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칼럼은 90년대~ 00년대 이시형 박사가 젊은이들에게 보냈던 이야기입니다. 약 20년의 시간이 지나고, 그때의 젊은이들은 4-50대의 중년이 되었고, 이제 다시 새로운 20대의 젊은이들이 이 사회를 이끌어 나가려고 합니다. 지난 이야기를 읽으며, 그때에 비해 지금은 우리 사회는 얼마나 발전했는지, 어떠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였는지,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
원자력 발전소는 물론이고 쓰레기 집하장이나 소각장은 없어서 안 될 공익시설이다. 어디엔가는 꼭 있어야 할 시설이다. 그러나 ‘우리 집 뒤뜰엔 안 되겠다는 것’이 님비(NIMBY) 현상이다.
이러한 위험, 혐오시설이 우리 집 근처에 들어선다는 공고가 나오면 온 동네 주민들이 들고일어난다. 결사반대다. 공청회조차 열리지 못하게 아예 원천 봉쇄해버린다. 논의도 말라는 이야기다. 그럼 이 시설이 필요치 않다는 거냐? 물론 시설 자체가 필요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있긴 해야겠지만 우리 동네는 안 되겠다는 것이다. 노상점거는 물론이고 폭력까지 행사하며 맹 반대다. 아니! 저럴 수가. 사람들은 반대하는 주민들이 못마땅하다. 집단 이기주의라고들 규탄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자기 동네가 후보지에서 빠진 걸 큰 다행이라고 내심 좋아한다.
사정이 이러고 보면 누가 누굴 탓할 수 있으랴. 냉정히 생각해 보자.
반대하는 주민이 과연 집단이기주의냐? 천만에다. 누구나 쾌적한 생활환경에서 살고 싶어 한다. 이건 인간으로서의 기본권 주장이다. 동물적 본성이다.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입장을 바꾸어 보자. 내가 그 경우라면 반대 안 했을까? 어쩌면 더 강하게 반발했을지 모른다. 우리는 반대하는 주민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정책 당국이 내린 결정이라면 이를 존중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해당 주민이 입어야 할 재산상의 손실, 정신적 보상을 수혜자 입장에서 충분히 해줘야 한다. 공익을 위해 희생당해야 하는 주민의 아픔을 함께하면서 충분한 보상이 이루어질 수 있게 당국과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한다. 우리 동네가 아니니 나 몰라라 해선 안 된다. 그건 님비 현상보다 더욱 반사회적이다. 내 동네처럼 안타깝게 여기고 당국자들이 피해 주민과 절충을 잘 이룰 수 있게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사회 공익을 생각하는 시민으로서의 기본적인 덕목이요 자세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작고 큰일에서 서로의 이해가 상충되는 일이 많아진다. 집단이기주의로 서로를 몰아세우기 전에 타협하고 절충하는 슬기를 발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