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루코 Feb 02. 2022

무슨 일을 하시나요?

9.


누군가 나에게 '무슨 일을 하세요?' 라고 물어보면, 5년 전의 나는 그냥... 하면서 말을 얼버무렸고 4년 전의 나는 배우에요! 일부러 당찼고 3년 전부터의 나는 '프리랜서에요' 혹은 '그냥 제 일 해요' 라고 대화를 차단했다. 최근에는? 기분마다 상황마다 다르다. 담담하게 연기를 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하는 일이 시간이 고정되어 있지 않아서요, 라고 말하며 추측하게끔 하기도 하고, 촬영 관련 일을 한다고 적당히 둘러대는 경우도 있다. 이제는 직업을 물어보는 누군가의 질문에 애써 긴장하지 않는다. 일부러 배우라고 힘줄 필요도, 일부러 배우우인 것을 감출 필요도 없다. 예전에는 배우라는 단어 자체가 영 오그라들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더이상 배우라는 단어가 내게 어색하지 않다. 아마 시간이 흐르면서 내게도 자연스러워진 것이리라. 내가 연기를 잘하든 못하든, 일이 있든 없든 배우라는 말 자체가 이제는 내게 위화감을 주지 않는 단어가 됐다. 이럴 때 보면 시간이라는 게 참 무섭기도 하지.


이런 시기를 보내고 있는 내게 고민이 하나 있었다면, 과연 나를 정말 배우라고 말할 수 있는가? 였다. 작년 한해를 돌아봤을 때 365일동안 연기를 한 날은 과연 며칠이나 있었을까? 사실 두 손에 꼽을 수도 있을 정도로 적은 날수만큼 일했고, 연기로 번 돈으로 먹고 살았다고 하기에도 무리가 따랐다. 이런 상황인데, 내가 나를 두고 배우라고 말할 수 있는 건가? 나의 직업을 두고 배우에요, 말 해도 되는 건가? 내가 낯설고 낯설지 않고, 어색하고 어색하지 않고, 불편하고 편하고를 떠나서 사실의 영역에서 볼 때 내가 배우가 맞는가? 이거 거짓말 아닌가? 


오늘은 끄적끄적 모닝 페이지에 잡다하게 무언가를 늘어놓다가 마지막엔 매일 매일 준비된 배우이고 싶다는 결심을 이야기 했다. 일과 별개로 좋은 연기를 위한 활동은,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것들은 사실 찾아보면 너무나도 많을 것이다. 정말 작은 예로 운동 또한, 언제 어느 때 어디에 투입될 지 모르는 직업 특성상 내 몸을 단련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매일 준비된 상태로 깨어있자고, 한꺼번에 몰아치는 노력 말고 매일 조금씩 단단하게 배우라는 꿈을 키워가자고 생각했다. 일의 유무에 언제나 흔들리겠지만, 그렇다고 일의 유무에 휘청- 넘어지지는 말자고 하고 싶다. 이렇게 매일 매일 쌓아가는 나의 활동들이 언젠가 누군가 내게 직업을 물었을 때, 조금 더 당당하고 떳떳한 대답을 하게 만들겠지!

매거진의 이전글 어쩌면 조금 도망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