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를 주는 캐릭터
고등학교에 다닐 때 내 성적은 줄곧 학년 탑이었다. 친구들은 시험을 친다 하면 한 과목이 끝나는 쉬는 시간마다 내 시험지를 가져다 답을 맞혀 보았고,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면 내가 정리한 노트를 가져다 베꼈다. 그 외에도 야간자율 학습을 하고 있으면 선생님 몰래 다가와 공부 잘하는 방법을 물어보는 친구도 적지 않았는데, 그 때마다 나는 정성스럽게 내가 전 과목을 어떻게 공부하는지 알려주었다. 국어는 소설책이든 무엇이든 많이 읽는 게 도움이 되고, 수학은 무조건 오답노트를 통해 틀리는 문제 유형을 줄여나가야 하며... 그렇게 한참 시간을 보낸 후 나는 충격적인 사실을 깨달았다.
허무도 그런 허무가 없었다. 그토록 입 아프게 공부하는 법을 알려주었건만, 심지어 그 방법이 돈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고 그저 8시부터 12시까지 자습을 하고, 자기 전에는 누워서 그 날 배운 내용을 머릿속으로 쭉 정리해보고, 밥 잘 챙겨먹고 운동을 잘 하라는 유의 단순한 것임에도 그걸 단 하나라도 실천하는 친구가 없었다. 졸업을 할 때까지 매일 열두시까지 자습실에서 공부를 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따라하지도 않을 거면서 그들은 내게 왜 물었을까? 지니고 있으면 신비한 효과를 발휘하는 부적처럼 내게 공부법을 듣고서 곧 자기가 공부하는
법을 알아냈고 이제 성적이 오를 거라는 근거 없는 희망에 젖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성공하는 방법을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꿈을 이룰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청년이 많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 중 정말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노력한 사람과 해 보지도 않고 지레짐작으로 힘들 거나 안 될 거라고 생각하며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의 비율이 각각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성인의 독서율이 해가 갈수록 낮아져 일 년 동안 한 권 이상의 책을 읽은 성인이 65% 밖에 되지 않는다는 통계를 감안하면, 절대 모든 사람이 자신이 바라는 꿈을 위해 매일 악착같이 노력해 온 사람은 아닐 거라 짐작된다.
<원펀맨>이라는 일본 만화의 주인공은 어떤 강한 악당이라도 단 한 방의 펀치로 분쇄해 버리는 무적의 히어로다. 강해진 비결을 묻는 사람에게 그는 이렇게 답한다.
지구 최강의 존재가 강해진 비결이 겨우 이것뿐이라고 한다면 우스울 지도 모르지만 어떻게 보아도 500일 연속으로 운동을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나는 지금 남미여행을 갔을 때 원활한 의사소통을 하고 친구를 사귀겠다는 목적으로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있다. 스페인어 공부는 앱을 통해서 하는데 이 앱에는 스스로 정해둔 하루 목표치를 달성했는지 날짜를 세어주는 기능이 있다. 나는 하루 15분 정도의 공부량을 목표로 설정해 두었는데 연달아 공부한 최고 기록은 47일 가량이었다. 하루 여행을 가서 깜빡하는 바람에 연속 기록은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스페인어 공부를 그만둘 수는 없었다. 다시 1일부터 10일을 채우고, 어쩌다 다시 하루 놓치더라도 다시 1일부터 20일을 채워나가야 한다. 그런 묵묵한 노력만이 꿈을 이루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루 15분이라고 하면 만화책 한 권도 못 볼 짧은 시간이지만 이렇게 꾸준하게 공부를 해 왔더니 혼자서 공부했는데도 스페인어로 일상적 대화가 가능한 수준이 되었다. 어차피 15분은 아무 것도 아니라며 자는데 썼다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니지만, 15분이 일주일 모이면 105분이고 일 년 모이면 5,475분, 삼 년이면 16,425분(약 273시간)이다. 일 년 동안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한 시간씩 공부한 정도의 양이 되는 것이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이 자투리 시간의 총합을 어떻게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취급하겠는가.
자신이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그 꿈을 이룬 사람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 꿈이 인류 최초의 것이라서 아무도 시도한 적이 없다면 비슷한 성격의 다른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 혹은 비슷한 꿈을 이룬 사람이라도 알아야 한다. TED를 비롯해 창의적이고 자기 분야를 선도하는 성공한 사람의 강의가 인터넷에 넘쳐나는 시대다. 매일 TED 영상 하나씩만 봐도 일 년이 훌쩍 지나갈 정도로 우리가 참고할 수 있는 자료는 많다. 그들의 삶을 참고해 그냥 노력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노력해야 꿈에 가까이 갈 수 있을지 파악하고 그 다음 ‘실천’하자. 현대의 모든 위대한 축구선수가 그보다 더 위대하다고 여겨진 옛 축구영웅들의 연습법을 따라했듯이 말이다.
‘어떻게’ 노력해야 꿈에 가까이 갈 수 있을지 파악하고 그 다음 ‘실천’하자.
그렇게 실천하는데도 마땅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실망해선 안 된다. 성공에는 많은 것이 따라야 한다. ‘모든 노력한 사람이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성공한 모든 사람은 노력을 했다’는 말이 있듯 노력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고의 축구선수 박지성도 원래는 이름난 대학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선발되지 못할 뻔한 위기를 겪었다. 마블의 창업주 스탠 리는 39살에야 ‘판타스틱 4’를 그렸다. 새뮤얼 잭슨은 43세가 될 때까지 수십 년간 엑스트라만 도맡아 했다. 성공은 노력과 운과 시기 등 많은 것이 함께 받쳐줘야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나도 신춘문예에 도전한지 사오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는 생각이 들고, 매년 1월 1일 당선작을 읽을 때마다 언제쯤 이런 아름다운 혹은 장엄한 혹은 날카로운 글을 쓸 수 있을까 자괴감을 맛보곤 한다. 그럴 때면 앞서 언급한 ‘늦게 성공한 사람’의 예시와 함께 한 일본 만화가를 떠올린다.
만화 <호빵맨>의 작가 야나세 다카시는 1947년에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1969년에 처음으로 호빵맨을 연재했다. 그러나 호빵맨이 애니메이션화가 되면서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1988년이었고 그 때는 바야흐로 그는 1919년생이었으니 한국나이로 무려 70세 때의 일이다. 잠시 눈을 감고, 40년 동안 만화를 그린 끝에 마침내 세계에 이름이 남을 걸작을 남기게 된 그의 인생을 반추해보자. 얼마나 많은 좌절과 초조함을 맛보았을까. 나는 야나세 다카시의 일화를 알게 된 후 그의 이름을 내 가슴 깊이 새겨두었다. 그 이름은 내 마음의 넓고 황량한 벌판 위에 우뚝 서 있는 한 그루 나무다. 앞이 보이지 않아 힘들고 지쳐 모든 노력을 포기하고 싶을 때, 나는 그 나무 아래 가서 선다. 그리고 나무 둥치에 손을 대고 눈을 감은 채 숨을 고른다. 잠시 후면 나는 다시 걸을 힘과 용기를 얻는다.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어떤 나무가 서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