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실에서 보는 흑백의 영상과 가슴을 울리는 목소리가 주는 깊이
세상의 영화를 둘로 나눌 수 있다면 영화관에서 꼭 봐야하는 영화와 집에서 봐도 되는 영화로 나누겠다. 후자가 꼭 작품성이 떨어져서만은 아니다. 어떤 영화는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간 스펙타클한 액션장면 때문에 영화관에서 봐야하고, 어떤 영화는 집에서 홀로 울면서 봐야해서 집에서 보는 거니까.
<동주>는? 무조건 영화관에서 봐야한다.
<동주>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하나, 절대 컬러를 내비치지 않는 흑백으로 일관된 영상미.
둘, 귀를 넘어 가슴을 울리는 '윤동주'의 음성미.
이 두 가지 모두 <동주>를 영화관에서 봐야 할 이유가 된다.
영상을 왜 굳이 흑백으로 처리했을까? 옛날 영화니까 옛날 느낌을 주려고?
그것도 맞겠지만 <동주>에서 이 흑백처리는 '영화 속 인물에 대한 온전한 집중'을 제공한다. 화려한 배경이나 지나가는 것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우리의 눈은 오직, 외로운 싸움을 해 나가는 윤동주에게 고정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캄캄한 영화관에서 오직 거대한 윤동주만을 바라보는 것은 한 번쯤 꼭 해 볼 만한 일이다. <동주>의 상영일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당장 영화관으로 달려가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그의 시. 그 아름다운 글자들을 당신은 소리내어 읽어본 적이 있는가? 아니, 누가 읽어주는 것을 들어본 적은 있는가?
캄캄한 영화관의 흑백 영상, 그것들과 함께 울리는 윤동주의 나지막한 목소리는 귀를 천상의 그 곳으로 데려간다. 눈을 감고 음미할 필요가 없다. 눈을 뜨고 있어도 모든 감각이 귀로 쏠릴 만큼, <동주>의 낭송은 뛰어났다. 이 역시 집에서는 누릴 수 없는 즐거움이다. 컴퓨터의 팬 돌아가는 소리조차 소음이다. 오직 윤동주의 시에 집중하기 위한 공간, 그 곳이 바로 영화관이다.
이제 <동주>를 보러 갈 마음이 생겼는가? 한 가지 더 말해두고 싶은 게 있다. <동주>를 보러갈 때 스크린이 아닌 사람 '윤동주'를 만날 준비를 하시라. 이런 과거 인물을 다룬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점이 바로 과거 인물과의 재회의 장을 마련해 준다는 점이다.
그간 윤동주의 시를 읽으며 아름답다는 생각은 했으나 그것이 비극적이라고는 잘 느끼지 못했다.
그간 윤동주의 위인전을 읽으며 비극적이라는 생각은 했으나 아름답다고는 잘 느끼지 못했다.
<동주>는 윤동주의 삶과 시 사이의 간극을 메워주는, 훌륭한 다리였음을 인정한다. 꼭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