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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Dec 28. 2018

[노답민국] 못 생기면 취업도 못 해요

청년 문제 (2)

취직의 시작은 학벌이되, 완성은 얼굴이라

부모님의 친구의 친구의 친구쯤 되는 분의 자식 이야기다. 내 또래라는 그 친구는 서울에 있는 꽤나 이름난 대학교를 졸업했다. 문과였던 그 친구는 은행에서 일을 하고 싶어 지원을 하기 시작했는데 학점도 좋고 여러 입상 경력까지 있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서류는 전부 통과하는데 면접을 자꾸 떨어졌다. 차라리 서류부터 떨어졌으면 모를까,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던 그 친구에게 어느 날 학교 선배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솔직히 말해 은행 직원은 얼굴도 많이 보니까, 성형을 해 보는 게 어때?"

 한국은 위대한 나라다. 특히 뭔가를 조합해 이상적인 것을 만드는 게 천재적인 자질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짬짜면. 세상에 짬뽕과 짜장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람들을 위해 아예 그릇 두 개를 합쳐 버리는 발상을 해 낼 수 있는 나라가 대체 어디 있을까?

 그러나 한국인의 조합을 통해 이상적인 세트 만들기는 겨우 짬짜면 따위에서 그치지 않았다. 때는 바야흐로 2009년, 새로운 인재를 뽑는데 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뽑아야 할까 고민하는 대기업 인사담당자들을 위해 <스펙 8종 세트>라는 게 개발되었다. 기존에 있던 취업 3종 세트인 학벌·학점·토익에 덧붙여 인턴·봉사 활동·공모전·자격증·아르바이트가 추가된 것이다. 이렇게나 분명하고 세밀한 세트메뉴를 가질 수 있다니, 대기업 인사담당은 분명 행복한 직업일 것이다. 아마 취준생들은 이 8종 세트를 보며 부들부들 떨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욕심쟁이들 같으니!" 하며 말이다. 허나 인류는 진화한다. 2016년, 인터넷에서 또 하나의 기준이 추가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스펙 9종 세트를 완성하는 최종 관문은 바로 '성형수술'이다.

 요즘 대학생들은 대학교 1학년 때 동아리에 잘 가입하지 않는다고 한다. 예전에는 밴드부, 검도부, 당구부 등등 학교 공부 외에 다양한 취미생활을 즐겼다면 요즘은 1학년 때부터 취업 경쟁에 돌입하느라 학점 따고 토익 공부 해야 하니 동아리 같은 건 할 시간도 없다는 것이다. 대신 영어회화 동아리나 경제시사연구 동아리 등 공부와 취업에 도움이 되는 동아리의 가입희망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산소학번을 비롯해 낭만의 시절에 대학교를 다녔던 선배들이 "요즘 애들은 낭만을 몰라."라며 꼰대화 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지만 그 분들이 혀를 차던 말던, 9종 세트를 보면 신입생들의 딱한 사정을 이해해 주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나마도 다른 것들은 노력으로 극복할 여지나 있지, 성형수술은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타고난 얼굴이 그럭저럭 봐줄 만하다면 천만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자기 얼굴에 만족하고 살아온 사람일지언정 '사회로의 진출'이나 '취업' 따위를 위해 돈을 내고 얼굴을 뜯어 고쳐야만 한다. 사람 사는 사회라고 하기엔 너무나 각박하고 속물적이라 가슴이 아프다.

 낭만파라고 부를 수 있는 일부 00년대 선배님들께서 '어떻게 성형까지 해 가며 취업을 할 수가 있나, 이 사회가 어찌 되려고' 하며 갓 쓰고 혀를 찬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후배들은 정말 절박한 심정으로 9종 세트의 완성에 만전을 기하고 있으니 그런 소리 하고 싶거들랑 성형 수술을 위해 최소 100만원 정도는 보태고 하시길 권해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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