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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Oct 22. 2015

붉은 낙인이 바꾼 그녀의 삶

너대니얼 호손 <주홍 글자> 독후감

헤스터 프린은 한순간의 부정한 사랑을 통해 아이를 낳은 여자다. 그녀는 그 죄로 인해 가슴에 주홍 글자를 달며 그 이전의 모든 삶을 잃었다. 글자가 달리기 전과 후, 그녀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작가의 묘사를 통해 살펴보자.


"키가 크고 자태가 더할 나위 없이 우아했다. 머리칼은 짙고 풍성했으며, 햇빛이 무색할 정도로 윤기가 흘러넘쳤다. 이목구비가 반듯하고 안색이 화사해 아름다울 뿐 아니라, 도드라진 이마와 검고 짙은 눈동자 때문에 깊은 인상을 남기는 얼굴"이었던 그녀는, "성격은 시들어 버린 지 오래되어 앙상하고 거친 윤곽만 남아"있고 "매력적이던 몸매도 비슷한 변화"를 겪었으며 "그녀의 풍성한 머리카락도 햇빛 속에서 반짝거린 적이 없"게 된다.

주홍 글자 자체는 그저 단순히 양쪽 다리 길이가 8센티미터에 불과한 천 조각에 불과하되, 그것이 가진 힘은 한 사람의 삶을 파탄내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글자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처형대로 날아드는 돌보다도 잔혹했다.


인용한 것은 짧지만 헤스터는 무려 7년에 걸쳐 시들어 간다. 그리고 저지른 일에 비해 형벌이 과할 때, 사람들은 동정심을 느낀다. <주홍 글자>를 읽던 독자들도 헤스터가 겪는 고통을 보며 '저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대니얼 호손은 헤스터를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더 나아가 단지 고통을 겪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삶과 낙인의 의미 자체를 바꾸도록 헤스터를 이끌어 나간다.


그래서 헤스터의 삶은 형벌을 고이 받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비록 마을 사람들에게서 손가락질 받고 처형대에 오를 지언정 그녀가 함께 사랑을 나눈 이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고, 바라볼 때마다 죄악의 날을 연상시키는 딸아이가 마치 악마처럼 제멋대로 굴지언정 아이를 버리지도 않았다. 그리고 마을에 재난이 있으면 누구보다 애써서 도우려 했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옷을 지어 나눠주기도 했다.

처음에 헤스터를 그저 부정한 여자로 보던 사람들은 이런 묵묵하고 헌신적인 행보에 점차 감화된다. 주홍 글자는 어느 새 형벌의 상징이라기보다 헤스터 프린의 특별한 선량함을 상징하는 표식이 되며, 그것을 보고 헤스터를 비난하는 사람은 초기 처형대에 올랐을 때에 비하면 놀라울 정도로 줄어들게 된다.


작가는 이런 군중의 변화를 통해 '한 때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얼마든지 선량한 사람일 수 있다. 혹은 선량해질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 소설의 결말에 이르기까지의 헤스터의 행적을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그 죄인이 하기에 따라 주변의 태도도 바뀔 수 있다는 것도 헤스터의 딸인 펄의 행동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틈만 나면 헤스터의 가슴에 달린 낙인을 가리키며 상처를 헤집던 펄은 헤스터가 A를 떼어낸 순간 다가가려 하지 않았고, 딤스데일 목사가 자신의 죄를 인정한 순간에 달려가 입을 맞추었다. 결국 펄은 헤스터와 딤스데일에게 끊임없이 죄를 상기시키고, 또 그 죄값을 제대로 치뤘다고 생각될 때에 용서를 내리는 심판자였던 셈이다.


이들을 통해 우리는 작가의 메시지를 엿본다.

죄는 죄로서 명확히 처벌받아야 한다.
다만 그 죄를 마주하고 끝까지 견디어낸 사람은 용서받을 자격이 있다.
죄를 지었다고 해서 그 사람이 타고난 악인인 것은 아니며, 평소에 선량하다고 여겼던 사람이라도 언제나 죄인이 될 여지가 있다.


마지막 메시지는 죄인으로 등장한 헤스터 프린이 형벌 중에도 묵묵히 선행을 베푸는 것으로써 간접적으로 드러나지만, 죽음을 앞둔 딤스데일 목사의 입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여러분 속에 죄와 치욕의 낙인을 가진 자가 서 있었는데도 여러분은 몸서리를 치지 않았습니다!


군중은 주홍 글자를 달고 나오는 헤스터 프린을 보고 야유했다. 형벌이 너무 가볍다며 죽여야 한다고 성토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녀의 형벌이 가혹하다고 여기거나 낮추어 달라고 말하는 이는 없었다. 단지 주변 분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모습이라면 당신은 그 어쩔 수 없는 이의 모습을 할 텐가?

만약 헤스터를 보고서 내가 저 자리에 서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고 스스로의 과거와 양심에 엄중한 질문을 던졌다면, 최소한 당신은 평생을 죄와 악에 대해 고민한 너대니얼 호손의 좋은 친구가 될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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