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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Oct 10. 2022

스러져가는 은하 같은 찰나의 아름다움

태어나서 처음으로 여의도 불꽃축제에 가봤다. 오전 11시 15분에 여의나루 역에 내렸는데, 폴딩 카트에 담요 따위를 실은 몇몇 사람들이 보여 나도 모르게 마음이 급해졌다. 생각해 보면 무려 행사가 8시간이나 남아 서두를 일이 아니었는데도 괜히 마음만 앞서 헐떡거리며 전철역을 빠져나왔다.

여의나루 역 3번 출구로 나오자마자 한강공원이 보였다. 날씨는 맑았고 행복한 표정의 사람들이 공원을 걸어 다니고 있었다. 떡볶이나 번데기 따위를 팔러 나온 장사꾼들이 막 장사 준비를 시작하고 있었다.

원래는 63 빌딩이 있는 곳까지 갈 생각이었으나 원효대교 서남단을 걷다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여기서도 충분히 잘 보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좋은 곳에 빈자리가 하나 있어 돗자리를 펼쳤다. 가지고 온 태블릿과 의자, 양산을 꺼내 장시간 독서를 위한 최적의 세팅을 하고서 시간을 보냈다.


축제는 정확히 7시 20분에 시작되었는데, 보름에 가까운 동그란 달이 뜨고 나서 30분 정도 지난 후였다. 주변 사람들이 크게 카운트다운을 하는 바람에 축제가 시작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각양각색의 폭죽이 밤하늘을 수놓았다. 어떤 것은 빨갛게 분산하며 사라졌고, 어떤 것은 마치 연을 날리는 것처럼 검은 하늘에 매달려 한참 꼬리를 날렸다. 어떤 것은 빨간색으로 파란색으로, 파란색에서 다시 한번 초록색으로 색이 변하기도 했다. 또 어떤 것은 반딧불이를 형상화한 듯 초록빛이 빙글빙글 돌다가 사라졌다. 모두 저마다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폭죽은 발사 직후 하늘로 올라갈 때, 공중에서 폭발할 때, 그리고 사그라들 때 각각 아름다움이 있다. 나에겐 사그라들 때의 아름다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밤하늘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너무 많은 폭죽이 터져 대낮같이 밝아진 직후, 강렬한 빛이 먼저 사라지고 옅은 연기와 함께 남는 작은 별들이 있었다. 그 별들이 눈에 띄었다 사라지기까지의 시간은 약 3초. 나는 그 3초가 꼭 소멸하는 은하를 보는 것 같아 묘한 기분이 들었다.

물고기는 물속에서 살아가기에 물의 존재를 외부의 시선으로 인지하기 어렵다. 우리도 은하 속에서 살아가지만 대지위에 있다고 생각하지 은하 속에 있다고 인지하기는 어렵다. 단지 우리는 과학자들이 말하고 보여주는 것을 통해 은하 속에서 살고 있다고 '가정'하고 '믿는' 것뿐이다. 놀이를 위해 만들어낸 폭죽을 통해 잠시나마 엿보았던 은하의 모습은 이틀이 지난 지금도 자꾸 생각날 정도로 강렬한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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