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두번째 일기 : 동네 촌구석 벗어나기
울 동네는 버스가 안 다녔다. 가게도 없었다.
필요한 게 있으면 다리를 건너 옆 마을 가게에 가서 사오곤 했다.
작고 교통 불편한 마을이 싫었다.
대학이 서열화 되어 있듯이 우리 면에 있는 마을은 나름 보이지 않는 등급이 있었다.
그 중에 울 동네는 하위 등급 정도. 옆에 옆에 동네는 상급 동네가 있었는데 그 동네는 우리 면에서 나름 서울의 명동(?) 같은 동네였다. 울 동네는 다리를 건너야 되는 섬마을(?) 정도로 인식하였다.
드디어 그 동네에 오락실이 생겼다. 울 동네를 잠깐 벗어날 수 길이 생긴 것이다.
소문이 퍼지자 근처마을 애들이 다 모였다. 선후배 만날 사람 다 만나고 마치 고향 동창회를 20년 앞당겨 하는 분위기였다.
들어서자마자 다들 눈에서 레이저가 나온다.
다들 기필고 '오늘은 기록을 깨고 말겠다'는 굳은 의지다.
저 눈빛으로 공부를 했으면...
"뾰뵹 뿅뿅뿅..."
난 그다지 이런 오락을 잘 하는 편이 아니었다.
갤러그가 제일 만만했고, 단연 최고 인기였다. 매번 갈 때마다 이름 모를 고수들이 기록을 갱신하고 있었다.
테트리스, 빵구차, 쌍용, 스트리트파이터, 올림픽 등등. 오락기계들이 아이들의 거친 손과 몸동작에 몸살을 앓고 있었다.
한 번은 자전거 타고 갔다가 집에 소새끼 때문에 급히 돌아오는 길에 그만 포터 트럭과 부딪히고 말았다. 나도 모르게 공중 회전으로 전방 낙법을 했다! 불안한 착지로 다쳤지만 다행히 큰 부상이 아니었다.
읍내에 목욕탕 가는 것도 울 동네를 벗어나는 한 방법이었다.
목욕탕이 그 명동 동네에도 있었지만 우린 더 큰 물에서 놀고 싶었던 것이다.
바로 양산 읍내로 영역을 확장하기로 한 것이다. 모두 저마다 목욕탕을 가방을 자랑스럽게 구비하고 15분마다 오는 완행 버스를 타고 갔다. 당시에는 신호등이 거의 없어서 읍내 도착하는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이게 얼마만에 목욕이고? 때가 갑옷을 벗는 것 같노?"
"우짜노! 우리 땜에 배수구 다 막히겠다.!"
"이렇게라도 우리 촌구석의 흔적을 남길 수밖에 없다. 다들 자랑스럽게 생각 해야한다."
"아야! 등 좀 살살 밀어라. 내 피부는 고와서 빡빡 밀면 껍데기 벗겨진다아이가!"
"이렇게 빡빡 밀어야 6개월 동안 버틸거 아이가!"
사실 목욕은 핑계고 진짜 목적은 양산 읍내 구경이었다. 거기는 더 큰 오락실도 있고, 점심으로 칼국수를 싶었던 것이다. 목욕하고 나면 꼭 배가 고팠다.
목욕 후 양산 시장에 가서 도너츠 가게, 튀김 가게를 보며
"와아! 맛있겠다. 칼국수 묵고 저거 또 사묵어삐까?"
"안된다. 울 음마가 500원 남겨서 오라 했다. 내일 국방성금도 내야 하고 소풍갈 때 김밥 싸려면 소세지도 사야 한다 했다."
목욕탕 갔다오면 가지 못한 아이들에게 무용담을 한껏 펼치곤 했지. 애들은 어리석게도 진짜인 줄 알고 믿는 눈치였다.
"그러나저러나 저 목욕탕 굴뚝을 이젠 어떻게 철거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