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가 감기에 대처하는 법

감기의 여러 증상에 대해 다양한 한약을 쓰고 변화를 관찰하다

by 유송

필자는 14년에 학교를 졸업한 한의사로 현재 공중보건의로 복무 중이다. 주말에 비를 맞고 돌아다닌 후 화요일 아침부터 몸이 좋지 않았는데 일주일간 보건소에서 쓰는 여러 처방을 복용한 결과 감기가 나았다. 감기는 아직까지 특별한 치료법이 없기 때문에 치료하면 2주, 치료하지 않으면 14일이라는 농담이 있다. 일주일은 예상 외로 오래 걸린 감이 있지만, 한의사로서 감기에 걸렸을 때 어떠한 방식으로 대처했는지 시간순으로 정리해 보았다.


11월 17일(독활지황탕)

몸이 좋지 않다. 한기가 들고 명치 부근이 더부룩해서 밥을 먹고 싶지 않다.

상비약으로 갖춰둔 독활지황탕을 먹었다. 선방(選方)의 이유는 별 거 없다. 필자는 소양인이고, 소양인의 식체(食滯)에 쓰는 약이 독활지황탕이다. 그러나 오후가 되도록 몸은 나아지지 않았다.

※ 독활지황탕은 현재 보험처리되는 약이 아니다. 제약회사에서 엑스제로 나오는 것을 개인적으로 상비하고 있다.


11월 18일(독활지황탕→갈근탕)

계속 몸이 좋지 않고 비슷한 증상이 지속되어 아침 점심에 독활지황탕을 복용했으나 역시 효과가 없었다. 체기도 가시지 않고 감기 기운도 그대로였다.

퇴근하자마자 공복에 액체로 된 갈근탕을 2개 복용했다. 한기가 약간은 가시는 것 같다. 갈근탕을 고른 이유는 역시 별 거 없다. 갈근탕은 감기약의 대표격인 계지탕에 마황과 갈근을 더한 구성이고, 무난하게 쓰기 좋은 감기약이다. 게다가 집에 늘 갖춰두는 약이기도 하다.


Cap 2015-11-23 14-21-15-230.png 몸이 안 좋아지면서 일기에 약 먹은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이게 이 글을 쓰게 된 바탕.


11월 19일(독활지황탕→갈근탕→인삼패독산)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낫기는커녕 낮부터 목이 붓기 시작했다. 퇴근할 무렵에는 콧물도 줄줄 나고, 침을 삼킬 때 고통스러울 정도가 되었다.

목이 부었을 때 딱 맞는 감기약이 뭘까? 보건소에는 갈근탕 / 소청룡탕 / 행소탕 / 인삼패독산 / 삼소음 / 형개연교탕 / 구미강활탕의 7종 감기약이 있었다.(정확히는 모두 다른 약이고 감기 이외에도 쓸 수 있는 약이지만 공통적으로는 감기에 쓸 수 있는 약이다)

이 중에 특별히 목에 잘 듣는 약재인 '길경'이 포함된 약을 찾았다. 삼소음과 인삼패독산 그리고 형개연교탕이 있었다. 안타까운 건 필자가 이 때 형개연교탕이 재고가 없는 줄 알았다는 거다. 그리고 남은 삼소음과 인삼패독산 중에 고른 건 인삼패독산이었다.

둘의 약재 구성은 대단히 비슷하다. 대부분이 같고 각각 독자적으로 가진 약재를 꼽자면 삼소음에는 자소엽, 대추, 갈근, 진피가 들었고 인삼패독산에는 강활, 독활, 시호, 천궁이 들었다. 원전상으로는 삼소음에는 담성 흉만(痰盛 胸滿;가래가 들끓고 가슴이 그득한 느낌)이 있고 인삼패독산에는 비색 성중(鼻塞 聲重; 코가 막히고 목소리가 무거움)이 있다. 필자는 당시 가래가 없었고 조문상 목소리를 언급하고 있는 인삼패독산을 복용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저녁에 복용하고 전기매트를 켠 후 2시간 정도 잠을 잤는데 전신에서 살짝 땀이 나면서 몸이 가볍게 느껴졌다. 그리고 콧물도 멎었는데, 문제는 코 안이 바짝 말라 살짝 코를 쥐기만 해도 코피가 날 것 같은 상태가 됐다는 거다. 원래 인삼을 먹으면 부작용을 겪는 편인데 이번에도 역시나였다. 목은 자기 전보다 나아졌는데 어이없게도 귓 속이 부어 꽉 막힌 느낌이 들었다. 훈련소에서 심한 감기로 부비동과 중이가 모두 부었을 때의 그 느낌, 딱 그거였다.


11월 20일(독활지황탕→갈근탕→인삼패독산→형개연교탕)

한숨 자고 일어나 다시 체크해보니 목의 부기가 가라앉고 콧물은 멎었다. 하지만 코와 귀 속의 부기는 여전해서 숨 쉬기도 불편하고 소리가 깨끗하게 들리지 않았다.

보건소에 출근해서 이 부기를 가라앉힐 약을 찾아봤지만 황련해독탕, 삼황사심탕 이런 약들만 보였다. 이런 약은 리열(裏熱; 속의 열, 깊은 열)을 끄는 약일뿐더러 잘못 썼다간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오한이 심해질까봐 함부로 쓸 수 없었다. 그런데 구석에서 있는지도 몰랐던 형개연교탕을 발견했다. 형개연교탕을 창고에서 발견한 순간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그래 이거야!"

