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련회가 싫었다. 없는 살림에 학교에서 공부만 해도 되는데 왜 돈을 내고 잠자리도 불편한 타지에 가야하느냐는 어른스런 걱정은 둘째 치고라도, 항상 이어지는 뻔한 레퍼토리와 피할 수 없는 단체 기합이 싫었다. 여러 명의 사람에게 팔벌려뛰기를 하라고 한 다음 마지막 구호를 생략하라고 하면 꼭 누구 한 명은 마지막 구호를 외친다. 사람이 기계가 아닌 이상 한 몸처럼 통합될 수 없기에 당연한 일이다. 수련회에선 그런 걸 빌미삼아 자꾸만 기합을 준다. 친구와의 우정을 다지고, 단체의 일원으로서 사는 법을 배운다면서 말이다.
육군훈련소에 있을 때도 같은 맥락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모두 똑같은 모양으로 머리를 깎고 똑같은 옷을 지급받고 밤에 꼭 한 번은 일어나 불침번을 서야 한다는 그런 것들은 사소한 문제였다. 진짜 문제는 밥을 먹어도 단체, 잠을 잘 때도 단체, 화장실에 갈 때도 단체를 강조해 개인으로서의 생활이 완전히 사라진다는데 있었다. 어쩌다 생긴(혹은 고생해서 손에 넣은) 맛있는 음식을 홀로 즐기기 위해 화장실에 가야만 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 화장실은 수많은 군인이 스스로를 위로하는 장소이기도 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개인으로서의 인간을 말살시키는 그 곳은 지구에 존재하는 지옥 중 하나가 분명했다.
그런데 왜 단체의 일원으로서 사는 법을 배운다는 것이, 남의 잘못으로 내가 벌 받는 것을 참는 게 되는 걸까? 나의 사적 시·공간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 어떻게 단체의 일원으로서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일까? 우리는 단체로서도 살아가지만 또한 개인으로서도 살아가지 않는가. 피를 나눈 가족과 살아가지만 또한 내 방에서 문 닫아걸고 조용히 나만의 자유를 즐길 때도 있지 않는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서 무리를 이루고 살아가며, 그렇게 형성한 무리의 현대적 형태가 바로 ‘현대 사회’다. 그렇기에 단체의 일원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말 자체는 맞지만 그것이 곧 단체의 일부로서 해야 할 일이 개인으로서 갖는 권리보다 앞선다는 의미가 되진 않는다. 개개 인간은 개별적 인격으로 살아가고 존중받을 권리가 있으며 ‘고작’ 단체라는 이름으로 그것을 억압할 수는 없다.
어른들은 말한다. 대학 가야지, 대학 나왔으니 취직해야지, 취직했으니 결혼해야지, 결혼했으니 애 낳아야지……. 돈 벌기 시작했으니 모아야지, 모았으니 차 사야지, 더 모았으니 집 사야지……. 같은 단계에 있는 사람에게는 어김없이 똑같은 소리를 한다. 명절에 대학생인 조카 네댓 명이 모였다 치면 그들 개개인이 모두 다른 공부를 하고 다른 삶을 살고 있을진대 해 주는 말은 똑같다.
취업 준비는 잘 돼 가니? 이제 슬슬 생각해야지.
다시 강조하지만 ‘나’는 개인이다. ‘당신’도 개인이다. 개인은 마땅히 개인으로서 자기만의 삶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사회가, 기성세대가 요구하는 바에 맞춰 사는 게 좋다면 물론 그것도 하나의 사는 방법이고 개인으로서의 삶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당신이 대다수가 가는 길에서 한 발 벗어나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 그 길에서 뒤로 돌아간다 해도 그것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 당신의 선택이다. 당신이 그 길 위에서 남을 해치지만 않는다면 당신에겐 어디로든 걸을 자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