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송 Aug 23. 2019

가끔은 일부러 서점에 가야 한다

한남동 스틸북스 방문기

 추석 연휴를 맞아 몽골로 떠나기로 했다. 그 때문에 비자를 받으러 멀리 있는 한남동까지 가야했다. 대중교통으로 왕복 4시간이 걸리는 한남동에 가며 그저 비자만 받아올 순 없어 서점을 검색했다. 그렇게 나는 복합문화공간이라는 '스틸북스'를 방문하게 됐다.

스틸북스의 일곱 번째 테마 <술>

 스틸북스는 몽골비자센터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 있었다. 점심시간의 한남동 거리는 뜨거웠고 사람들은 분주히 걷고 있었다. 7천원에서 1만원을 오가는 점심 메뉴들의 사이를 걸어 나는 서점 앞에 도착했다.

 매번 테마가 있는 모양이었다. 지금 전시 중인 테마는 <술>이었다.

 나는 오래 전에 술에 미쳐 있었다. 일주일에 7일, 10병의 소주를 마시며 살았다. 그러다 몇 번인가 길바닥에서 눈을 떴고, 어느 순간부터는 술을 멀리 하게 되었다. 요즘은 한 달에 두 번 정도 마신다. 지금은 멀어진 술이지만 이 테마를 통해 무엇을 볼 수 있을까, 그것이 기대되었다.

 오르는 계단에서 선명한 사선들과 오묘한 균형이 보였다. 베이지색과 갈색의 조화도 따뜻하게 느껴졌다. 번잡한 광고물을 붙여놓지 않아 눈이 편안했다.


 오랜만에 서점을 찾으면서도 나는 '글쟁이라면 그래도 서점에 가끔은 들러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지, 이미 익숙할 대로 익숙한 서점에서 무언가를 찾게 되리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너무나 오만한 생각이었다. 서점에는 여전히 무한대의 세계가 펼쳐져 있었고 나는 금세 그 안으로 빠져들었다.

 요즘 반려동물을 키우고자 생각하는 내게 <동물을 사랑하면 철학자가 된다>가 들어왔다. 내가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으면서도 주저하고 있는 이유는 거기에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이별 때문이다. 만남부터 '이별'까지 이야기한다는 소개글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환자 혁명>이 눈에 들어온 것은 역시 내 직업과 무관하지 않다. 한의사로서 자기 건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환자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너무나 무리한 노동, 너무나 좋지 않은 생활 습관으로 스스로의 몸을 망가뜨리고 견뎌온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 이 책은 혁명이 되어줄 수 있을까? 이 책을 통해 내가 그들에게 건넬 수 있는 위로가 조금 더 나아지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 위층으로 올라갔다. 여러 분야의 책을 망라하고 있지만 (다만 공간이 협소한 만큼 책의 종류가 많은 것은 아니고 테마에 맞거나 스테디셀러인 것을 위주로 선별해 둔 것 같다) 전시 테마에 맞는 책을 골라둔 점도 재밌었다.

 음주의 습관에 따라 초보자, 애주가 등으로 등급을 나누어 읽을 만한 책을 소개해 주기도 하고 단순히 술에 관해서만이 아니라 '술과 어울리는 음식'을 소개해 준다는 이유로 음식에 관한 책들을 모아놓기도 했다. 소주를 싫어하거나 막걸리를 싫어하는 사람은 있어도 아예 술을 싫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테니 대다수 사람들이 흥미롭게 볼 수 있는 테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번 방문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음악 혐오>의 발견이었다.

 '공쿠르상 수상 작가가 말하는 음악의 시원과 본질'이라는 띠지의 소개글만 보아선 정말 기피하고 싶은 책 일순위다. 정말 정말 재미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마치 성문 종합 영어처럼 생긴 표지도 사기 싫은 마음이 들게 하는데 한 몫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음악을 혐오한다는 제목에는 상당히 호기심이 일었다. 클래식이 싫어도 락을 좋아할 수 있고, 락이 싫어도 재즈를 좋아할 수 있는데 음악을 혐오한다? 왜?

 그렇게 펼쳐본 책 속에는 정말로 음악의 시원과 본질에 대한 작가의 지식과 생각이 적혀 있었지만 그게 결코 지루한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잠깐 본 내용임에도 한 문장 한 문장이 시적이고 영감을 준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 나는 이 책을 사기로 마음 먹었다.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사람들은 자기가 책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하루에도 수백 권의 신간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이다. 분야별 베스트셀러만 해도 다 읽을 수 없는 이러한 풍요 속에서 정말로 내게 필요하고 좋은 책을 찾기도 사실은 쉽지 않다. 그것이 <음악 혐오>처럼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책이라면 더더욱.

 그래서 우리는 가끔 일부러 서점에 가야 한다. 인터넷창으로는 알 수 없는 실제 책을 접하기 위해, 기대치 않았던 우리의 인연을 만나기 위해서 말이다.

 집에 와서 인터넷으로 <음악 혐오>를 검색해보니 좋지 않은 평도 꽤나 많았다. 남의 평가에 의존해 책을 사려 했다면 나는 이 책을 결코 사지도 읽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잠시 시간을 내어 서점에 들렀기 때문에 나는 나를 행복하게 해 줄 하나의 새로운 책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열심히 산다고 헛헛함이 없어지진 않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