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잠을 제대로 못 자서 무척이나 피곤한 상태였다. 알람 소리에 눈은 떴지만 몸을 일으키기는 매우 귀찮았다. 그래도 일어났다. 모든 게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고 하지 않은가. 늦잠도, 모닝 페이지 거르는 것도 한 번이 어렵지, 그 한 번이 일어나면 두 번 세 번 연달아 일어날 것만 같았다. 나한테 그런 타협점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써 내려간 모닝 페이지에 무슨 말을 썼는지 단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뒷동산으로 향했다. 어김없이 헉헉 거리며 오른 뒷동산 정상(15분 걸림)에서 캄 명상 앱을 이용해 10분 명상을 했다.
오늘의 주제는 '고요'였다. 나는 생각이 빠르고 많은 편이라, 쉴 새 없이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조잘댄다. 가끔은 그 스위치를 아예 꺼버리고 싶을 때도 있는데, 아예 꺼버릴 수는 없으니 이렇게 알아차리면서 중간중간 쉬는 시간을 준다. 그렇게 생각에 틈을 만들어 주면, 뇌로 향했던 에너지가 몸 전체로 퍼지는 기분이다. 감각이 확장된다. 시야도 넓어지고 다양한 소리가 들린다. 피부에 스치는 바람, 온도도 느껴진다. 만약 이럴 때 음식을 먹는다면 다채로운 맛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고요해져야, 쉴 새 없는 머릿속 수다쟁이를 알아차리며 잠시라도 그 아이의 입을 다물게 막아놓아야 삶을 더 풍요롭게 감각하며 살 수 있으리라.
마음속에 작은 평화를 찾은 채 내려오면서 내게 모닝 페이지를 알려 준 친구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청난 업무량으로 지친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조금 아파왔다. 의미 없는 말들을 가볍게 늘어놓으며 지금 친구가 진 짐이 조금이라도 가벼워 지기를 희망했다.
나 말야, 며칠간 잠을 정말 못 잤는데 아침에 모닝 페이지 쓰려고 세 시간 자고 일어났다 깔깔깔. 주객이 전도된 거 아니냐 깔깔깔. 건강한 하루를 보내려고 시작했는데 오히려 지금 얼굴이 몹시 푸석푸석하다 깔깔깔. 나 지금 너무 피곤해 죽겠는데 이 망할 스스로와의 약속 때문에 뒷동산에 올라와 있다 깔깔깔.
어쩌면 주객이 전도된 것 같고 조금 빡빡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삶이 순환되는 기분이 든다고, 오히려 에너지가 있다고 말했더니 친구는 아마도 네가 지금 달릴 수 있도록 이전에 힘을 많이 비축해 두었나 보다고 말해줬다. 그래, 참 맞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과거의 어느 시간도 의미 없는 것은 없구나, 잘못된 시간은 없구나.
오늘 <아티스트 웨이>에서는 모닝 페이지 활용하는 방법의 일환으로, 아침에 쓴 모닝 페이지를 저녁에 다시 읽고, 긍정화하는 작업을 하라고 했다. 모닝 페이지가 절대적인 법령은 아니니 스스로 좋은 쪽으로 활용하면 되는 것이겠지만, 나는 이번엔 최대한 지침서를 따르고 싶었기에, 그렇게 했다.
가령,
1) 자기 전 남자 친구가 피곤했을 텐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갑자기 우다다 쏟아낸 것이 마음에 걸린다.
-> 감정을 표현한 일은 잘한 일이다.
2) 나는 @@@가 문제다.
-> 문제를 알았다는 것은 고민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깊이를 더해갈 것이다.
3) 나는 욕심쟁이다.
-> 나는 열망을 가진 사람이다.
4) (난 진짜 오만방자하기 그지없다 -> 알았으니 됐다....)
아주 문제라고 생각한 것을 긍정해보기로 작정했더니, 문제를 알았다는 것이 내가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뜻이며, 그 말은 곧 내가 깊이를 더해 갈 사람이라는 것 같았다. 이렇게 문장을 바꾸어 보니, 단번에 내가 꽤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나는 어쩌면 정말 무식하고 단순한지도...)
문제 자체는 사실 문제가 아니다. 내가 문제라고 이름을 붙여버리는 순간,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게 아닐까? 당장의 성과가 성공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당장의 실패가 정말 실패라고 말할 수 있나? '사실은 언제나 중립이다'라는 말을 참 좋아하고, 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는데, 성과라고 이름 붙인 것도, 실패라고 이름 붙인 것도 그저 마음속, 생각 속 패턴의 일인 것 같다. 그것은 곧 내 안의 다양한 성질들 또한 내가 이름 붙이기에 따라 부정적으로 정의될 수도 긍정적으로 정의될 수도 있다는 말이 아닌가. 내가 가진 다양한 모습 또한 좋고 나쁨 없이 중립인 거라면, 조금은 더 어여쁜 이름을 붙여주는 것. 그래서 조금 더 나를 애틋하게 사랑해 줄 수 있도록 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이 선한 것이라면 거기에 망설이지 않는 것. 거기로 움직이고 싶다. 이렇게 매일매일 나를 긍정하는 연습을 하고 내 안에 고요를 찾고 나아간다면, 정말로 100일 후에는 지금보다 나은 내가 되어 있을 것 같다. 왠지 설레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