게 살아왔다. 그러나 그것은 불행한 동음이의어일 뿐, 실제로는 지방을 섭취한다고 그 지방이 곧바로 사람의 지방이 되지는 않는다. 채식주의자가 식물이 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오히려 인체의 지방을 늘리는 것은 탄수화물에 대한 인슐린의 작용 때문이며, 따라서 현재 공급과잉인 탄수화물의 양을 줄여야 살도 빠지고 건강하게 살 수 있다.
구석기 다이어트
고지방 저탄수 다이어트는 틀렸다. 고단백 섭취야말로 건강해지는 길이다. 특히 단백질을 자연식품으로 섭취할 경우 적당량의 지방도 함께 섭취할 수 있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
고비율로 단백질을 섭취하는 것은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여태까지 어떤 과학자도 선뜻 발표하지 못한 놀랍고 무서운 사실이다. 저단백 식이를 하면 효소의 활성이 감소하고 이로 인해 암 발생이 억제된다. 사람은 채식을 해야 건강할 수 있다.
요리 본능
생식은 정말 몸에 좋지 않다. 불에 익히지 않은 음식은 몸에서 충분히 소화 흡수되지 않으며 맛 또한 좋지 않다. 인간은 불로 요리를 하면서 진화했고 따라서 화식을 해야 한다.
비만의 진화
인류가 지금 비만하게 된 것은 진화의 산물일 가능성이 크다. 즉, 예전에는 먹을 것을 구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최대한 영양을 몸에 축적하는 형태로 진화를 했는데 요즘은 먹을 것을 너무 구하기 쉽기 때문에 사람들이 만성적인 플러스 에너지 상태가 되어 살이 찌는 것이다.
이렇게 다섯 권의 핵심 메시지를 놓고 보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누구의 눈에나 보이는 것, 뭔가 보이지 않나요? 어처구니없게도 모든 저자가 학계에서 적잖은 명성을 누리고 있고 수많은 논문을 근거로 끌어와 쓴 책들이 주장하는 '사람에게 좋은 식단'이 일치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의 사실을 두고 여러 가지 주장이 있을 때 어느 주장이 가장 타당한가를 판가름하는 방법은 그 주장을 하는 근거가 어디에서 비롯하는지를 보고 그 타당성을 구체적으로 살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에는 그 방법을 쓸 수가 없습니다. 모든 책이 엄청나게 많은 논문을 조사했고 그것들을 근거로 합리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인간은 곡물 위주의 채식도 하고 단백질도 많이 먹고 지방까지 많이 섭취해야 할까요? 그건 그냥 '과식'에 지나지 않겠죠.
고단백, 고지방, 채식... 정말 장단점이 극렬하게 다른 이 식단과 그 식단에 대한 추천 논거들을 열심히 읽어본 후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결국 사람 개개인의 식습관과 건강 상태를 살피고
그에 맞는 조언을 해줄 수밖에 없다
너무 뻔한, 혹은 실망스러운 결론인가요? 하지만 이런 결론을 내린 데에도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다섯 권에서 주장하는 바는 비슷한 부분도 있고 극단적으로 다른 부분도 있지만 놀라운 점은 그들이 근거로 끌어와서 사용하는 '실험' 자체는 같은 실험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앳킨스의 실험이 있었고 프레밍햄 실험도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실험 결과를 두고서도 이들의 주장은 달랐는데, 그 이유는 실험 결과에 대한 '해석'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A를 두고서 "설탕과 지방을 많이 팔아야 하는 회사들의 로비를 통한 조작"이라고 한다면 또 한 사람은 같은 A를 두고서 "육류업계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라고 합니다. 결국 그들이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실험 결과나 당시 시대와 사회적 분위기에 대한 견해가 달라지기 때문에 주장하는 바도 바뀌게 된 것이죠. 그런 면에서 어느 누구도 절대적으로 옳다고는 할 수 없는 게 지금 시점에서의 식이요법에 대한 결론이 됩니다.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 책에서 지역별 식생활 차이 등을 언급하고 있지만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사람들의 식생활에 관한 조사를 하고, 그 실험 결과 "경상도 지방은 전라도 지방보다 탄수화물을 30% 더 섭취한다"라는 결론이 나왔다고 합시다. 그렇다고 해서 경상도 사람이 병원에 찾아왔을 때 무조건 그 사람이 탄수화물을 과잉 섭취하고 있을 거라고 예측하는 것은 절대 적합하지 않은 편견이 됩니다. 왜냐하면 어떤 경상도 사람이 남보다 2배 이상의 탄수화물을 섭취하고 있다면 그로 인해서 경상도 전체의 평균이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경상도 사람이 비만으로 병원에 찾아오더라도 의사는 그가 평소 무엇을 먹는지 물어보고, 며칠간 실제 식단을 사진으로 확인하고, 운동량 등을 확인해서 적절한 조언을 해 주는 것이 옳습니다.
마지막으로 화제의 주인공인 LCHF(Low carb High Fat, 저탄수 고지방 식이)에 대해서도 짧은 견해를 밝히고 싶습니다.
<지방의 역설>에서 밝히고 있듯 사람의 몸에 쌓이는 지방은 우리가 먹는 지방이 그대로 축적된 것이 아니라 몸에서 영양분이 남아돌 때, 특히 탄수화물 과잉 섭취로 인해 혈당이 높아지면 인슐린이 이를 몸에 저장하는 과정에서 지방의 형태로 몸에 쌓이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지방이 g당 kcal이 가장 높으니만큼 지방의 과잉 섭취도 플러스 에너지 상태를 유발할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쌀밥을 주식으로 하고 그 외 빵, 파스타, 과자 등 다른 탄수화물류까지 즐겨 먹는다는 것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 사람의 비만 주범은 탄수화물이라고 보는 게 타당합니다. 그런 면에서 비만, 특히 오랜 기간 과체중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살을 빼기 위해서는 인슐린 저항성을 되돌리고 혈당을 낮추기 위해 저탄수화물 식을 해야 하며 저탄수화물 식을 하면서 생길 수 있는 무력감 등의 증상을 예방하기 위해 지방을 더 많이 섭취해 주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