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마음을 가진 그가 죽어야 했던 이유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감상평

by 유송

우리는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 혹자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무리를 지었고, 무리의 효율적 운용을 위해 사회를 구성하고 암묵적으로 사회적 약속을 만든 후 동의했다. 그러나 이 사회가 점점 커지면서 사회는 도리어 그 속의 인간과 멀어지고 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주인공은 당연하게도 다니엘 블레이크다. 마치 연예인 이름 같지만, 40년간 목수 일을 해 온 한 사람의 남자일 뿐이다. 그는 얼마 전 심장 발작을 일으켜 일을 그만뒀고, 의사의 권고에 따라 일을 하지 못 해 질병 수당을 신청한다. 그러나 그의 수당 자격을 심사한 심사관은 몇 가지 질문을 던진 후 일을 할 만하니 질병 수당은 받을 수 없고 실업 수당을 신청하라고 한다. 거기서부터 모든 것이 꼬인다.


우리나라에도 현재 실업 수당 제도가 있는데 이 실업 수당을 받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 조건이 있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조건들은 이런 것들이다.

1. 일주일에 35시간 이상 구직 활동을 할 것

2. 이력서를 만들고 제출할 것

다니엘 블레이크는 열심히 손으로 이력서를 쓰고, 발로 온 동네를 걸어 다니며 구직 활동을 한다. 그러나 실업 수당 심사관은 이렇게 말한다.

"증거가 없잖아요."

정말 복장 터질 노릇이다.


결국 문제는 어디로 가는가? 심사관은 이렇게 말한다.

"실업 수당을 못 받게 되었으니 생계 수당을 신청하세요. 무료 식료품 배급 명단에 넣어드릴까요?"

이쯤 되니 다니엘 블레이크보다 내가 더 열 받는다. 심사관의 귀에 대고, 양손으로 그의 귓바퀴를 붙잡고, 있는 힘껏 소리치고 싶다.

"나도 사람이야! 너와 같은 시민이라고! 사람을 수치스럽게 하지 마!"


영화를 보면 알 수 있지만 다니엘 블레이크는 선한 사람이다. 전혀 모르는 사람일지언정 부당한 대접을 받는 것을 보아 넘기지 못하고,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도우며,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아이와 여자를 도우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증거로 남지 않으며 수당 심사 과정에서 평가하는 항목도 아니다. 증거에 의존해 돈을 지급하는 국가의 입장에서 다니엘 블레이크는 그저 컴퓨터를 다룰 줄 모르고, 구직 활동을 하지 않으며, 전문가 소견에 저항하는 게으름뱅이 노인일 뿐이다. 어쩌다 이런 사회가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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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니엘 블레이크를 보면서 너무너무 화가 났고, 한편으로 너무나 슬펐고, 또 불안해졌다.

모든 일을 규정에 의거해 기계적으로 처리하려고만 드는 공무원과 시스템에 화가 났고, 인간적인 수모를 당하면서도 거기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약자들의 모습에 슬펐고, 내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저보다 더 심한 일을 겪지 않을까 싶어 불안해졌다.


사람의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니엘 블레이크가 그의 부인이 미치고 그 자신이 심장 발작을 일으켜 일을 그만두게 될 줄 몰랐던 것처럼. 케이티가 사랑을 확신하고 아이를 낳았지만 어느 남자도 그녀를 책임지지 않을 줄 몰랐던 것처럼.

그래서 사회는 인간의 불안한 미래를 지켜주기 위한 보호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사회가 존재하는 이유이며, 인간이 마음 편하게 사회 안에서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다.

많은 사람들이, 특히 지금의 자신과는 관계없다고 생각할지 모를 젊고 건강하고 돈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서 영화의 메시지를 가슴에 새겨둔다면, 훗날 우리 사회에는 좀 더 나은 시스템, 사람을 죽게 하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이 생겨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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