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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집에 이사 온 지도 2년이 지났다. 집을 구하기 위해 발품을 팔고, 인테리어 업체에 전달할 PPT를 만들고, 가전제품 매장에서 쭈뼛거린 지도 2년이나 지났다는 뜻이다. '내가 음식물 쓰레기를 비우는 이유' 글에서도 잠깐 이야기했지만 다행히 화이트 & 우드 톤 인테리어는 빛바래는 일 없이 유지되고 있다. 뜨개 용품으로 가득 찬 트롤리와 책이 켜켜이 쌓이는 책장을 제외하면 바닥으로 밀려난 물건도 없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는 요즘 공사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늘 공사 협조문이 붙어 있다. 준공한 지 오래된 아파트이기도 하고, 바람이 선선해져 공사하기 좋은 계절이기 때문일 것이다. 단지를 돌아다니다 보면 하얗게 반짝이는 새 창호를 올리는 사다리차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2년 동안 살면서 잘 샀다 싶은 아이템과 왜 샀지 싶은 아이템을 정리해 봤다.
1. 먼지통을 자동으로 비워주는 청소기: 삼성 비스포크 제트 모델을 쓰고 있지만 모델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먼지통을 자동으로 비워준다는 사실'이다. 주기적으로 먼지통을 열고 풀풀 날리는 먼지를 마실 필요만 없어지면 바닥 청소는 항상 충전이 되어 있는 청소기를 죽죽 밀면서 집 안을 활보하는 걷기 운동일 뿐이다.
2. 건조기: 물론 세탁이 끝나자마자 잽싸게 빼돌려야 하는 옷은 존재한다. 하지만 괜찮다. 건조기와 함께하는 동안 옷장은 건조기에서도 살아남는 놈들로 채워질 것이다. 그래도 접이형 건조대 하나쯤은 구비해 두기를.
3. 휴젠뜨: 머리가 짧고 스타일링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면 헤어 드라이기 자체가 필요 없어진다.
1. 로봇 청소기: 가족 구성원 모두 집을 비우는 시간이 1시간 이상 있다면 추천! 하지만 우리는 둘 다 재택 근무가 대부분이라 1시간 넘게 로봇 청소기의 소음을 감내할 바에는 10분만 시간을 내서 청소기를 돌리는 쪽이 마음 편하다.
2. 식기세척기: 설거지 담당인 K의 설득에 이전 집주인이 이사 몇 달 전에 수리한 싱크대를 갈아엎으면서까지 설치했다. 식기세척기 자체는 추천한다. 음식물 찌꺼기만 물로 휘휘 헹궈서 집어넣으면 대단한 관리가 필요하지 않다. 소음은 식기세척기가 돌아가는 동안 텔레비전이라도 보고 있으면 된다. 세척력도 기대 이상이다. 식기세척기에 못 넣는 그릇은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든다면 '이건 잘 샀다' 2번 항목으로 되돌아가시길. 문제는 우리가 싱크대에 그릇 쌓이는 꼴을 못 보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그릇 몇 개 돌리자고 식기세척기를 켜는 것도 좀. 하지만 비싸고 커버가 달려 너저분해 보이지 않는 식기 건조대라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