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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Nov 09. 2015

정말 간단하게 처방 내는 법을 배워보고 싶다면, 이 책

 마사노리 <간단 한방철칙> 독후감

아직 학교를 다니는 중인 한의대생이나 갓 졸업한 한의사는 처방을 내는데 있어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일단은 한의학의 생리 병리와 방제에서 배운 내용들이 실제 환자와 잘 매치가 되지 않아서이고, 또 막상 처방을 결정했을 때 이것이 안전할 것인지 정말 맞는 증인지 스스로 경험에 의거한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런 어려움을 혹시 겪고 있었다면 혼자 덜 떨어진 것은 아닌가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런 일이 얼마나 비일비재하면 추천사를 쓴 경희대 교수도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실제 임상에서는 복잡다단한 질병 속성상 변증이라는 진단 분류 그 자체를 응용하기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대학교재의 다수가 중국의 변증체계를 인용하나, 임상 현장에서는 그 거리감이 꽤 느껴져 활용도가 떨어지고 있다.


교수도 인정하는 교재와 임상의 격차,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간단 한방철칙>의 저자, 니미 마사노리는 의사이면서 일본의 한의사인 마쓰다 구니오에게 한의학을  사사받은 사람이다. 이 사람의 입장은 양방도 한방도 치료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좋다는 것이고, 상당히 열린 마음으로 그리고 합리적인 시각으로 한약을 처방할 때 지켜야 할 철칙에 대해 기술한다.


초보 한의사가 지켜야 할 철칙 몇 가지만 소개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 'ㅇㅇ의 성약'을 기억하자
- 우선 급성 증상을 치료하고, 만성 증상은 천천히 치료한다
- 마황제 투약 시, 혈압 상승, 협심증에 주의!


우선은 기본적으로 처방할 수 있는 약을 기억하고, 환자가 여러 증상을 호소할 경우 급성 증상부터 치료하며, 약을 쓸 때 부작용이 나지 않는지 미리 주의할 것. 이 정도 체계만 갖추어도 골라야 할 처방과 심적 부담이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


나는 학부 졸업 후 곧바로 공보의를 와서 2년째 환자를 보고 있는 입장에서 이 책을 읽으며 일본의 엑스제 사용 문화는 어떠한지, 일본의 한의학은 우리의 한의학과 어떻게 다른 시각을 갖고 있는지, 의사로서 오랜 임상을 한 사람이 한방 처방을 병용할 때 어떻게 접근하는지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대부분의 내용은 교과서에서도 다룰 법한 기초적인 것들이고 중간중간에 인삼, 계피, 지황이 알레르기를 잘 일으킨다거나 그런 경우에는 향소산을 써서 엑스제 자체에 대한 거부반응은 아닌지 확인해 본다는 등의 실제 임상에서의 재밌는 이야기도 나온다.

좀 특이했던 것은 실증 허증을 구분하는 방법이었는데, 저자는 허실에 대한 정의가 각종 서적과 의가마다 다르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자신이 하는 '현대 한방'에서는 허실을 마황 복용 가능 여부로 나눈다고 했다. 즉, 마황을 복용하고서 아무런 부작용이 없으면 실증이고 그렇지 않으면 허증이라는 것이다. 이는 증세 자체에 대한 구분이 아니라 사람의 체력과 소화력을 두고 하는 것이므로 기존의 한의학과는 상당히 다른 측면이 있다. 이러한 시선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일단은 독자의 몫으로 넘어가지만, 개인적으로는 그저 하나의 의의가 있을 뿐 이것이 그리 옳은 방법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 외에 공부방법론에 대해서도 조금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한의약의 세계를 처음부터 모두 이해하려고 생각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가능하면 간(幹)을 만들어야 하는데, 곧 선생님 한 분의 사고방식을 공부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넓게 다른 선생님들의 의견을 참고해 가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다.
고전을 읽자, 최신작부터 과거작순으로. 모두 읽는 것은 힘들기 때문에 목차만 쭉 읽어봐도 괜찮다. 모두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현대 의료에서의 처방 선택에 유용한 지혜의 방편이라고 이해하고 응용하자.

이 두 내용에 크게 공감하는데, 일단 학교를 다니면서 한방생리부터 시작해서 병리 방제 등을 배우고 또 바깥에서 강의를 듣다 보면 한의학의 내용들은 서로 충돌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음양오행이 기본 이론으로 깔린 부분에서 그러한 충돌이 자주 생기는데, 그럴 경우 모든 걸 다 이해하려고 하거나 음양오행 자체를 머릿속에서 지우기보다는 한 명의 사고방식을 우선적으로 공부해서 기반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금원사대가에 대해서 배운 것이 개인적 간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는데, 주단계의 '양상유여 음상부족' 이론이 현대인에게 굉장히 잘 맞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특별히 어떤 이론을 메인으로 두고 있지는 않지만 처음에는 길익동동이든 이제마든 혹은 현대의 배원식 선생이든 누군가의 사고방식을 공부해서 나아가는 것이 상당히 편리한 방법임은 틀림없다.

그리고 지금도 적잖은 수의 한의대생들이 고전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황제내경을 원문으로 해석하고 동의보감도 원문으로 공부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내고 하는데, 실상 그것은 대단히 비효율적인 공부가 아닌가 싶다. 일단 원문으로 본다는 것은 수준급의 한문 해독 실력이 있어야 하는데 각종 출판사의 번역가를 능가할 정도의 실력이 아닌 이상 학문에의 흥미만 떨어뜨리는 길이며, 원문이 아니더라도 너무 오래된 고전부터 보면 지금과 너무 사고방식이 달라서 받아들이기 지칠 수 있다. 그래서 저자의 말처럼 우선은 최신작부터 시작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결론적으로 권하고 싶은 것은, 한의학에 많은 어려움을 느끼고 특히 처방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면 (비록 일본에서의 엑스제 처방을 바탕으로 기술되었긴 하지만) 이 <간단 한방철칙>을 통해서 기본적인 처방법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그다음에 흥미가 가는 부분을 추가적으로 공부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책을 보다 보면 점차 많은 내용을 알게 되고, 언젠가는 큰 두려움 없이 자신 있게 처방을 내고 환자를 치료하는 좋은 한의사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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