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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루코 Feb 12. 2022

"잃어버린 자존감 되찾기 운동"을 시작한다.

19.


나는 뜬금없이 다짐을 잘 선포하는 편이다. 매번 여러 다짐을 세워놓고 으샤으샤 힘을 내서 앞으로 발을 움직인다. 생각보다 부지런하고 생각보다 연약하지만은 않다. 사실 나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나는 나를 이겨내려고 엄청 애를 쓴다. 휴우- 나로 살면서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니, 그건 정말이지 삶 자체가 위태로워지는 일이다. 자기 확신이 없는 삶은 무엇을 하건 어디에 있건 즐거워지기가 꽤나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정신머리는 있다. 움직이기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멈추지는 않는다. 어쨌든 내가 다른 사람으로 살 수는 없으니까, 나는 나로 살아야만 하니까. 어떤 마법이 일어나고 어떤 기적이 일어나도 내가 나인 것만큼은 결코 변할 수 없을 테니까. 나로 잘 살아봐야겠다고, 오늘은 뜬금없이 그런 다짐을 해본다.


알 수 없는 무언가로부터 삶이 공격당하는 기분을 매번 느끼면서도 내가 적절한 방어를 취할 수 없었던 것은 '누가' '어떤 공격을' '왜' '어디에' 퍼붓고 있는 건지 몰랐기 때문이리라. 이 시기를 통하여 나는 하나하나 답을 찾아갈 예정이다. (선포 중) 하나씩 하나씩 찾을 때마다 부끄러워말고 솔직하고 당당하게 낱낱이 밝히겠다. 이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니까. 나는 그러니까 더 나아지고 있고, 나아지는 과정에서 드러난 모든 감정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만 하니까. 단 하나도 부끄러울 건 없으니까! (맞다. 지금 자기 최면이다. 몇 번이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거다. 괜찮다고, 힘내라고. 잘하고 있는 거라고.)


일단 자존감. 나는 자존감이 낮다. 낮아. 낮은 거지. 낮다. 낮은 게 맞다. 자존감이 낮다고 인정하고 나면 그다음이 보였을 텐데, 나는 낮은데도 높은 척, 내 삶을 당당하게 사랑하는 척, 스스로 잘 존재하는 척! 척하기 대마왕이었다. 사랑받고 싶었다면, 차라리 나 좀 사랑해줘. 나 사랑이 필요해 갈구하는 쪽이 더 나았을 텐데. 그걸 들키고 싶지 않았다. 내가 외로워하는 것이, 사랑받고 싶은 것이... 아, 그래. 인정하겠다. 수치스러웠다. 표면적으로는 상대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라고 말했고, 나조차도 그렇게 나를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부끄러웠던 것 같다. 내가 도움이 필요한 것이 싫었다. 멋지지 않았다. 존나 구렸다. 그런 내가 미워져서 그런 나를 미워할까봐 입을 다물었는데 내 마음까지 닫힐 줄 몰랐다. 결과적으로는 수많은 상대방'들'과 멀어졌다. 상대방은 진짜 나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채 나를 사랑할 기회도, 미워할 기회도 영영 잃었을 테다. 


나는 어쩌면 나의 모습을 감추기 위해 온갖 에너지를 써왔는지도 모르겠다. 다다르고 싶은 모습이 있어서 그걸 향해 나아가는 것과 갖고 있는 상태를 감추기 위해 에너지를 쓰는 것은 에너지의 방향 자체가 아예 다르지 않은가. 어쩌면 성격적인 부분에서도 '문제'가 터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나를 지켜내느라 온 힘을 다 썼던 것 같다. 나는 좋아 보이고 싶었고 멋져 보이고 싶었고 사랑스러워 보이고 싶었다. 내가 하는 행위의 많은 부분의 저 밑바닥엔 인정 욕구나,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탐욕스럽게 들끓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그걸 알아차릴까봐 숨었다. 숨겼다. (전시도 그랬고, 책도 그랬고, 연기에 대한, 참여한 작품에 대한 태도도 그랬고.) 누가 알아차릴까 두려웠고 부끄러워했다. 


연인은 말했다. 너의 코어를 믿어라! 무언가가 잘 되고 있다면 그냥 그건 너의 코어가 그만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 말은 걱정순이 나에게 꽤나 힘이 되었는데, 사실 나는 나를 잘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뭐가 잘 되면 운이 좋아서, 잘 안되면 내가 못해서... 라면서 꽤나 쓸데없는 감정 소비로 나를 들들 볶았다.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내 옆에 있다. 그리고 내가 잘하고 있다고 믿어주는 사람이, 지금 내 눈앞에 보이지 않더라도 어딘가엔 있다. 그리고 내가 잘하고 있다고 나도 열심히 믿어줘 볼 것이다. 어차피 이번 생은 죽기 전까지는 나로 살아야 하지 않나. 어줍잖게 나를 좋아 보이게끔 포장하는 건 이제 그만해야지. 있는 그대로의 내가 설령 내 맘에 안 든다면, 아 네가 뭔데 나를 맘에 안 들어하고 지랄이냐 하면서 판단하는 나를 아주 호되게 내팽개쳐버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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