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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tter Aug 05. 2023

혼자 여행하는 법.

No Matter 두 번째 이야기.



To.이 편지의 수신자들에게.


이번 편지는 실제로 발신자가 여행 중 적었던 일기로 운을 떼볼까 합니다.


#런던을 거쳐 파리에서의 마지막 밤

시간이 빠르기도 느리기도 하게 지나가고 있다. 오늘 아침엔 빨래를 돌리고 나오니, 호스트가 'Do you want some coffee?'라고 물으며 나를 주방으로 데려갔다.(나는 일부러 파리 가정집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 파리의 현지 가족들이 지내는 에어비앤비에서 지냈다. 호스트는 한국에서 5년 동안 지낸 경험이 있는 엄마 또래의 아주머니이셨다.)

나는 호기롭게 'sure!'이라고 말했고, 호스트는 살짝 웃더니 위층 주방으로 나를 데려가 주었다.

직접 내려준 커피를 마시며 우리는 빨래가 다 되는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동안의 여행이 어땠는지, 아주머니의 한국 생활은 어땠는지, 원래 알고 지냈던 사이인 것처럼 1시간 남짓 이야기를 나눈 것 같다.


벌써 여행한 지 20일이 다 되어간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언제냐 묻는다면, 예상 밖의 순간들이 대부분이다. 영국 할머니가 운영하는 작은 티(tea) 가게에 있던 사촌 오빠 재질 청년과 나눈 스몰토크, 그리고 오늘 아침 빨래가 돌아가는 동안 호스트와 나눈 대화.



타지의 새로운 사람들과 색다른 대화를 하는 것이 새삼 가치 있게 느껴진다. 이렇게 또 새로운 내 모습을 발견한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이틀 전, 스위스

런던과 파리에서는 나도 모르게 성장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진 채 좋은 기억을 만드려고 애썼다. 여행의 진가가 무엇일까, 무엇을 해야 더 성장할까. 이런 생각들로 모르는 사이 나를 또 채찍질하고 있었다. 마지막 여행지에 와서야 비로소 마음을 놓으니 여행의 진가가 무엇인지 자연스레 느껴진다. 진작 그랬어야 했다.



지난 한 달간 발신자는 유럽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부딪혀 더 성장하고 싶기도 했고, 본격적인 무언가를 시작하기 앞서 준비운동을 거하게 했다고 하겠습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매일매일 인스타그램과 블로그에 유럽에 있는 시간들을 공유하려고 했지만, 문득 그렇게 하다가는 내 여행이 온통 '보여주기식 여행'이 될까 두려워 그만두었습니다. 대신 매일 일기장을 꺼내 별거 없는 순간들을 끄적이며 그날의 감정을 기록했습니다. 이번 레터를 쓰기 전 유럽에서 적은 일기장을 다시 열었습니다. 스마트폰이 아닌 일기장을 선택한 것은 아주 잘한 일입니다. 생각보다 더 많은 이야기들을 수신자들에게 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Space : new place.

지난 호에서는 카페라는 진부하고도 쉽게 도전할 수 있는 공간을 소개했습니다. 이번에는 쉬워 보이지만, 도전하기 어려운 공간을 소개해 볼까 합니다. 발신자가 소개하는 '공간'은 사면이 벽으로 막힌 특정 공간을 소개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수신자들이 있는 곳 어디든 그곳을 '공간'이라 칭할 수 있겠습니다.


이번 호 공식에 대입할 수 있는 S(space) 값은 바로 '새로운 환경'입니다. 공간의 범위가 다소 크니, 이해를 돕기 위해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평소 자신이 자주 가는 공간인 '집, 회사, 학교, 그 근처의 어딘가'를 벗어나 '여길 혼자 가기엔 조금...'이라는 생각이 드는 곳, 그곳이 발신자가 말하는 새로운 환경입니다.


웬만해서 혼자 가는 것을 어색해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 편이라 발신자는 새로운 공간이 해외 정도는 되어야 했습니다. 그것도 한국에서 15시간 남짓 비행기를 타야 갈 수 있는 유럽이 '여길 혼자 가기엔 조금...'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어떤 사람은 집 앞 카페도 혼자 가기에 어려울 것입니다. 새로운 환경이 어디가 되었든 그 공간으로 자신을 던진 수신자들에게 '여행(journey)'이라는 낭만적인 단어를 붙이고 싶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여행은 '어색하기도 설레기도 하는 새로운 공간에 가서 평소에 하지 않던 일들을 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니, 여행은 그저 익숙하지 않은 곳으로 환경을 바꿔 평소와는 달리 맛집에서 하루 세끼를 다 먹고, 갖지 못했던 여유를 부리며, 보지 않던 풍경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이 아닌가- 여행은 생각보다 별거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새로운 환경으로 여행을 떠나면 분명 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여행을 하기 앞서 중요한 포인트를 짚고 넘어가 봅시다. 발신자는 이번 여행에서 새로운 무언가(something)을 찾아야지, 지금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성장해야지. 이런 호기로운 다짐과 함께 떠났습니다. 하지만 이런 다짐 따위는 함께 가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다짐하는 순간 목적이 생기기 때문이죠. 목적 있는 여행은 실망을 안겨주기 마련입니다. 그저 새로운 것을 보고, 여행동안 그 당시의 감정을 더 깊이 느끼고 와야지. 이 정도의 마음가짐이라면 충분합니다.




