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은 그만

때로는 '무지'가 상상을 낳는다

by 김세로

<비밀은 힘들어>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나와 K군은 동거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대놓고 욕을 하거나 답이 없다는 듯 고개를 젓는 사람을 만나지 못 했다. 동거를 이유로 멀어진 이도 없다.


"좋아 보이네. 실은 나도 데이트 끝나고 헤어질 때면……."

"맞아, 결혼 준비 힘들어. 얼마 전에는 식장을 보러 갔는데……."


다들 잠시 말을 고르고는 꽁꽁 숨겨 둔 자신의 이야기에서 실마리를 뽑아낼 뿐이었다.


몇 년 전에는 양가 부모님을 직접 찾아뵙고 말씀드리기도 했다. (여행을 겸해 경남에 있는 우리 집에서 1박을 하고, 경북으로 올라가 K군의 집에서 1박을 했다) 꽤 충격을 받으신 듯 보였지만, 문제는 '사후 통보'라는 전달 방식이었다. 동거 자체를 꾸중하시진 않았다. 지금은 통화할 때마다 상대방, 그리고 상대방 가족의 안부를 묻곤 한다. (처음 1~2년은 언제 결혼할 거냐고 떠보셨지만, 지금은 묻지도 않으신다)


하지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6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동거 커플의 절반이 차별을 경험했으며, 그중 70%는 문란하고 비도덕적이며 무책임하다는 시선을 경험했다고 한다.


바닥에 거칠게 내동댕이쳐지는 느낌이었다.


웃으며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에도 머릿속에서는 우리 두 사람이 매일 밤 벌일 광란의 밤을 상상한 건가. 수더분하고 성실한 K군을 눈앞에 두고도 내게 아이가 생겼을 때 무책임하게 내빼는 그의 모습을 상상한 건가.


나는 거울 앞에 서서 얼굴을 매만지고 옷깃을 바로잡았지만 타인은 거울과 다르다. '남이 보는 나'는 내가 제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무지'가 상상을 낳는다. 결혼을 전제로 동거하는 커플이 늘고 있다는데 정작 주변에서는 본 적이 없다. 이렇게 되면 동거하는 커플은 나와 다른 세계에 서식하는, 선으로 분리된 존재와 같이 느껴진다. 미디어가 아무런 고찰 없이 확대 재생산하는 고정 관념도 한몫한다. 수십 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북한 사람의 머리에 뿔이 달려 있다고 믿었다지 않는가.


'결혼'이라는 제도로 묶이지 않으면 아이가 생겼을 때 거리낌없이 방기할 것 같고, 한집에 있는 연인이 남는 시간에 할 만한 일이라곤 섹스밖에 떠오르지 않고, '동거'라는 단어는 'SM 가능 동거녀 구함'이라는 트윗에서나 봤을 때, 상상은 무지를 메운다.


함께 장을 보고 돌아와 식재료를 차곡차곡 정리하는 모습이나, 감당할 수 없는 크기의 슬픔에 짓눌려 한밤중 혼자 숨죽여 울고 있으면 옆에 누운 연인이 이를 알아차리고 말없이 끌어안아주는 모습이나, 명절이면 상대방의 가족을 위해 준비한 소소한 선물을 연인에게 꼭 쥐어 보내는 모습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여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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