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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Oct 16. 2015

게임을 유용하게 이용하는 법

이노우에 아키토 <게임 경제학> 독후감

한의원에 비만 관리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다이어트를 원하는 환자들을 모으고, 모두 strava에 가입시킨다. strava 안에서도 <ㅇㅇ한의원 클럽>을 만들어 가입시키면 회원들은 클럽 내 순위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탄 거리에 따라서 1위부터 순서가 정해지는 것이다. 이 순서에 따라 적절한 보상 (이를테면 지방분해침 1회  시술이라거나)을 제공하면 운동에 대한 외발적 욕구가 더욱 강해질 수 있다.


위는 실제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게임 경제학>을 읽고서 구상해 본 하나의 게이미피케이션 사례다.

일단 게이미피케이션이 무엇인지부터 짚고 넘어가자.


이 세상에 가득한 잠재적 게임들에게 뚜렷한 게임의 형태를 부여하는 일. 선명하게 보이도록 보조선을 긋는 일. 그것이 바로 게이미피케이션이다. (p.55)


어떤 잠재적인 것에 대하여 게임의 형태를 부여하는 일. 그래도 잘 이해가 안 되는가?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자. 내가 하는 일상적인 행위를 게임으로 바꾸는 것. 간단한 예를 제시하겠다.

나는 자전거로 출퇴근을 한다. 이 일상적인 행위에 게이미피케이션을 적용하면 (다시 말해 게임의 형태로 만들면) 매일 자전거로 출퇴근한 거리와 그로 인해 소모한 칼로리 및 절약한 에너지(기름, 전기 등)를 수치로 환산해 그래프로 만들 수 있다. 매일매일 타는 거리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는 그래프를 그림으로써 출퇴근은 하나의 '게임'이 되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다른 사람과의 경쟁도 가능하다. 다른 사람 역시 자전거를 이용하든 도보를 이용하든 이동한 거리와 소모 칼로리 등을 기록해 그래프를 만들 수 있으며 동일한 포맷이라면 비교를 통해 우열을 가릴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쟁 역시 게임의 본질적인 한 요소이다.


그런데 이걸로 뭘 어쩔 거냐고? 그런 생각이 든다면 게임에 대해 생각해 보면 된다. 게임은 당신에게 어떤 대상인가? 공부만큼 하기 싫은 대상인가 아니면 적어도 공부보다는 가끔 더 즐겨도 좋을 대상인가? 그리고 게임을 떠올리면 어렵다는 생각이 먼저 드나 아니면 쉽다는 생각이 먼저 드나? 이까지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답은 나올 것이다. 게임은 많은 사람들에게 '쉽고 재미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대상이며, 이러한 장점을 살려 일상을 보다 재밌게 만드는 것이 게이미피케이션의 본질인 것이다. 게이미피케이션은 일상 속에 많이 들어와있어서 분야별로 나열할 수 있는 예시가 수두룩하다.

핏빗, 포켓피카츄, 나이키 플러스, 런키퍼, 위핏, 포스퀘어, 그루폰, 마이버락오바다닷컴 등 한국인이 들어봤을 만한 것만 나열해도 이만큼이고 넓은 의미의 게이미피케이션 사례(직접적인 게임 형태를 아니지만 게임 속 요소를 차용한 것)를 포함하면 마이스타벅스아이디어, 아마존, 야후!옥션, 역 방문 기념 스태프(자덕들은 국토종주 수첩을 생각하면 되겠다) 등 사례는 넘쳐난다.


그렇다고 이 책이 게이미피케이션의 정의와 사례만 설명하고 끝나는 책은 아니다.(200페이지도 안 되는 책인 점을 감안하면, 보기 드물게 알찬 구성임을 인정한다.)

단순 사례 외에도 게이미피케이션이 비즈니스에 접목되어 큰 성공을 이끌거나 혹은 실패한 이야기도 나오며, 게이미피케이션의 실천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관계성 강화, 피드백 가시화, 몰입하는 행동 분석) 알려주고, 게이미피케이션에 대한 다양한 논점(게임은 뇌에 유해하다, 아니다 논란)을 소개하기도 한다.

한 마디로 <게임 경제학>에 관한 알짜배기만 쏙쏙 모아놓은 책인데, 달리 말하면 재밌게 쓴 한 편의 논문 같기도 하다.


자, 책 내용 소개가 끝났으니 마무리로 들어가자.

우리 사회에서 보기 드물게 게임을 진지하게 다룬 이 책(물론 일본인 저자가 썼지만)을 읽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과연 게임을 이렇게 유용하게 다루는 게 가능할까? 어쩌면 진지해야 할 일과 노동에 대해서 장난스럽고 바보 같은 접근은 아닐까?'

이런 우리의 생각을 짐작한 것인지, 아니면 본인 역시 (한국보다는 훨씬 덜하지만) 문화적으로 경직된 일본 사회에서 자란 사람이라서 그런지 저자는 책의 말미에 이런 말을 써 두었다.


지금으로서는 아직 바보 같은 생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현하지 않으면 그것은 영영 바보 같은 생각으로 남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이 책을 기억해 두었다가, 환자 치료에든 무엇에든 응용해 볼 생각이다. 앞서 말했듯 게임은 우리의 일상이자 취미이며, 지루하게 느껴지는 대상에 접목했을 때 게임 특유의 '재미'를 부여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사족) 한의원 내 다이어트 환자들의 운동기록 경쟁에 대한 보상 제공은 진지한 사업계획이 아니라 독후감 흥미 유발을 위한 하나의 사례이므로 이것이 의료법 위반인가에 대한 진지태클이 없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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