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유치원에서 배우는 것은 사람이 사회에 살아가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상식들이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어야 해요, 낯선 사람이 부르면 따라가지 말아야 해요, 어른을 만나면 인사를 해야 해요. 그리고 그중 하나는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해요’다. 1+1보다 더 당연한 이야기.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안 그래도 그로기 상태인 청춘을 너무 심하게 때렸기 때문일까, 그에 대한 반발은 폭발하는 화산에서 불어 나오는 열풍과도 같았다. 한 개그맨은 인터넷에 떠도는 네티즌의 표현을 빌려 “아프면 환자지 무슨 청춘이냐!”라고 일갈했다. 청춘이 아프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는데 왜 병원 가라는 말을 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든 걸까?
간혹 친구들을 만났을 때 술 한 잔 두 잔 기울이다 보면 이야기는 대체로 근황을 넘어 연애나 결혼 혹은 직장 이야기로 옮겨가게 마련이다. 학자금 대출이 얼마고, 직장 근무 시간이 하루 열 시간이 넘고, 야근은 당연한 거고, 월급은 이백만 원이 채 안 되고…. 듣기만 해도 피곤하고 우울해지는 이런 이야기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어대는 와중에 “그럼 확 그만둬. 그게 네 건강에 좋겠다.”라고 하는 사람이 한 명 없다. 친구들이 사이코패스라서가 아니라 아무리 힘들어도 그만두면 그 한 달에 이백만 원이라는 돈도 벌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모두 홧김에 나오는 조언은 속에 담아두고 입을 다물고 있다. 참으로 슬픈 청춘의 반영이다.
하지만 각박한 주머니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하는 것들이 있더라도 그것이 육체와 정신의 건강을 위협하는 수준이라면 그것은 인생의 본말전도다. 앞서 말했듯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게 당연하고, 우리가 인생에서 추구해야 할 가치는 여럿 있겠지만 그 우선순위가 ‘돈 〉 건강’이라면 그건 슬프다는 감정적 차원을 떠나, 생물로서 지속 불가능한 삶이 아니겠는가.
목구멍에 풀칠은 해야겠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어떠한 상황에 처해있는지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갈수록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들고, 일과시간 중에 잠깐씩 현기증을 느끼는 등의 육체적 이상 징후도 잘 파악하고 밤마다 술을 마시고 싶고, 주말에 남들 SNS를 보다 보면 불쑥 강렬한 자살충동을 느끼는 등의 정신적 이상 징후도 놓쳐선 안 된다. 삶이란 결국 이어가기 위해 있는 것이다. 오늘을 사는 것은 내일과 모레를 이어가기 위함이다. 그 하루하루를 모아 내 인생이라는 총체적 그림을 그려나가는 과정일진대 그 큰 그림의 일부에 멈추어 너무 자신을 혹사해선 안 된다.
혹시 이상 징후를 알면서도 ‘지금은 쉴 때가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속 쓰림을 내버려두면 위궤양이 되고, 위궤양은 위암이 된다. 어지럼을 내버려두면 뇌경색을 놓치고 지나가 한순간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우울한 기분이 몇 달이나 지속되는데 ‘내가 너무 심지가 약해서 그래’라고 생각하다가 치료하기 어려운 수준의 중증 우울증 환자가 될 수도 있다.
아프면 병원에 가자. 꼭 사전적 의미의 병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나를 치유해 주는 장소에 가거나 활동을 하자.
아프면 병원에 가자. 꼭 사전적 의미의 병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나를 치유해 주는 장소에 가거나 활동을 하자. 자신의 우울한 기분이 감당이 안 된다면 정신과 의사를 찾는 것이 명백하게 도움이 되며, 가벼운 우울감은 좋아하는 취미 활동을 하거나 휴대폰을 끄고 한나절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도 극복될 여지가 있다. 아무쪼록 젊으니까,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까 아파도 참자는 생각 말고 제 한 몸 정성껏 돌보며 살아가야 한다. 그건 자기 몸과 삶에 대한 의무이자 배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