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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루코 Jan 26. 2022

“사실은 언제나 중립이다”

며칠 잠을 제대로 못 자서 무척이나 피곤한 상태였다. 알람 소리에 눈은 떴지만 몸을 일으키기는 매우 귀찮았다. 그래도 일어났다. 모든 게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고 하지 않은가. 늦잠도, 모닝 페이지 거르는 것도 한 번이 어렵지, 그 한 번이 일어나면 두 번 세 번 연달아 일어날 것만 같았다. 나한테 그런 타협점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써 내려간 모닝 페이지에 무슨 말을 썼는지 단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뒷동산으로 향했다. 어김없이 헉헉 거리며 오른 뒷동산 정상(15분 걸림)에서 캄 명상 앱을 이용해 10분 명상을 했다.


오늘의 주제는 '고요'였다. 나는 생각이 빠르고 많은 편이라, 쉴 새 없이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조잘댄다. 가끔은 그 스위치를 아예 꺼버리고 싶을 때도 있는데, 아예 꺼버릴 수는 없으니 이렇게 알아차리면서 중간중간 쉬는 시간을 준다. 그렇게 생각에 틈을 만들어 주면, 뇌로 향했던 에너지가 몸 전체로 퍼지는 기분이다. 감각이 확장된다. 시야도 넓어지고 다양한 소리가 들린다. 피부에 스치는 바람, 온도도 느껴진다. 만약 이럴 때 음식을 먹는다면 다채로운 맛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고요해져야, 쉴 새 없는 머릿속 수다쟁이를 알아차리며 잠시라도 그 아이의 입을 다물게 막아놓아야 삶을 더 풍요롭게 감각하며 살 수 있으리라.


마음속에 작은 평화를 찾은 채 내려오면서 내게 모닝 페이지를 알려 준 친구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청난 업무량으로 지친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조금 아파왔다. 의미 없는 말들을 가볍게 늘어놓으며 지금 친구가 진 짐이 조금이라도 가벼워 지기를 희망했다.

나 말야, 며칠간 잠을 정말 못 잤는데 아침에 모닝 페이지 쓰려고 세 시간 자고 일어났다 깔깔깔.  주객이 전도된 거 아니냐 깔깔깔. 건강한 하루를 보내려고 시작했는데 오히려 지금 얼굴이 몹시 푸석푸석하다 깔깔깔. 나 지금 너무 피곤해 죽겠는데 이 망할 스스로와의 약속 때문에 뒷동산에 올라와 있다 깔깔깔.


어쩌면 주객이 전도된 것 같고 조금 빡빡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삶이 순환되는 기분이 든다고, 오히려 에너지가 있다고 말했더니 친구는 아마도 네가 지금 달릴 수 있도록 이전에 힘을 많이 비축해 두었나 보다고 말해줬다. 그래, 참 맞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과거의 어느 시간도 의미 없는 것은 없구나, 잘못된 시간은 없구나.


오늘 <아티스트 웨이>에서는 모닝 페이지 활용하는 방법의 일환으로, 아침에 쓴 모닝 페이지를 저녁에 다시 읽고, 긍정화하는 작업을 하라고 했다. 모닝 페이지가 절대적인 법령은 아니니 스스로 좋은 쪽으로 활용하면 되는 것이겠지만, 나는  이번엔 최대한 지침서를 따르고 싶었기에, 그렇게 했다.


가령,


1) 자기 전 남자 친구가 피곤했을 텐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갑자기 우다다 쏟아낸 것이 마음에 걸린다.

  -> 감정을 표현한 일은 잘한 일이다.

2) 나는 @@@가 문제다.

  -> 문제를 알았다는 것은 고민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깊이를 더해갈 것이다.

3) 나는 욕심쟁이다.

  -> 나는 열망을 가진 사람이다.

4) (난 진짜 오만방자하기 그지없다 -> 알았으니 됐다....)



아주 문제라고 생각한 것을 긍정해보기로 작정했더니, 문제를 알았다는 것이 내가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뜻이며, 그 말은 곧 내가 깊이를 더해 갈 사람이라는 것 같았다. 이렇게 문장을 바꾸어 보니, 단번에 내가 꽤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나는 어쩌면 정말 무식하고 단순한지도...)

문제 자체는 사실 문제가 아니다. 내가 문제라고 이름을 붙여버리는 순간, 그것이 문제가 되는  아닐까? 당장의 성과가 성공이라고 단언할  있을까? 당장의 실패가 정말 실패라고 말할  있나? '사실은 언제나 중립이다'라는 말을  좋아하고, 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는데, 성과라고 이름 붙인 것도, 실패라고 이름 붙인 것도 그저 마음속, 생각  패턴의 일인  같다. 그것은   안의 다양한 성질들 또한 내가 이름 붙이기에 따라 부정적으로 정의될 수도 긍정적으로 정의될 수도 있다는 말이 아닌가. 내가 가진 다양한 모습 또한 좋고 나쁨 없이 중립인 거라면, 조금은  어여쁜 이름을 붙여주는 . 그래서 조금  나를 애틋하게 사랑해   있도록 하는 . 하고 싶은 것이 선한 것이라면 거기에 망설이지 않는 . 거기로 움직이고 싶다. 이렇게 매일매일 나를 긍정하는 연습을 하고  안에 고요를 찾고 나아간다면, 정말로 100 후에는 지금보다 나은 내가 되어 있을  같다. 왠지 설레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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