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주의적 오타쿠의 타로 입문

미래 빼고 뭐든 물어보세요

by 김세로


계기는 와디즈에서 본 '바나의 한국 타로' 광고였다.



처음에는 포토 카드나 트레이딩 카드를 소장하는 정도로 생각했는데 '해설집은 무슨 내용이지?' '오라클 카드는 뭐지?' 하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따라가다 보니 인터넷 서점에서 타로카드 입문 서적을 뒤지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기간을 놓치는 바람에 정작 펀딩은 하지 못했지만(다행히 네이버 쇼핑몰에서도 판매 중이다).


사실 타로카드의 '주술적인 힘'은 믿지 않는다. 나는 살면서 귀신을 본 적이 없다. 가위에 눌린 적도 없다. 사주도, 혈액형 성격설도, 오하아사도 믿지 않고 굿은 전통 종합예술 정도로 여긴다. 그런 내가 갑자기 "타로카드로 미래를 봐 줄게"라며 나선다면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걱정 가득한 눈을 하지 않을까.


하지만 타로카드를 향한 관심의 씨앗은 삶 곳곳에 심겨 있었다. 가정 환경이니 학교 생활이니 교우 관계 같은 '현실'이라는 텃밭이 아니라 액정을 사이에 두고 펼쳐진 '서브컬처'라는 텃밭이기는 하지만.


카드캡터 사쿠라를 보면서 우리 집에는 왜 크로우 카드가 숨을 만한 곳이 없을까 아쉬워했다.

어릴 적 책장 한 칸을 차지하던 과학앨범 전집에서는 광물에 관한 책, 그중에서도 탄생석 부분을 책장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읽었다.

꾸러기 수비대를 보면서 십이지를, 세일러문을 보면서 태양계의 행성과 기호를, 세인트 세이야를 보면서 황도 12궁을 외웠다.

죠죠의 기묘한 모험도 좋아한다. 타로카드를 배우면서 3부의 스토리 라인이 '바보(The Fool) 카드의 여정'이라는 메이저 아르카나의 흐름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다소 김이 빠지기도 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것까지도 죠죠답다.


궁금한 게 생기면 책부터 사는 타입인 만큼 인터넷 서점에서 '타로'를 검색해 나와 가장 잘 맞을 것 같은 책을 주문했다. 마침 유니버셜 웨이트 타로카드가 세트란다. 착착 소리를 내며 섞은 카드를 날렵한 손놀림으로 펼치는 모습을 상상했지만 아직은 셔플도 스프레드도 어설프기 짝이 없다. 연습만이 답이겠지.



각 카드의 의미를 하나하나 외우기보다는 매일 카드 1~3장으로 그날의 운세를 보면서 리딩 다이어리를 쓰는 것이 좋다고 해서 굿노트 속지를 만들었다. 아직은 그림 보고 이야기 지어내기 수준이지만 수비학과 상징 체계에 대한 이해가 더해지면 그럴듯해지지 않을까.


마이너 아르카나가 유독 많이 나오는 건 어째서일까.


리딩도 리딩이지만 질문을 생각해 내는 일이 어렵다. '샘플 번역을 통과할 수 있을까?' '오늘 하루 좋은 일만 있을까?' 같은 질문은 가급적 피하려고 한다. 나쁜 카드가 나온다 한들 방법이 없지 않은가. 샘플 번역을 중간에 포기할 수도, 하루종일 집 안에 틀어박힐 수도 없다.


어차피 원하는 건 긍정적인 결과니 그 긍정적인 결과를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을 물어보려고 한다. '샘플 번역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통과 여부는 묻지 않는다. 통과 여부는 내가 잘해야 하는 것이면서 나만 잘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니까. 참고로 이때 나온 카드는 '컵 3'이었고 나는 그 카드를 '자신의 관점에 매몰되지 않고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균형을 잡을 것'이라고 리딩했다. 다행히 결과는 '통과'였다.


십 년도 더 전이었다. 친구들과 재미 삼아 타로 점을 보러 간 적이 있다. '6개월 내로 남자친구가 생길까요?' 아니 뭐, 한창 그런 게 궁금할 나이였으니까(...) 결과는 부정적이었지만 남자친구는 생겼다. 카드 대신 외모를 본 거 아니냐며 웃어 넘겼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질문부터 잘못되었다.


내게 있어 타로카드는 '질문을 끌어내는 도구'다. 안개처럼 머릿속을 꽉 채운 고민 사이에서 문장 형태로 된 질문을 끄집어내는 것만으로도 고민의 절반은 해결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질문을 떠올리며 카드를 뽑으면 갈피를 잃고 핑핑 돌아가던 지남침이 서서히 멈춘다. 그 방향이 옳은지 그른지는 사실 별 상관 없다. 가만히 있든 무작정 걷든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고, 결과는 끊임없이 닥쳐온다. 지남침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확신이 떨어질 때쯤 질문을 벼리고 카드를 뽑는다.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질문을 벼리고 카드를 뽑는다. 그러는 사이 해결책은 내 안에서 점점 첨예해진다.


지금은 내 안에 있는 질문을 끌어내는 도구 정도지만 더 공부하고 나면 다른 사람의 질문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모처럼 잡힌 약속에 상대방에게 맞는 덱과 스프레드 천을 챙겨 약속 장소로 향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지금은 리딩 연습이 먼저다. 아차, 셔플 연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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