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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Sep 04. 2015

하나로 고정된 건 지루해

얀 마텔 <셀프> 독후감

<셀프> 한정판 표지

얀 마텔의 <셀프>는 읽기 전에 표지부터 자세히 봐야 한다. 뭔가 이상해 보이지 않는가? 얼굴이 뭔가 애매하다 싶더니, 얼굴 아래 몸에는 두 가지 몸이 겹쳐 있다. 그렇다, <셀프>는 성별을 알 수 없는 사람의 이야기다.


보통 사람은 하나의 성별로 태어나, 한 가지 언어를 모국어로 삼고, 다른 하나의 성별을 사랑하며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다. 그리고 평생 다른 성별을 뼛 속 깊이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태생적으로 하나의 성별이 정해져 있고 두 성별의 성질이 애초 다른 것인데 어떻게 깊이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러나 <셀프>의 주인공은 다르다. 주인공은 남자였다가 여자였다가 다시 남자가 되는 식으로 성별의 변화를 일으키고, 외교관인 아버지 덕에 이 나라 저 나라를 옮겨 다니는 덕에 국적 정체성과 모국어가 모호해졌다. 그러니까 이 주인공은 성별로도 언어로도 단 하나의 어떻다는 규정을 내릴 수가 없는 것이다.


덕분에 소설의 분위기와 묘사방식도 180도 전환되기 일쑤다. 주인공이 남자일 때는 남자로서 공감하며 읽다가 여자가 되면 여자들은 이렇군하며 팔짱끼고 읽는다. 분위기는 여성적이었다가 남성적이었다가 중성적이었다가 종잡을 수 없고, 언어적으로는 두 개의 언어를 병치해서 표기하는 방식을 택하기도 한다.


i run and eat food  난 달리기를 하고 밥을 먹어 yo corro y como comida 


비록 세 가지 언어로 예시를 들었지만 위와 같은 식이다. 좀 더 정확하게는 번역본에서 원래 철자가 등장하지는 않으므로 아이 런 앤 잇 푸드 난 달리기를 하고 밥을 먹어 요 꼬로 이 꼬모 꼬미다라고 하는 게 맞겠지만.


하여튼 이렇게 언어도 성별도 국적도 일관되지 않은 탓에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머릿 속이 온통 뒤죽박죽이 되는 기분이다. 한 마디로 뇌를 방망이로 흠씬 타작 당해 곤죽이 돼 버렸다고나 할까. 눈이 핑핑 돌고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어지러운 소설이지만 그만큼 독특한 서술 방식이야말로 이 소설의 매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蛇足

어제 초등학교 2학년들이 여럿 와서 방학숙제로 마을 탐방을 하고 있다고 했다. 보건소와 시청 등으로 몇 명씩 나누어 가서 무슨 일을 하는지 기분이 어떤지 등을 물어보는 것이다. 그런데 나를 향해 한 남자애가 던진 질문은 이거였다.

"남자에요 여자에요?"

순간 어이가 없어 "너는 보고도 모르냐"고 답했는데 애는 진짜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조금 있다가 골반 교정 의자를 보고 '똥침의자'라고 초등학생다운 발상을 뽐내고 사라졌지만 어린 애의 시선에는 그저 머리 묶은 사람은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몸매도 목소리도 달라서 헷갈릴 수도 있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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