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에 ‘존버’라는 말이 유행했다. 스타크래프트의 ‘존나 버로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 이 용어는 줄였을 때 같은 단어가 되는 ‘존나 버티기’로 뜻이 살짝 변했고, 비트코인 광풍이 불면서 하룻밤 사이 재산이 열 배가 되었다가 반 토막이 났다가 하는 중 비트코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큰 각광을 받았다. 재산이 반 토막이 난 것 같아도 버티다 보면 또 오를 거라는 믿음의 메시지였던 것이다. 현상이나 분석 따위와는 상관없는 그야말로 전적인 믿음의 메시지 ‘존버’야말로 모든 현대인이 되새겨야 할 단어다.
현상이나 분석 따위와는 상관없는 그야말로 전적인 믿음의 메시지 ‘존버’야말로 모든 현대인이 되새겨야 할 단어다.
오랜 전통의 좌우명으로는 종교에 따라서 기독교인이라면 십계명이 있을 테고, 불교인이라면 팔정도가 있겠지만 그런 성인(聖人)들의 이야기보다 ‘존나 버티세요!’라는 더없이 세속적인 한 마디가 현대인이 처한 상황에 가장 알맞은 좌우명이라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 청춘이 미래를 떠올릴 때 생각하는 것은 불확실한 미래가 아니라 ‘확정적인’ 미래다. 지금 나이가 서른이고, 월급이 실수령으로 이백만 원 정도 되니까, 한 달에 얼마를 쓰고 얼마를 저금하고, 서른둘이면 삼천이 모이고, 서른다섯이면 결혼을 할 수 있을 것 같고, 그 다음에 애를 낳으면 보육비가 얼마가 들고……. 숫자가 너무 명확하다. 그런데 그렇게 계산을 해 봤을 때 이런 생각이 드는 사람이 꽤 많다.
아, 내 인생 별 볼일 없겠구나.
그래서일까. 대한민국의 자살률은 13년째 OECD 회원국 중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늘 전쟁이 일어나는 제 3세계도 아니고, 살 만하다 싶은 나라 중에서 자살을 가장 많이 한다는 뜻이다. 매년 ‘자살률 1위의 오명’ 따위의 기사가 쏟아져 나오지만 우리는 이 심각성을 얼마나 인지하고 살아가는 것일까. 사람이 가장 스스로 죽고 싶어 하는 나라…. 우리는 그런 나라에 살고 있다.
옆에서 누가 죽으면 괜스레 ‘죽어서 편하겠다.’는 변변찮은 생각도 든다. 그러나 마냥 변변찮다고 치부하기에는 어른들이 자조적으로 내뱉는 ‘쉬긴 언제 쉬어, 저승 가서나 쉬지.’라는 말이 목구멍에 탁 걸린다.
나도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열심히 일했는데 받은 월급은 적절치 않을 때, 부자들이 요트 타고 세계일주할 때 택시비 아까워서 땀 냄새와 열기로 가득 찬 만원 지하철에 타야할 때, 그나마 우정과 사랑만이 세상에 남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가족과 친구가 상처를 줄 때…. 무수히 많은 순간 속에서 죽음에 대한 갈망은 쉴 새 없이 마음의 빈틈을 노리고 찔러 들어온다. 죽은 이후의 세계는 없다. 죽으면 더 이상 변하지 않을 미래를 위해 아등바등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 생각으로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스스로 등진다.
내 친구 한 명도 그렇게 떠나갔다. 우울증이 있다는 이야긴 들었지만 그게 20대 청년을 그렇게 자살로 몰아넣을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었다. 죽기 전 마지막으로 마주 쳤을 때 친구는 피곤해 보였다. 으레 아침에는 피곤해 보이는 사람이 많으니까, 전날 잠이라도 설쳤나 보다 하고 인사를 했다. 조만간 꼭 밥 한 번 먹자! 그의 얼굴에 떠오른 웃음이 씁쓸해 보였지만 수업을 앞두고 그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그 다음에 그를 마주 했을 때는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 상태였다.
사람의 감정이 흐르는 것을 돌아보면 마치 폭포가 흐르는 것과 같다. 부정적인 감정이 한 번 들기 시작하면 그 쪽으로 세찬 폭포가 쏟아진다. 걷잡을 수 없이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이 불어나며 머릿속 전체를 휩쓸어버린다. 우울증이 있는 사람이 자살을 할 때도 건강한 사람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 작은 일이 방아쇠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 작은 일은 흘러오는 폭포에 맞서 간신히 서 있는 사람을 손가락으로 슬쩍 미는 것과 같다. 탁! 하는 순간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너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또 즐거울 때는 한없이 즐겁다. 친구와 같은 음악 취향을 가졌다는 걸 발견했을 때, 가을날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자전거를 탈 때, 여름 늦은 오후 바닷가에 앉아 맥주 한 캔을 마실 때 사람은 자신이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좋은 기분은 나쁜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한동안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행복하게 사는 것에는 연습이 필요하다고들 한다. 긍정적 반응을 강화하기 위해 긍정적 사고를 많이 하고 심지어는 표정이 거꾸로 마음에 영향을 주기도 하기 때문에 이 사이에 연필을 물고 웃는 것처럼 표정을 지어 기분의 변화를 유도하기도 한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이고 언젠가는 불가피하게 스스로 삶을 끝내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일 일을 누가 알겠는가. 비록 내일도 오늘처럼 똑같이 9시에 출근하고 6시에 퇴근해 집에서 맥주 한 캔을 마시고 잠에 든다 해도 나쁘지 않은 하루 아닌가. 살아 있다 보면 일주일 뒤에 운명을 바꿀 소개팅을 하게 될지, 십년 뒤에 복권에 당첨될지, 그도 아니면 내일 읽을 책 한 권으로 인해 평생 추구할 인생의 목표 하나가 생기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꼭 당신의, 우리의 미래가 밝으리란 이야긴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존버는 현상과 분석과는 상관없는 믿음의 영역이다. 계산해보면 당신의 남은 인생은 그저 그럴 것 같고, 분석해보면 대한민국도 곧 망할 것 같아 보이지만 신조차 미래는 알 수 없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존나’ 버티자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