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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Oct 14. 2021

의사의 말이 늘 정답은 아니다

박성동, <천장관절통증 미국에서 수술로 치료하기> 독후감

 의사는 당연히 제반 질환에 대해 환자보다 잘 알아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의사가 환자를 무시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의사들이 환자가 뭘 아냐며 무시하는 게 사실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환자가 책을 쓰면 어떻겠는가? 그저 진상 취급받을 뿐이다. 그래서 저자는 처음에 밝힌다. 본인이 반도체 전공으로 박사를 받은 사람이라고, 자기 말은 한 번 믿어볼 만하지 않겠냐고 말한다.


 나는 요통 환자를 많이 보는데 개중에 천장관절에서 통증을 느끼는 경우도 적지 않다. 천장관절 인대에 손상을 입은 경우도 있고, 요추와 천골이 결합되는 관절 부분에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고 원인은 다양하다. 하지만 정말 심하다고 부를 만한 환자는 드물어서 대부분 약침치료를 통해 호전되는 편인데, 저자의 증상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특히 놀랐던 건 진단을 위해 시행한 이학적 검사 때문에 증상이 심하게 악화됐다는 거였다.


 천장관절 통증의 원인을 찾기 위해서는 방사선 검사뿐만 아니라 직접 손으로 눌러보고 당겨보는 검사를 시행한다. 양성이더라도 "어, 그렇게 하면 더 아파요" 하는 정도의 반응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데, 저자는 이 검사 때문에 증상이 엄청나게 악화되었다고 하니 그만큼 상태가 안 좋았던 것이다.


 저자는 심한 통증으로 인해 여러 가지 치료를 시도하는데, 그 과정만 나열해도 책 반 권이 될 정도다. 2016년 12월 미국에서 귀국한 뒤 한국에서 시행한 치료만 해도 신바로, 체외충격파, 비구순 봉합술, 비구순 절제술, 이상근 절제술, 화침봉침, DNA주사다. 이 중 신바로와 화침봉침은 한의사의 영역이고 체외충격파, 비구순 봉합술, 비구순 절제술, 이상근 절제술은 양의사의 영역이니 한국의 제도권 안에서 할 수 있는 치료를 다 해 본 셈이다. 이 중 자생한방병원에서 한 신바로약침은 거의 효과가 없었고, 한의원에서 한 화침봉침은 6개월간 시술하면서 천천히 호전되었다고 한 점도 인상적이었다. 왜냐하면 일반인들이 그러하듯 한의사인 나 역시 자생한방병원의 고가의 치료라면 어느 정도 치료효과를 담보하지 않을까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비구순 봉합술, 비구순 절제술, 이상근 절제술을 모두 받았다는 것도 너무 비극적인 일이다. 아무리 간단한 수술이라도 몸에 손상을 주는 것인데 그것을 각각 다른 부위마다, 총 세 번을 시행하고도 아무런 증상의 개선을 느끼지 못했으니 저자가 느꼈던 좌절감은 엄청났을 것이다. 이런 부분에서는 환자는 항상 기대가 크고, 환자의 비용뿐만 아니라 회복기간 동안의 시간까지 소모하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수술을 권하는 의사가 신중한 태도로 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불필요한 수술로 몸을 더 망치는 경우가 결코 적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그렇게 수술을 받고도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한 저자가 돌려받은 것은 무엇인가? 돈을 돌려받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하지만 모 대학병원의 교수에게서는 정신과나 가보라는 모욕까지 받았다고 하니, 환자의 마음까지 헤아려야 한다고 배우는 의사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참담할 따름이다.


 어쨌든 수많은 치료 이후에도 결국 일상생활을 누릴 수 있을 정도로는 회복하지 못해서 저자는 결국 천장관절 유합술(한국에서는 하지 않는다)을 받으러 미국으로 간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결국은 수술을 받고 많이 호전되었다고 하는데 이 수술 후 회복 과정에서도 저자가 자세히 기록해주지 않았더라면 놀랄 부분이 많이 있었다.

 예를 들어 저자는 수술 이전에는 기침을 하면 왼쪽 장골과 천골이 부딪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론상으로는 장골과 천골은 대단히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어 각도로는 1~2도, 길이로도 1mm 이내의 움직임만 발생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런 천장관절이 기침할 때 덜그럭 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저자의 증상이 예외적으로 심각했다는 것을 말한다. 아마 온갖 치료에도 불구하고 결국 수술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물론 오진으로 인해 불필요한 수술을 받은 것도 한몫했겠지만 증상이 유달리 심했던 탓도 있을 것이다.


 얼마나 그 과정이 억울하고 힘들었으면 저자는 그토록 고통받고 멸시당하는(정신과나 가보라는 소리를 듣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면서 책을 남겼다. 물론 천장관절의 인대 문제가 이 정도까지 악화되는 경우가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환자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대충대충 루틴만 돌리는(Xray 촬영 후 소염제 처방, 이후 MRI 촬영, 이후 스테로이드 주사나 수술 권유) 의사들은 이 책을 읽고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한다. 좀처럼 호전되지 않는 환자의 말을 귀 기울여 들은 적이 있는지, 지금보다 더 나은 치료법이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은 있는지 말이다. 그냥 대충 루틴만 돌릴 의사 같으면 몇 년 안에 AI가 해도 그보다는 훨씬 낫다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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