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 요코, <죽는 게 뭐라고> 독후감
아직 완전히 열린 공간에서 이야기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나는 자주 죽음을 갈구하고 있다. 또한 죽음을 기다리고 있고, 죽음을 상상하며,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왜냐하면 삶의 본질은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며,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부모님은 물론이고 여자 친구, 혹은 친한 친구에게도 진지하게 하기 어려운 이유는 마치 내가 더 이상 살아갈 의욕이 없는 사람인 것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음을 갈구하고 기다리는 것은 살아갈 의욕이 없는 것과는 다르다. 나는 살아있고, 내일도 내년에도 살아있을 확률이 높다. 나는 살아있는 동안에 고통을 겪기를 원하지는 않기 때문에 잘 먹고 잘 입고 잘 자기 위해서 돈을 벌고, 돈을 잘 벌기 위해서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니 이것은 그냥 누워서 죽기를 기다리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워낙 기피하고 이상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죽음에 대해 여태 누구와도 진솔하게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때문에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죽는 게 뭐라고>는 그런 면에서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나만큼이나 죽음에 대해 지나치게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은 죽음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저자인 사노 요코는 70살이 넘었고 나는 아직 40살도 되지 않았지만, 죽음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만큼은 나는 사노 요코와 거의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죽는 건 죽는 거다. 그 뒤의 일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이니만큼 잘 준비해 놓는 것이 중요하며, 지나치게 두려워하거나 동요할 필요도 없다.
그것이 사실은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의 동물로서 당연한 의무라고, 저자는 솔직하게 말한다. 나 역시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 죽는 게 그렇게 별일인가? 아니, 왜 죽음과 노화를 그렇게들 피하려고 하는 것인가? 어떤 부자도 여태까지 시간을 돌리거나, 노화를 막거나,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오늘 내가 출근하는 길에 나도 모르게 개미 두 마리를 밟아 죽였을 수도 있고, 오늘 하루 동안에도 몇 명의 사람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차에 치여 세상을 떠난다. 죽음은 그렇게 갑작스럽고 피할 수 없는 것이며 생명의 필연적 결말이다. 나는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다.
네 분의 조부모 중 가장 먼저 돌아가신 분은 외할아버지셨다. 연세에 비해 정정한 편이셨는데 자다가 화장실에 가는 중 넘어지셨고, 화장실에 갔다 온 이후 누워서 돌아가셨다. 낙상으로 인한 사고사라고 해야 할지 연세에 의한 자연사라 해야 할지 애매하지만 여하튼 그렇게 갑작스럽게, 병원 신세를 지지 않고 세상을 떠나셨다.
나는 처음 연락을 받았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장례식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눈물을 펑펑 흘리며 울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정하게 족발과 막걸리를 잡수시던 분을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다고 하니 그 이별이 섭섭하고 실감 나지 않아서 슬펐다.
그러나 이후 친조부모께서 돌아가셨고 그때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슬프지만 이별은 시기만 모를 뿐 예정되어 있는 거라는 생각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내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는 지금까지 견지해온 태도처럼 의연하길 바란다.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어쨌든 죽음은 내 목숨을 거둬갈 테고 몇 년이 지나면 누구도 날 기억하지 못할 테니 아무 상관없지만 말이다.
죽음이 너무 두려울 때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