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에 다녀와서 더 무기력한 나에게

1114 민중총궐기에 다녀와서

by 유송

어제 11월 14일, 서울에서 민중총궐기가 있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저지가 가장 공감대가 큰 주제고 중심이긴 하지만 그외 노동개악 반대라든가 밥쌀용 쌀수입 저지 등 단체별 주제는 따로 있기도 했다.

나는 역사교과서 문제에 한목소리를 보태기 위해 멀리서 올라갔지만 이미 가는 사이에 트위터를 통해 광화문이 차단됐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집회신고를 한 장소를 차벽과 경찰로 막아버리다니, 집회를 하지 말란건가?

서대문역에서 광화문 방향

하는수없이 서대문역에 내려 광화문으로 가려했더니 여기도 막혀서 사람들이 행진을 못하고 있었다. 차벽은 견고했고 17시 35분부터 물대포를 마구 쏴대기 시작했다.

멀리 보이는 물대포. 여기선 캡사이신은 쏘지 않았다

무차별 물대포와 불법 위에 짜인 차벽 앞에서 사람들은 분노하고 항의했지만 경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물러났다간 청장이나 서장에게 쪼인트 까일 일이 두려웠겠지. 결국 사람들은 시청광장을 통해 가자며 뒤로 물러났다.

앞쪽에 있던 전교조 울산지부

나는 사람들을 따라가다 길을 잃어 잠시 서울역으로 갔는데, 그 앞에 웬 군복을 입은 노인들이 무리지어 돌아다니고 있었다. 단체로 빌린듯한 버스앞을 보니 "올바른역사교과서지지국민대회"라고 쓰여있었다. 암, 올바른 역사교과서는 군복을 입고 지지해야지요, 암요.

서울역에서 전철을 타고 종각역으로 갔다. 먼저 가있던 후배가 종각에서 막혀있다고 아까 소식을 전해왔기 때문이다. 종각역 2번 출구로 나오자 뻥 뚫린 대로와 저 끝(종로구청입구)에 몰린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후배를 찾아 앞으로 걷는 사이 뭔가 이상한 반응이 나타났다. 목과 코가 따갑고 눈을 뜨기가 힘든 것이다. 설마 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전부 마스크를 끼고도 연신 재채기를 해대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경찰이 시위대를 대하는 방식을 접할 수 있었다. 바로 캡사이신 무차별 살포.

허연 거품으로 가득한 바닥

종각역에서 광화문까지는 정말 가깝다. 평소라면 걸어서 10분 이내에 도착할 것이다. 그런데 경찰은 집회를 시작하기도 전에 미리 차벽을 치고 캡사이신을 넣은 물대포를 준비시켰다. 미리 신고한 장소에 가지도 못하게 막고서 비키라니까 캡사이신을 쏘는 이 나라의 경찰이 민중의 지팡이를 자처할 수 있는가?

물개포에 직격당해 쓰러진 농민

심지어는 앞쪽에 있던 농민이 물대포에 직격당해 바닥에 쓰러졌지만 경찰은 곧바로 살수를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그 사람을 쏴서 다른 시민들이 달려나가 보호했다고 한다.

뒤쪽에 있던 나로서는 갑자기 앰뷸런스가 인파를 헤집고 들어왔다가 나가는 것밖에 보지 못했는데, 앞에서는 경찰력에 의한 폭행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앰뷸런스가 나가고 나서 계속해서 콧물 줄줄 기침 캑캑하며 생각했다.

이 대치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물리적으로 사람들이 저 차벽을 뚫을 방법은 없다. 그렇다면 광화문에 모이는 일 자체가 요원하다. 결국 이렇게 대치하다 사람들이 춥고 지치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집에 돌아가기 시작하면 민중총궐기도 그렇게 끝나는 것이다.

실은 거의 모든 집회가 그렇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구호를 외치고 피켓을 들고 촛불을 든다. 경찰이 나타나 길을 막고 해산을 명령한다. 둘은 대치하고, 결국 시위대가 집에 가면 상황이 종료된다.

이것은 이명박 정부때부터 수십수백번을 반복해온 일이지만 무엇이 변했는가? 그들은 언제나 귀를 막은채 애꿎은 경찰들을 내보내 방패로 삼고, 우리는 종이 한장 뚫지 못할 촛불을 들고 거리에서 밤을 지샌다.

실제적인 정치력,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구체적이고 유력한 행위를 하면 좋겠지만 그것이 '투표'라는 것에는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 최근 다른 나라에서 국민투표를 했는데, 국민여론은 6대 4로 반대가 많았지만 머릿수가 훨씬 많은 노인인구가 찬성이 많아서 투표결과는 찬성이 된 일이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내 심정은 그래 씨발 해도 안되잖아였다.

앞으로도 어떻게 해야할지 잘은 모르겠다. 내가 국회의원이 되지 않는 이상 직접적 정치행위를 할 수도 없고 투표는 빼먹은 적은 없지만 그렇게 큰 의미였던 적도 없으니까. 단지 할 수 있는 것은 무력하지만 집회에 나가는 것뿐이다. 거기서 물대포를 사람에게 쏘지 못하게 감시하는 하나의 눈과 쓰러진 사람을 보호할 하나의 손이 되는 것.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쓰러진 농민분의 쾌유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