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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Jun 12. 2024

패배를 예견할지라도

 생활체육복싱대회에 접수한 건 그저께의 일이다. 신청을 받는다는 공지는 보았지만 딱히 관장님께서 먼저 권유하진 않으시기에 좀 더 수련한 후 다음에 나가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예전에 한 번 스파링 해 본 적 있는 회원님이 나에게 물었다.

 "생체 안 나가요?"

 - 예, 아직 부족한 것 같아서...

 "에이, 스파링 때 보니까 잘하시던데. 체력 좀 더 올리시고, 30대 체급끼리 나눠서 하니까 나가서 만약 한 번만 이기면 우승할 수도 있어요. 나가봐요."

 그렇다. '우승할 수도 있어요'라는 말이 허영 가득한 나에게 불을 지폈던 것이다. 운동을 마치고 나가다 관장님께 슬쩍 생체 나가면 어떻겠냐고 여쭙자 관장님, 한 3초간 침묵하시더니 하시는 말씀,

 자신 있어?

 뭐, 자신이랄 게 따로 있나. 스파링 경험이래 봐야 열 번도 채 안 되지만, 그래도 오래 운동하시고 잘하는 분이 나더러 가능성이 있다고 하니 이럴 때 초보의 자신감은 하늘을 찌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관장님께 그렇게 말씀드리진 않았지만.


 그런데 오늘 체육관에 가서 주민번호를 적고 있는데 관장님이 대뜸 체중이 얼마냐고 물으신다. 70kg라고 하니 마침 70kg 미만으로 나가는 30대 다른 사람이 있으니 스파링을 한 번 해보라고 하셨다. 갑자기 심장이 쿵쿵 뛰었다. 그럼 사실상 대회에서 마주칠 운명인데, 대회의 운명을 미리 점쳐보는 자리가 아닌가. 슬쩍 상대를 보니 몸도 탄탄해 보이고 줄넘기하는 폼이 적어도 나보단 복싱을 오래 한 것 같아 긴장이 바짝 올라왔다.

 하지만 본격 스파링은 이뤄지지 않았다. 원래 수요일은 스파링 하는 날이 아니라서 내가 마우스피스를 아예 집에 두고 온 탓이다. 관장님은 아쉬운 대로 서로 방어기술 연습하는 수준의 스파링이나 해 보라고 하셔서 오늘 처음 만난 라이벌과 가볍게 주먹을 나누었다.

 스파링이 끝나고 나니 드는 생각.

 아, 월요일에 그 사람이 한 말에 속았다!

 나이별로, 또 체급별로 나누니까 운 좋으면 한 번만 이겨도 우승할 거라는 달콤한 말에 속아 넘어갔건만. 멀지도 않은 바로 같은 체육관에 같은 나이/체급 출전자가 있었다. 그것도 복싱 3년 차-나는 2년 차-의 관록이 묻어나는 복서가! 

 아무래도 패배의 확률이 높지만 그래도 대회에는 출전할 생각이다. 왜냐하면 꼭 승리할 확률이 높을 때만 승부에 임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때로는 질 것 같지만 승부에 임해야 한다. 세상에는 '무조건'은 없기 때문이다. 그것도 2년 차와 프로 복서도 아니고 2년 차와 3년 차라면 지금 조금 실력 차이가 난다 해도 실전은 한 번 붙어볼 만하지 않을까? 실전 무대에서 겨뤄본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설레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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