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디! 열정 가득했던 그 삶이 부럽소

by 유송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고 나오는 길, 발걸음이 무겁다. 눈에선 곧 눈물이라도 떨어져 내릴 듯 하다. 함께 보러 온 친구가 있어 차마 한숨도 쉬지 못하고 눈물도 흘리지 못한다.

내 친구는 영화가 무척 좋고,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내게도 좋고 재밌는 영화였다. 그러나 나는 좋은 영화를 보았다는 만족감보다 '나는 왜 프레디처럼 살지 못하는가'에 대해 느끼는 자괴감이 더욱 컸다.


프레디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알았다. 그래서 밴드를 결성했고 작곡했고 또 노래했으며 관객들 앞에 섰다. 그에게는 그럴 재능도 충분했다. 사비를 털어 발매한 첫 앨범부터 제작자들의 러브콜을 받았으니까.

그의 목소리는 아직까지도 대체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신이 내린 목소리로 유명하다. 최근 역사를 통틀어 단 하나뿐인 목소리. 나는 많은 록밴드의 팬이지만 그렇게 대체할 수 없는 보컬의 대접을 받는 사람 중 프레디만한 사람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영화를 보면서도 나는 음악보다 그 안에 울리는 그의 목소리에 흠뻑 빠져들었다. 이거야말로 퀸이었다며.

그는 열정적으로 살았다. 음악을 위해 시간과 돈과 노력과 체력, 그야말로 자기가 바칠 수 있는 모든 걸 바쳤고 멤버들에게도 같은 열정을 요구했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기타와 코러스를 몇십번이고 반복해 녹음하게 했고, 작업을 위해 농장에 틀어박혀 세상과 고립되는 길을 택했다.

그는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들을 찾았다. 음악을 떠나 인생에서 함께 갈 수 있는 친구를 만나는 것은 크나큰 행운이다. 행운은 인위적으로 만들기 힘들기 때문에 행운이다. 프레디는 복이 있는 남자였고, 그래서 음악적 재능이 출중한 친구들을 만나 전설적인 밴드를 만들 수 있었다.

그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사랑도 했다. 여자와 결혼했었지만 마지막은 남자와 함께 했다. 처음에 여자와 결혼한 것도 동성애자임을 숨기기 위한 위장결혼 같은 게 아니었을 것이다. 처음에 마음이 끌리는 대로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했으나 나중에 동성애자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다른 밴드가 만들기 힘든 독보적인 음악도 만들었고, 독보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세상에 수많은 록밴드가 존재했다 사라져 갔고 오늘날도 태어나고 있지만 누구도 마이클 잭슨을 따라할 수 없듯 누구도 퀸의 음악과 퍼포먼스를 따라할 수 없다. 그야말로 콧수염과 흰 민소매 셔츠와 빅토리 포즈로 하나의 아이콘이 된 채 사라졌다.

그는 늙어가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늙었다고 하기엔 너무나 활기차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마지막 콘서트까지 마치고 팬들의 곁을 떠나갔다. 그가 이십대나 삼십대에 떠났더라면 우리는 수많은 명곡을 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어찌 보면 충분한 시간을 누리며 우리에게 과분할 정도로 많은 선물을 주었다.


이렇게 많은 복을 받았고 멋지고 부러운 삶을 살았던 그이지만 우리처럼 우정과 사랑, 가족을 두고 갈등하는 모습은 참으로 안타까웠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저 하늘에서 내린 재능을 타고난 프레디조차 저렇게 힘든 시간이 있었다니 하며 작은 위로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나는 오직 내가 원하는 모습 그대로 되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존재하겠다" 했던 그 말을 지켰다. 프레디는 프레디다. 중간에 흔들림은 있었을 지언정 그는 스스로 무엇이 되고 싶은지 알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한 멋진 남자였다.

나는 프레디처럼 노래할 수 없고, 밴드를 결성할 수도 없고, 불후의 명곡을 남길 수도 없다. 그러나 나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위해 뜨겁게 돈과 시간과 노력을 바치고, 내가 되고 싶은 그 무엇이 되는 길을 똑바로 걸어갈 수 있다.

오늘 나는 다시 한 번 내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겠다.

Freddy, like you said, the show must go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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