Cap 2015-11-23 14-58-46-866.png 형개연교탕의 구성. 연두색은 찬 성질, 빨간색은 소양인 약.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위에 사진 설명에도 써놓았지만 형개연교탕을 구성하는 약재는 대부분이 찬 성질이다. 약재가 찬 성질이라는 것은 먹었을 때 몸의 열을 가라앉힌다는 뜻이고, 현대적으로 말하자면 염증을 진정시킨다고 할 수 있다. 필자는 부비동과 중이의 염증이 심한 상태이므로 딱 맞는 약을 찾아낸 것이다. 게다가 구성약재에 포함된 방풍과 지황은 소양인에게 맞는 약이기도 하다.

아침에 형개연교탕 1포를 복용하자 건조하게 말라있던 코 안이 촉촉해지면서 콧물이 조금 흐르긴 했지만 코와 귀의 부기는 가라앉기 시작하는 게 느껴졌다. 점심 때까지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점심식사 후 1포를 더 복용하자 확실하게 기상 때와 달리 부기가 많이 가라앉았다. 소리도 잘 들리고, 숨 쉬기도 편했다. 다른 약과 다른 극적 반응이었다. 저녁에 마저 1포를 복용했다.


11월 21일(독활지황탕→갈근탕→인삼패독산→형개연교탕→X)

코와 귀는 어제처럼 양호한 상태를 유지했다. 그런데 새벽부터 자전거를 타서 그런지 목이 칼칼하고 마른기침이 자주 나왔다.

그러나 타지에 나가 있는 바람에 약을 먹지 못했다.


11월 22일(독활지황탕→갈근탕→인삼패독산→형개연교탕→X→X)

특별히 안 좋은 증상은 없는데 간혹 기침을 하기 시작하면 발작적으로 하면서 가슴에서 마구 가래가 끓어올랐다. 강한 기침으로 끌어올려서 뱉어보면 누렇고 덩어리 진 가래가 나왔다.

집에 갈근탕이 있지만 적증(適症; 맞는 증세)이 아니고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거라 그냥 하루를 견뎠다.


11월 23일(독활지황탕→갈근탕→인삼패독산→형개연교탕→X→X→행소탕)

역시 아침부터 누런 가래를 동반한 발작적 기침이 있었다. 코와 귀, 목의 부기는 전혀 없었다.

출근하자마자 행소탕을 먹었다. 학부 수업시간에 '기침만 하는 경우'나 '발작적 기침'에 행소탕이 잘 듣는다고 했고, 보건소에서 감기 환자를 보면서 그 말이 맞다는 걸 수 차례 보았기 때문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행소탕은 원전에 해수 담성(咳嗽 痰盛; 기침을 하고 가래가 들끓음)이라고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아주 정확하지 않은가?

그리고 아침과 점심 2차례 행소탕 복용 후, 가래는 신기할 정도로 깨끗하게 사라졌다. 현재 시각 오후 3시 27분, 간혹 기침이 있기는 하나 헛기침에 불과하고 발작적으로 이어지지 않으며 기침 시에 가슴이 찢어질 듯한 통증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기도가 촉촉해진 느낌이다.


11월 24일(독활지황탕→갈근탕→인삼패독산→형개연교탕→X→X→행소탕)

아침에 코를 풀자 끈적한 누런 것과 연한 흰 것 사이의 콧물이 끝도 없이 풀려나왔다. 왼쪽 코를 막고 불면 왼쪽 귀에서 바람 부는 소리가 났다. 순간 석션을 한 듯한 시원함을 맛봤지만 출근길에 다시 콧물이 조금씩 나고 가슴 깊은 곳에서 간질간질한 기침이 나왔다.

출근하자마자 행소탕 2포를 먹었다. 미량의 가래를 두어 번 뱉고 나니 어제와 비슷한 상태가 되었다. 점심 먹으러 가면서 찬바람을 쐬었더니 조금 콧물이 나다가, 다시 2포를 먹고 나서는 거의 콧물이 나지 않는다. 밤까지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고 자기 전에 2포를 더 먹었다.


11월 25일(독활지황탕→갈근탕→인삼패독산→형개연교탕→X→X→행소탕→복약종료)

코를 통한 호흡은 정상의 70% 수준까지 회복되었고 콧물이 흐르거나 가래가 들끓지 않는다. 오전 중에 시간당 한두 번의 기침을 했으나 발작적이지 않은 가벼운 것이었다.

약은 먹지 않고 따뜻한 차를 마셨다. 이대로라면 하루 이틀 더 몸조리를 한다는 전제하에 감기는 완전히 나을 것 같다.


※ 소감

감기 기운을 느낀 때부터 (준)완치에 이르기까지 일주일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보통 가벼운 감기가 들었을 경우, 마황탕이나 소청룡탕을 복용하는 것만으로 하루 이틀 사이에 낫는 경우도 있지만 이번에는 몸이 좋지 않아서인지 초기 대처를 안이하게 해서인지 쉽사리 낫지 않았다. 물론 처방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원래 맞지 않는 걸 알고 있었던 인삼포함 처방을 고르는 실수가 있었고,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다 보니 한기와 바람에 대한 노출을 철저히 막지 못한 것도 치료가 오래 걸린 것에 대한 이유가 될 수 있다.

일주일간 여러 처방을 적용하고 몸상태를 관찰하며 느낀 것은, 역시 한약은 그 처방을 써야 할 증세일 때 그 효과가 가장 잘 나타나며, 처방을 대충 고르거나 잘못 고를 경우 기대한 효과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갈근탕과 소청룡탕은 고방에 속하고 삼소음과 인삼패독산은 후세방, 독활지황탕은 사상방에 속하지만 사실 이런 것들을 엄격하게 구분하거나 우열을 따져가며 쓸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각각의 이론에 따라 면밀히 분석하고 적용하면 모두가 뛰어난 효과를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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