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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Dec 25. 2022

텍사스에서 친구가 왔다

 한 2년 만인가, 텍사스에 공부하러 간 친구가 한국에 돌아왔다. 한 달 정도 머물 계획이라고 해서 원래는 같은 고등학교 동창들끼리 얼굴을 보려고 했는데, 은행원 친구는 연말이 가장 바쁠 때라 나올 수 없다 했고 다른 친구는 거리가 너무 멀어 오기 힘들다 해서 둘이 만나게 됐다. 약속시각, 지하로부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온 친구의 얼굴은 2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씩씩한 기운이 감돌았고, 몸은 다부져 보였다.


 우리는 조개찜을 놓고 마주 앉았다. 친구는 미국에서 절대 볼 수 없는 외식 비주얼이라며 사진을 찍었다. 나는 100불 정도 하지 않겠냐고 말했지만, 친구는 그 이상일 거라 했다. 밴쿠버 시절이 생각났다. 그땐 별로 먹은 것 같지 않아도 외식이면 일단 50불부터 시작했고, 소주는 병당 가격이 15불에 주류세까지 붙어 고급술을 마시는 기분이었다. 


 친구는 미국에서 새로이 시작할 계획이라고 했다. 한국에서 힘들게 쌓았던 이력을 포기하고, 신입으로서 미국에서 하나씩 쌓아나갈 생각이라고 했다. 어떤 점이 그렇게 좋아서 새로 시작할 정도냐고 물었다. 친구는 한국에서의 직장이 비전이 없고, 또한 천혜의 자원을 갖추었고 사람끼리 크게 부딪힐 일이 없는 게 미국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함께 미국을 따라갔던 아내 역시 미국을 더 마음에 들어 한다고도 했다. 나는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자기 취향에 맞는 곳을 발견하고, 그곳에 살 결정을 했고, 다행스럽게도 미국의 한 기업에서 인턴으로나마 채용을 결정했다는 사실 모두가 축하할 일이었다. 


 누군가에게 새 출발은 두려운 일이다. 누군가에겐 설레는 일이다. 때로는 두 가지 감정이 공존하기도 한다. 내 친구의 얼굴에는 분명 설렘이 있었고, 두려움은 잘 보이지 않았다. 단단한 돌멩이 같은 친구다. 역경이 오더라도 아내와 잘 헤쳐 나가리란 확신이 있다.



 저녁 7시에 만나 새벽 2시까지 술잔을 기울였지만, 2년 만의 만남은 짧긴 했다. 그러나 각자의 자리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지난 2년이 그러했듯이 앞으로 2년이 될지, 3년이 될지 모르지만 재회까지의 시간은 그다지 길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니 친구가 두고 간 선물이 있었다. 텍사스 맥주와 TRADER JOE'S라는 미국의 슈퍼마켓에서 파는 간식들이었다. 나는 단 한 번도 텍사스에 가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갈 일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친구가 가져다준 선물들로 인해 텍사스가 내게 조금 친근한 도시가 된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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