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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Apr 09. 2020

내가 부잣집 선자리를 마다하는 이유

인생의 본말전도

 이번이 세 번째다. 우리 집보다 훨씬 잘 사는 집에서 사윗감을 찾고 있다며 찾는 일이. 처음에 이런 이야길 꺼낸 것은 오촌 당숙이었고 다음은 직장 상사였고 이번엔 친한 친구다. 그리고 나는 오늘의 제안을 거절했다. 자세한 건 밝힐 수 없지만 사윗감을 구하는 집은 아버지가 교수로 상당히 잘 사는 편이라고 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잘 사는 집일수록 좀 더 혼처 물색에 신중을 기하는 것 같다. 힘들게(힘들게 노동을 했을지 탈세를 했을지 사기를 쳤을지 누가 알겠냐만) 축적한 부를 공유할 사람이기에 그렇지 않을까 싶다. 더더군다나 지금처럼 근로소득으로는 절대 자본을 통한 재산증식을 따라갈 수 없는 요즘, 기존에 가진 부의 가치는 더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혼처를 고르고 고르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물론 부잣집과 부잣집의 만남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사실상 상대에게 부잣집+자식과 엇비슷한 나이+좋은 학력+좋은 직업+인성 등등을 요구하다 보면 그 후보자가 한없이 줄어드는 게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집안의 돈은 없어도 적어도 지능과 직업이 보장된 전문직-간혹 전문직이면 인성도 좋다고 여기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반드시 보장된 것은 아니다-이 부잣집 사윗감으로 선택받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런 제안이 흥미롭긴 하지만 구미가 당기진 않는다. 아니, 솔직하고 적확하게 표현하자면 당연히 부잣집이라는 말에 솔깃하지만 그 뒤에 분명히 대가가 있을 거라 믿기에 일차적인 욕망을 억누른다.

 사실 구체적으로 따져보아도 부잣집 선자리는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은데, 그 이유를 하나씩 적어보겠다.

 첫째, 부잣집 돈이 곧 배우자의 돈은 아니다.

 흔히들 이런 제안이 오면 그 집 딸이 외동인지를 먼저 살피라고 한다. 아들이 같이 있을 경우, 아들에게 재산을 많이 상속해주면 결국 사위가 받을 수 있는 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걸 따지는 것 자체가 너무 속물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요즘은 상속에 있어 균등배분이 원칙이라고 알고 있는데 속설이 그러하다.

 둘째, 배우자의 돈도 내 돈이 아니다.

 부모님 세대에는 부부의 자산은 공동자산이라는 개념이 강했던 것 같은데 우리 세대는 좀 다른 것 같다. 굳이 세대를 가르지 않더라도 양가의 재산이 크게 차이나는 경우, 시댁에는 생활비를 드려야 하는데 친정에는 안 드려도 되고 그래서 부부 합산 소득에서 시댁에 생활비를 드리다 보면 다툼이 생길 수밖에 없다. 아무리 친정 입장에서 큰돈이 아니라 해도 두 사람이 같이 번 돈을 한쪽에만 드리자고 하면 누가 좋아할까? (물론 그런 것도 다 이해해 주는 사람도 있겠지만.)

 셋째, 돈이란 영속이 보장된 물질이 아니다.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다. 내가 바른 길을 살고자 하는 마음을 굳건히 지키면 바른 사람으로 인생을 마감할 순 있겠지만 지금 내게 10억이 있다고 해서 죽을 때도 10억 이상이 있으란 법은 없다. 중간에 병에 걸려 거액의 돈을 쓸 수도 있는 것이고 사고가 날 수도 있고 자식을 가졌는데 일곱 살 된 자식이 남의 페라리에 올라가 뛰어노는 바람에 수억이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돈에 눈이 멀어서 결혼을 했다면 그 돈이 사라졌을 때는 무엇이 남아있을까? 그때도 과연 내가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감정이 남아있을까?

 세 가지 이유만 꼽아도 부잣집 선자리가 반드시 좋은 일은 아님을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나는 오히려 안 좋은 면이 더 많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양가의 부가 어릴 때부터 차이가 컸다면 자라나는 과정에서 가치관도 크게 다를 수 있고 생활의 사소한 부분에서도 큰 벽을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외식은 특별한 날에만 하는 줄 아는 사람이 마음 내킬 때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산 사람과 결혼했을 때 단순히 외식이라는 하나의 문제를 가지고도 큰 다툼이 생길 수 있지 않겠는가. 

 또한 돈을 보고 결혼한 사람은 그 돈의 무게에 눌려서 자연히 상대의 눈치를 보게 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직장에서 상사에게 불만이 있어도 쉽사리 드러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당연히 돈을 주는 게 윗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직장에서 돈으로 쩔쩔매는 것도 싫은데 편히 쉬어야 할 집에서 배우자의 눈치까지 봐야 한다면 그 삶은 천국보다는 지옥에 가까울 것이다.

 솔직하게 부잣집 선자리에 대한 나의 생각을 털어놓았지만 무조건 그런 결혼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 식으로 선을 보아서 결혼할 때 잘 되기 위해서는 '이 사람 자체가 좋은데 집안이 넉넉하니 금상첨화구나' 하는 태도여야지 '이 사람 집안이 넉넉하니 사랑스럽구나' 하는 태도여선 한 치 앞을 모르는 세상에서 나중에 불행해지기 쉽다는 이야기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도 평범한 집안에서 자라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다가 부잣집에 장가를 간 사람이 있다. 주변에선 다들 그 사람을 부러워하는데 단지 그 집의 재산을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같은 성격이라면 돈이 많은 쪽이 당연히 더 좋다고 생각하니 운 좋게 그런 배우자를 만난 것을 부러워하는 것이다. 그렇게 잘 맞아서 행복하게 사는 부부도 있을 것이고, 또 정말 돈에 목적을 두고 자존심과 다른 것을 내려두고 결혼해 행복하게 사는 부부도 있을 것이다. 세상엔 다양한 형태의 삶이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순간의 욕심에 눈이 멀어 인생에서 가장 신중해야 할 결정을 잘못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굳건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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