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는 부유한 집안 아니면 따로 용돈 받아서 과자를 사먹을 형편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군것질 거리가 별도로 없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동네 뒷산을 군것질 아지트로 하고 있었다. 여기 가면 먹을 게 꽤 있었다.
게다가 모두 자연식품들이었다.
봄에는 산딸기, 뱀딸기, 참꽃, 여름에는 앵두, 가을에는 산머루, 개암, 물포구 등, 겨울 빼고는 자연식품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동네 뒷산에 올라가서 나뭇가지와 잎이 넓은 나뭇잎으로 마치 구석기 시대의 막집처럼 만들었다. 나름 우리들만의 "본부"를 만들어 각종 열매을 따서 모아놓은 것이다.
산딸기는 크기가 작은 것은 약간 신맛이 나지만 알이 굵은 것은 일반 딸기처럼 달아서 우리에게 인기가 많았고, 뱀딸기는 맛이 싱거워서 아이들한테는 인기가 없었다.
그냥 뱀이 싱거운 걸 좋아하는가보다 생각만 했다.
참꽃은 진달래꽃을 말하는데 꽃잎을 따서 바로 먹었다. 맛이 약간 단맛과 쓴맛이 섞여 있었고 중학교때 국어 교과서에 꽃잎을 따서 떡을 부쳐 먹는 화전(花煎) 얘기가 잠시 나와서 그게 참꽃이였구나!하고 알았다. 주의할건 철쭉과 비슷해서 철쭉은 먹지 못하는 꽃이라하여 개꽃, 진달래꽃은 먹을 수 있다하여 참꽃이라 불린다 하였다.
한 번은 동네 아이들과 참꽃을 따러 갔다가 나혼자 일행을 놓치고 산속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었다. 난 서럽게 울면서 가시에 찔려가며 겨우 동네로 내려왔다. 동네와서는 더 서럽게 울었던 기억이 있다.
여름에 앵두는 귀한 먹거리였다. 맛은 군것질 거리 중에 최고였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것보다 산에서 눈에 잘 띄지 않아 많이 먹지는 못했다. 앵두하면 떠오르는 건 “앵두같은 입술”, 그만큼 빨갛게 탐스럽다는 뜻일 것이고, 노래 가사에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처녀 바람났네”처럼 산속에 앵두나무가 있기보다는 시골 동네에서 몇 그루 봤던 기억이 난다.
앵두 산머루는 포도보다 작은데 먹고나면 입술주위가 퍼렇게 되어 마치 겨울추위에 동상걸린 입술처럼 보여서 아이들은 서로 보고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파란 혓바닥까지 장난스럽게 내밀어 서로를 놀리곤 했다. 요즘에는 머루포도라 하여 산머루 맛나는 포도가 상품화 되었는데, 먹어보니 어렸을 때 먹었던 맛과 똑같길래 이걸 왜 돈주고 사먹나 싶었다.
개암나무는 촌에서는 깨암나무라고도 불리는데 도토리 모양과 비슷하다. 하지만 도토리가 쓴맛이 나는 것에 비해 개암나무는 고소한 맛이 난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겐 쓴맛의 도토리보다는 고소한 개암나무가 더 좋았다.
그래도 제일 기억에 남는 건 단연 달달한 물포구였다.
그런데 이 물포구가 “남자한테 참 좋은데....” 광고로 유명한 모회사 건강식품 산수유였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내가 어렸을적 산에서 그렇게 많이 먹어 해치웠던 그 열매가 산수유였다니!! 이러한 사실을 안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아마 이 광고가 없었다면 산수유는 추억속에 맛있는 열매 정도로만 알고 있었을 것이다.
산수유 중학교 국어시간에 김종길의 성탄제라는 시에서도 산수유가 나온다. 당시 나는 산수유가 귀한 열매라는 것만 추측하고 있었고, 물포구라는 것을 전혀 짐작 못하고 있었다.
어렸을적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야, 오늘 뒷산에 물포구 따먹으러 가자!”하면 “그래, 가자!”하며 어울려 갔을 뿐 시골에서 물포구라 불리던 것이 그 몸에 좋은 산수유였다는 것을 몇 십년 뒤에 알았던 것이다.
이럴줄 알았으면 그때 실컷 먹어놓을 걸. 아니, 술이라도 담궈놨으면 지금은 40년산 술이 되어 웬만한 위스키나 포도주보다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몸에 엄청 좋으나 먹기 싫은 놈이 하나 있었다. 바로 뱀이다. 이 놈도 나름 군것질?거리였지만 비위가 약한 나에게는 징그러운 놈이었다.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산에서 뱀을 보면 피하거나 돌로 때려 죽이기 바빴지 감히 군것질 할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군대 있을때 후임병이 뱀을 잡아서 껍질을 쭈욱 벗기더니 칼로 썰어서 후라이팬에 요리 해놓고선 먹어보라 하길래 역시 비위가 약해서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그래서 지금도 꼼장어 요리는 뱀 생각이 나서 먹질 못하고 있다.
이런 징그러운 놈을 먹는다고? 보기만 해도 우웩이다!!
놀라운건 이런 군것질거리 중에 다수는 건강식품으로 둔갑?하여 지금 인기를 끌고 있다. 이렇게 건강식품이 될 거라는 걸 알았다면 매일 뒷산에 가서 닥치는대로 먹어놓을걸. 후회스럽다.
한 가지 안타까운건 이런 건강식품때문에 요즘 한의원 보약장사가 안된다고 한다.
내일은 등산 가는척하며 건강식품이나 실컷 서리하러 산에나 갔다와야겠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