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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루코 Feb 01. 2022

어쩌면 조금 도망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8.


어쩌면 조금 도망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현재 처한 삶으로부터, 활기 넘치는 또 다른 삶으로. 


사실 나는 늘상 무언가 전-부 뒤바꿔 버리는 것을 좋아했다. 어떤 상황이 힘들어지면,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조금씩 수정해가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모조리 뒤엎어 버렸다. 아예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바람을 넣으며, 아예 새로운 인생처럼. 그래서 난 자꾸 초보자의 삶을 반복해서 사는 기분이 들었다. 멀쩡히 다니던 학교를 나왔을 때도 그랬고, 연기를 그만하고 싶었던 작년도 그랬다.  


언제나 불현듯 모든 것을 없애고 다시 시작해버리고 싶었던 건 내가 나를 긍정하기 힘들어서였다. 무언가 잘못됐으니까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주 깔끔한 상태에서 깨끗한 기둥들만을 세워서 맑고 예쁜 것만을 담아두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완전하지 못하고 세상 또한 그렇게 어여쁘진 않지 않은가. 나는 꽤나 자주 나의 세상이 혐오스러웠다. 내가 일구어낸 세상은 내 눈에 모자라기 그지없었다. 여기서 계속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 삶이라면 삶 자체가 조금은 가혹하게 느껴졌었다. 


그런 내가 아예 삶 밖으로 튕겨 나가지 않고 제대로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은 나를 사랑해준 사람들의 공이 크다. 지금의 나에게 온기가 있다면, 반짝임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다. 여태껏 나를 사랑해주고 격려해주며 내 옆에 있어준 소중한 존재들이 내게 주고 간 것이다. 내가 조금이나마 지금의 나를 긍정하는 힘을 가지게 된 것은 어쩌면 100프로 나를 아껴준 사람들 덕분이다. 나와의 시간을 소중히 여겨준 마음들, 그 소중한 마음들 덕분이다. 시절 인연인지, 모든 인연이 지금 내 옆에 머물러있지는 않다. 하지만 지금의 내게 그 모든 기억이 남아 있듯이, 그 기억들이 그 순간 나를 따듯하게 했던 만큼, 지금까지 반짝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외로워지고 이미 지나간 시간들을 그리며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그럴 때면 나는 내 안을 구석구석 살펴보기로 한다. 구석구석 살펴보다 보면 사랑받은 흔적들이 빼곡하다. 매 순간 아주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아주 지나친 마음들을 주고 갔다. 도망치고 싶지는 않으니까, 해결해야 하는 것들에 마음을 쏟아본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방향을 틀어본다. 내가 편안함을 느끼는, 모두가 편안함을 느끼는 제 자리를 찾아갈 수 있도록.  환경을 뒤엎어버리지 않아도, 지금 이 자리에서도 꿈꾸는 것들을 해 나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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