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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로 May 12. 2021

출근길 페스티벌


월요일 출근길 지옥철. 가방과 외투가 부대끼고, 에어컨을 틀어도 습해서 땀이 나는 여느 때와 같은 지하철이었다. 다들 핸드폰이나 전자기기를 들여다보고 있는 평범한 풍경 속에서, 유독 이질적인 한 명이 있었다.


그건 바로 내 옆에 선 여자였다. 그는 하필 내 옆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속으로 '자리 운도 더럽게 없지.'라고 생각했다.) 라틴계열의 신나는 음악을 듣는 건지, 유선 이어폰 너머로 툼치타치 하는 일정한 북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손으로 쉬지 않고 박자를 타고, 음악의 변곡점을 따라 손바닥을 접었다가 구부렸다가 펴길 반복하고, 자신의 골반을 쉼 없이 두드렸다.


게다가 미약한 무릎 바운싱, 슬쩍슬쩍 어깨를 내밀어 추는 웨이브, 가끔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까치발 들기, 고개 까닥이기 등 그 자리에서 최소한의 몸짓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춤사위를 소화해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하나로 질끈 묶은 파마머리가 리드미컬하게 움직였다.


나는 바로 옆에서 책을 읽다가 어느새 그의 몸짓에 온 신경이 쏠렸다. 처음엔 황당한 마음 반, 책 읽는데 옆에서 요란하게 구니 성가신 마음 반이었다. 그런데 보다 보니 점차 흥이 났다. 그의 자유로움에, 그의 흥에 나도 전염되어 버렸다. 어차피 눈에 들어오지 않는 책일랑 덮어버리고 무선 이어폰을 귀에 꼈다. 그리고 내가 아는 가장 신나는 라틴계열 음악을 틀었다. 볼륨도 좀 키웠다.


지하철에서 내려 에스컬레이터를 타는데 나도 모르게 손잡이를 박자에 맞춰 두드리고 있었다. 내 발은 무빙워크를 탄 듯 자동으로 회사를 향하고 있지만 그때만큼은 내가 있는 곳이 페스티벌장이었다. 신나는 마음과 히죽이는 입은 마스크 아래로 숨긴 채, 내 마음속에서만 열리는 뮤직 페스티벌을 즐겼다.


지하철에 있는 사람들이 죄다 이어폰으로 클럽 음악을 듣고 있는 건 아닐까 상상해보았다. 언뜻 지치고 무미건조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마스크 아래로 웃음을 감추고 있다면? 그렇게 생각하니 지하철도, 출근길도 좀 웃기고 신이 났다.


그래, 출근 전부터 벌써부터 우울할 필요가 뭐 있냐. 신나는 노래가 있고, 그 노래에 흥만 난다면 그게 출근길이든 퇴근길이든, 캘리포니아 코첼라든, 라스베이거스 EDC든 다를게 뭐냐. 양 옆으로 팔을 뻗지도 못할 만큼 좁은 지하철에서도, 옆사람을 건들지 않을 정도의 작은 움직임으로 춤을 추던 그 사람에게 대책 없는 낙관과 자유가 옮아온 것 같았다.


잊고 있던 예전의 출근길 루틴도 생각났다. 바로 출근길에 신나는 노래를 들으며 파티장에 가는 상상을 하는 것. 포인트는 내가 이 세상 힙쟁이들이 다 모인, 술과 춤을 곁들인 신나는 만찬장에 간다는 상상을 열심히 하는 것이다. 힙합 노래를 들으며 팔자로 좀 건들건들 걸어도 좋고, EDM을 들으며 런웨이를 걷는 모델처럼 횡단보도에서 파워 워킹을 펼쳐도 좋다. 그러다 보면 도착지가 회사일지라도, 가는 길만큼은 축제를 즐기는 마음이 된다.


월요일 아침부터 머릿속 페스티벌을 실컷 즐긴 덕에 출근길 발걸음도 조금은 가벼워졌다. 어차피 출근하는 건데 뭐가 즐겁냐고? 효과가 없을 것 같다고? 믿거나 말거나 한 번은 따라 해 보시라. 추천곡은 Pitbull의 'Celebr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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