◯Doing : walk alone.


이번 레터는 여행 중 혼자 걸으며 든 생각들을 메모장에 마구잡이로 끄적인 덕분에 만들어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만큼 '혼자 걸으며' 보낸 순간들이 도움이 되었죠. 혼자 걷다 보면, 평소 하는 생각보다 더 심오해지곤 합니다. 걸으며 든 생각들은 마찬가지로 *꼬리물기식 고민이었습니다.

지난 호에서는 수많은 단어들로 얽힌 고민의 매듭 끝에 아주 작은 매듭이 존재할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했나요? 이번 호에서는 그 작은 매듭을 풀어나가는 방법을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걸으며 든 기나긴 생각들의 끝에는 늘 비슷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바로 '나'와 관련된 질문이 있었습니다. 자신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있어야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하라, 자신을 알라'며 계속해서 '나'를 강조합니다. 남도 아니고 나를 아는 것이 뭐 어려운 일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남보다 '나'를 알기 더 어려워합니다. 왜 나를 더 이해하기 어려울까?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 봅니다.


'나'를 안다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잘하는 것, 내 장점 등 긍정적인 모습뿐 아니라 내가 못하는 것, 남에게 보여주기 싫은 모습과 같은 부정적인 부분까지 인정해야 하는 어려운 과정입니다. 자신의 긍정적인 모습을 잘 알고 있는 사람보다, 부정적인 부분까지 알고 인정하는 사람이 진정 자신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자신의 단점을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공감할 것입니다. 고민의 끝에 존재하는 작은 질문에는 인정하기 싫고 쳐다보기 싫은 나의 모습이 있을 것입니다.



발신자의 말대로 고민의 꼬리를 물어 매듭 끝까지 가보니, 허무하게도 내가 숨기고 숨겨놓았던 나의 모습이라니.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질문이 무엇인지 찾은 수신자들에게 이미 당신은 성장했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자신의 단점을 알고 있는 것 자체가 스스로를 강하게 만들어줍니다. 보여주고 싶지 않던 모난 모습들을 어떻게 하면 둥글게 보일 수 있을지 연구하고 연습하면 됩니다. 단점을 모른 채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어떤 악영향으로 돌아오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나의 부정적인 모습까지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 나은 영향으로 돌아오게 바꿀 수 있겠죠.


발신자가 이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부정적인 모습을 고치고 없애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단점은 누구에게나 존재하며, 단지 그 단점을 스스로 인정하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과 그저 모른 채로 (또 모른 척하고) 살아가는 사람으로 나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당신이 혼자 걸으며, 한 고민의 끝에 예상하지 못했던 나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면 일단 그 모습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인정을 하고 나면, 반드시 더 강인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꼬리물기식 고민: NO MATTER 1호에서 발신자가 제안한 고민 방법입니다. 자신이 고민하고 있는 주제에 엉킨 수많은 단어들을 꼬리 물어 생각해 보면, 매듭의 끝에는 생각보다 사소한 질문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노메터 1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Finish Letter.


여행을 '잘'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습니다. 목적을 정하지 않고, 과정을 더 깊이 느끼고 오는 것.

발신자의 일기에서 볼 수 있듯이, 여행 중 반 이상은 자신도 모르게 정해놓은 목적으로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스스로가 지쳐 목적을 잊어버렸을 때가 돼서야 진짜 여행을 하게 된 것입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이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이전에 목적을 정하고 긴장감(stress)을 키우기보다는 과정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에 더 집중하면 됩니다. 여행동안 무엇(what)을 했는가 보다 어떤(how) 감정을 느끼고 왔는가에 더 집중해 봅시다. 여행을 다녀온 이후 생각해 보면 머릿속에 저장된 이미지보다는 그날 그곳을 지나며 들었던 감정들이 깊이 남아있을 것입니다. 오래 남는 것에 가치를 둬 봅시다.


최근 회현동에 위치한 서점에 갔다 어떤 문구를 보고 한참을 서서 생각했습니다.


There is a lot of answers everywhere. There is still no right answer.'

"도처에 수많은 대답이 존재합니다. 여전히 정답은 없습니다."


질문을 너무 많이 던지는 세상에 사는 우리는 답해야 할 것도 많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각기 다른 정답을 가지고 와 이게 답이라고 외쳐도, 불안해하거나 스트레스받지 않았으면 합니다. 답은 너무 많지만, 정답은 여러분 자신만이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번 레터에서는 '어색하고도 설레는 공간'에 가 '혼자 걸어보라'는 답을 던져보았습니다. 발신자가 던지는 이 답들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단지 직접 경험하고, 느꼈던 것을 공유하며 수신자들에게 시도해 보길 제안하는 것일 뿐입니다.  

                                                                                                                                         From. 예리미/레지 올림.




▶ NO MATTER instagram_

https://www.instagram.com/no.matter.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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