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골 일기

열 한 번째 일기: 촌놈들 영화 보러 가다!!

우리 시골에는 영화관이 없었다. 양산 읍내에도 없었다.

영화를 보려면 완행 버스를 타고 부산에 가야만 했다.


난 어려서부터 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했는데 따로 영화관에 가질 못하니 텔레비전에서 하는 토요명화, 주말의명화를 매주 보려고 했다. 하지만 밤에 하는 시간대라 중간에 졸음을 이기지 못해 끝까지 본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할매! 내가 자면 잠 좀 깨워도."
"오냐. 꼭 깨워줄게." 그러나 나보다 먼저 잠들어 있었다


텔레비전 영화 광고에 로봇트 태권브이가 얼마나 보고 싶었던지..

이러한 마음을 달래주던 이동식 영화관이 있었다. 시골 큰 공터에 천막을 크게 쳐서 스크린처럼 만들고, 바닥에 그냥 앉아 보던 영화였다. 비록 허접했지만 시골 촌놈들에겐 감지덕지였다.

아마 영화비가 이,삼백원쯤 했던걸로 기억한다.


영화 개봉 며칠 전부터 트럭에 현수막을 걸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확성기를 시끄럽게 틀어 영화 홍보를 했다. 시골에서 잘 나가는 옆동네 공터에 촌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우리 동네 아이들은 삼십분 정도 걸어서 빈 공터에 자리 잡았다.

그러다 영화관 관계자의 큰 목소리가 들렸다.

"자!! 다들 잘 보세요. 여기 돈 안내고 몰래 들어온 놈들 잡았습니다. 이라믄 되겠습니까? 안되겠습니까?"
"안돼지요!" 곧 쫓겨나고 영화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난 곧 잠이 들어버렸다.

깨어나니 아버지 등에 업혀 집으로 가고 있었다.

취권. 이걸 보고 우린 말도 안되는 무술 흉내를 내며 자랑질 했다.

그러다 드디어 읍내에도 극장이 생겼다. 비록 소극장이지만 자부심이 생겼다.

명절때 마다 우린 소극장으로향했는데 취권, 우뢰매 등, 지금 보면 시시하지만 그땐 얼마나 재밌던지 ..


이젠 좀 더 큰물에서 놀자해서 버스타고 부산으로 원정을 갔다. 추억의 동시 상영 영화였다.

부산 보림 극장. 동시 상영의 메카?

내친 김에 부산에 지하철이 개통되자 영화의 메카? 남포동 극장가로 향했다.

처음 타 보는 지하철이라 우린 어리둥절했다. 1구간, 2구간 요금표가 있었는데 남포동까지 15 정거장 정도니까 15구간?

"와아! 차비 너무 많이 든다 아이가? 못 타겠다!"
"그게 아이고 남포동까지는 2구간 요금표만 된다 아이가? 요금표 좀 잘 봐라!"
"....." 표를 끊고 우루루 탔다. 버스와 다르게 의자가 양 옆으로 나란히 마주하고 있었다. 맞은편 사람을 보는 게 왜이리 어색한지.. 저절로 '눈깔아!'가 됐다. 버스는 뒤통수만 보니 당당히 두 눈을 떴었는데...
"와아! 버스보다 지하철이 안 흔듵리네."
"촌놈 표내지 말고 가만 좀 있어라!"
"야! 다들 살살 말해라. 도시 사람 다 듣겠다."

우린 적들이 눈치 못채게 태연하게 광고판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야말로 금모으기 운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침묵은 금이니깐!)


역시 남포동은 뭔가 달랐다. 명절이 아닌 날에도 인간들이 바글바글.

90년대 남포동 극장 거리

처음으로 돈까스를 먹어보고 처음으로 칼질을 해봤다.

그전까지 내가 한 칼질은 무 자르기였다.

오락실에 들어가니 카지노를 연상시키듯 아주 컸다.명절만 되면 우린 남포동 가는 게 연례 행사가 되어버렸다.

오락실에 들어가니 카지노를 연상시키듯 아주 컸다.

명절만 되면 우린 남포동 가는 게 연례 행사가 되어버렸다.


그러나저러나 영화 간판 그리던 솜씨 좋던 화가들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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