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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Dec 27. 2018

[노답민국] 올레디-마이너스 인생

청년 문제 (1)


K사장은 P가 이미 더 조르지 아니하리라고 안심한지라 먼저 하품 섞어 '빈자리가 있어야지' 하던 시원찮은 태도는 버리고 그가 늘 흉중에 묻어 두었다가 청년들에게 한바탕씩 해 들려 주는 훈화를 꺼낸다.
"그렇지만 내가 늘 말하는 것인데…… 저렇게 취직만 하려고 애를 쓸 게 아니야. 도회지에서 월급생활을 하려고 할 것만이 아니라 농촌으로 돌아가서……."
"농촌으로 돌아가서 무얼 합니까?"
K는 말 중동을 갈라 불쑥 반문하였다. 그는 기왕 취직운동은 글러진 것이니 속시원하게 시비라도 해보고 싶은 것이다.

 1934년, 채만식은 신동아에 단편소설 한 편을 연재했다. <레디메이드 인생>이라는 제목의 이 소설은 학교를 졸업해 사회에 나왔으나 취직은 하지 못하는 지식인의 비애를 기성품에 빗댔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하는데 80년이 넘는 세월을 지난 지금에 나는 청춘들에게 똑같은 이름을 부여하고 싶지는 않다. 우선은 나 자신부터 레디메이드, 기성품 따위로 불리고 싶지 않다. 그리하여 나는 이제 대학을 졸업하고 어깨에 커다란 부채를 짊어지고서 사회에 나타난 청년들에게 새로운 이름을 부여해주고 싶다. 이름하야 올레디-마이너스already-minus 인생이다.

 한 아르바이트포털의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의 29.9%가 빚을 갖고 있으며 갚아야 할 총액은 평균 2,580만원이라고 한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자랑스럽게도 6년제 학교를 다닌 덕분에 남들보다 두 배에 가까운 5천만원의 학자금 대출을 안고 졸업했다. 졸업하는 날 어찌나 신이 나던지, 이제 더 이상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보다 일단 앞으로는 6개월마다 5백만원씩 빚이 늘어날 일은 없다는 사실에 함박웃음을 짓고 사진을 찍었다.

 온 사회가 '대학은 나와야 사람 구실을 하지.' 하고 속삭이면 보통 사람은 다수의 의견을 따르게 마련이다. 그래서 대부분 모의고사 성적표를 받아들고, 입시기관에서 나온 배치표에다가 자기 점수에 맞추어 선을 죽 그은 다음 그 중에 하나를 고른다. 어떤 직업을 갖고 싶은지, 어떤 적성을 갖고 있는지는 상관없다. 어차피 우리는 다 똑같이 국영수를 배우고 똑같이 어딘가의 대학에 간다. '졸업하면 뭐라도 할 일이 있겠지.' 그게 학생들의 믿음이고, 순진한 우리 학생들은 곧 배신 당한다. 절대 학생들을 탓하지 말라.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니는, 매일 학교와 학원만 오가야 했던 아이들이 비판적 사고력을 갖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단지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열심히 따라왔을 뿐인 우리의 병아리들은 무죄다.

 대학을 가라니까 어찌 가긴 갔는데, 평범하게 아버지께서 세후 300 정도 벌어오시고 어머니께서 전업 주부이시지만 종종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시는 집안의 자식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짜장면과 함께 하는 축하 파티가 아니다. 그들은 은행부터 가야 한다. 사립대학교 등록금은 한 학기 500만원에 육박하고, 뭔지 모르겠지만 입학금이라는 것도 100만원 정도 낸다. 한 가정의 두 달치 수입을 한 번에 털어서 내라? 우리의 병아리들은 은행에 찾아가 대출 상담을 받고 도장을 찍는 것으로 아름다운 올레디-마이너스 인생의 포문을 연다.

 그래도 사회생활 하며 대출서류에 도장 한 번 찍어보는 일은 누구나 겪게 마련이니 일찍 겪었다고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다. 대기만성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또 이 병아리가 대학교 때 천재적인 아이디어를 얻어 졸업할 때쯤 누구나 이름만 대면 아는 외국계 기업에 취업하지 말란 법은 없지 않은가. 사람은 자고로 희망을 갖고 살아야 한다.

 허나 대출도장을 찍고 노란털을 흩뿌리며 떨어뜨린 뒤 제법 하얗고 큰 병아리가 된 귀염둥이는 대학 생활이 등록금 납입만으로는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마당에 키운 병아리가 고양이만 조심하면 되는 줄 알고 있다가 갑자기 나타난 들개에 따귀 맞는 격이다. 한 달 월세 40만원, 생활비 40만원, 거기다 학생회비니 동아리 회비니 내야 할 돈이 어찌 그리도 많은지 주말 아르바이트 하나 뛰어가지고선 일주일에 치킨 한 마리 시켜 먹기도 힘들다. 그래서 잠을 포기하고 투잡을 하거나 잠을 택하는 대신 영양을 포기한다. 김밥 한 줄 물고, 학생식당의 붙박이가 되어 살아가는 청춘은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다.

 조금 영리한 병아리들은 덩치를 키우며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걸 눈치챈다. 중소기업 대졸 초임 2,730만원. 병아리의 대출 평균 2,580만원. 졸업장을 받으며 계산기를 두드려 본 그들은 곰곰히 생각한 뒤 150만원의 이득에 그들은 너무나 기뻐하며 이렇게 외친다. "1년 뒤면 개이득~!"

 그러나 병아리들에게, 그래도 대학 졸업하고 4년이 지난 슈퍼울트라 대선배로서 한 마디 해 주고 싶다. 

 You know nothing, John s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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