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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골 일기

여섯 번째 일기 : 전국 최대 규모..아이스링크장..동네 강가

“어이! 스켓트 타러가자!!”

우리 양산 촌에서는 멋도 모르고 “스켓트 타러가자!”하면서 집에서 만든 썰매를 가지고 나왔다.

내 고향 양산은 눈은 거의 오지 않았지만 겨울이 되면 얼음이 꽁꽁 어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얼음이 잘 얼지 않는 이유가 지구온난화와 환경오염이 한몫을 했지만 그 당시는 웬만한 동네 강가는 아이스링크장?으로 변신했다. 그것도 무료로 말이다.

강가 아이스링크장에서 제일 인기있는 놀이는 단연 썰매였다.

나무막대기와 판자대기를 톱으로 자르고 못으로 박고, 굵은 둥근철사를 밑바닥에 양쪽으로 길게 고정시켜 만들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게 있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썰매를 보면 한결같이 내 고향에서 만든 썰매와 달랐다. 우리가 만든 것이 더 좋고 편리했다.

텔레비전에서 흔히 보여주던 썰매

보통 텔레비전에서는 사진처럼 넓적한 판자대기 위에 무릎 꿇고 앉거나 양반 자세로 앉아서 송곳을 얼음에 꽂아 가며 전진했다. 이렇게 하면 무릎이 아프거나 앉은 자세가 불편해서 뒤로 희뜩 자빠질 수 있다. 또한 속도도 빨리 내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 양산 시골특별시는 다르다. 내가 그린 사진처럼 판자대기 위에 앞뒤 가로로 긴 나무막대기로 못을 박아 고정시킨 뒤 쪼그려 타는 것이다. 쪼그려 앉아 타면 송곳으로 얼음 꽂기도 편하고 속도도 더 빠르다. 텔레비전 보면서 “저쪽 동네는 왜 저렇게 불편하게 만들어서 탈까?”하며 의문을 자아냈다.

“음...우리가 더 호모사피엔스에 더 가까웠다.”는 자부심이 드는 순간이었다.

뒤쪽 나무막대기 위에 뒤꿈치를 얹어 놓으면 쪼그려 자세가 된다.


썰매 밑에는 둥근 철사라서 얼음과 마찰력이 적어 엄청 잘 미끄러져 속도감이 있어 좋았다. 한 가지 단점은 빠르지만 잘 미끄러지니 그만큼 방향전환이 힘들었다.

그래서 우린 호모 사피엔스라는 자부심으로 썰매를 개량하기 시작했다. 바로 스케이트 날처럼 납작한 걸 밑에 고정했다. 진짜 스케이트 날은 구하기 힘드니 쇠톱을 이용한 것이다.

쇠톱은 둥근 철사만큼 미끄럽지 않아서 속도는 느리지만 오른쪽, 왼쪽 방향전환은 엄청 좋았다. 그래서 썰매로 술래잡기 할때는 요리조리 방향을 틀어서 적?들을 따돌릴 수 있었다.


“윽!!” 가끔은 썰매 놀이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송곳으로 얼음대신 내 발등을 찍는 경우도 있었다. “믿는 도끼가 아닌, 믿는 송곳에 발등 찍히는 걸 몸소 실천한 나였다.”

그리고 우린 썰매로 아이스하키 놀이도 했다. 돌 두 개로 적당한 간격으로 골대를 만든 다음 납작한 돌을 아이스하키 퍽(puck)을 삼았고, 송곳은 아이스하키 채처럼 이용한 것이다. 썰매를 쪼그려 타면서 송곳으로 얼음을 꽂아가며 납작돌을 송곳 채로 운반했다. 이때는 아이스하키처럼 채를 세워서는 안되고 송곳을 얼음바닥에 바짝 눕혀서 움직여야 패스도 가능하고 슛도 가능했다.


때로는 아예 썰매는 타지 않고 그냥 얼음 위에서 아이스하키 흉내도 내곤했다. 하키 모양의 나무를 구해와서는 미끄러운 얼음 위에서 납작돌을 패스해 가며 놀이를 즐겼다. 그러다보니 미끄러져 자빠지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난 잘 미끄러지지 않았고 방향전환 또한 자유로웠으며 얼음위 달리기에서도 일등을 하는 신기에 가까운 묘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잉?? 절마 좀 이상한데?” 아이들은 의아해 했다.

그제서야 나는 정체를 밝혔다. 내 신발을 들어 밑창을 보여주었다.

밑창에 모래가 잔뜩 묻어 있었던 것이다.

모래가 마찰 역할을 해서 미끄러지지 않았던 것이다.

‘난 이미 그때 물리학의 마찰계수를 터득한 것이었다! 푸하하하하!!’


우리 아이스링크장에서는 팽이 놀이도 가능했다. 흙에서 하는 것보다 얼음에서 하니 팽이가 엄청 잘 돌아갔다. 팽이채로 슬쩍만 쳐도 잘 돌아가는 걸 보며 ‘또 이놈이 술한잔 했구나!’하며 말 못하는 팽이를 놀려댔다.

우린 좀 더 스릴 있는 놀이를 했다. 어느정도 넓이로 얼음을 깨고 멀리 뒤에서 썰매로 달려오면서 깨진 얼음을 뛰어 넘는 놀이였다. 처음에는 깬 얼음 지름이 몇 십센치 안됐지만 갈수록 승부욕에 불타서 넓은 간격으로 얼음을 깨고 썰매로 뛰어넘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 두명이 넘지 못하고 깨진 얼음 끝부분에 부딪히고 말았다.


“부닥닥딱딱!!!!” 썰매는 부딪혀 정사각형 모양에서 마름모꼴 모양으로 삐뚤어져 골절이 되는 중상자가 되어버렸다. 송곳은 지멋대로 공중으로 날아가 불규칙 공중 3회전 하고나서는 불완전 착지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선수는 어느새 자빠져 얼음위에서 슬라이딩 하고 있었다.


구경하던 관중 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고 야구 심판 흉내를 내며 “세이프! 아니, 아웃!”하며 놀려대기 바빴다.


이것 못지않게 스릴있는 놀이가 있었다. 아마 그당시 에버랜드나 통도 환타지아처럼 놀이기구가 없던 시절엔 이게 최고였다.

바로 우리가 ‘고무 얼음’이라 불렀던 놀이였다. 오후가 되면 얼음이 어느정도 녹기 시작한다. 그렇게 되면 우린 일부러 썰매 위에서 일어섰다 앉았다 하면서 몸무게를 이용하여 얼음이 깨지지 않을 정도로 꾹꾹 눌러 버린다. 그러면 얼음은 조금씩 금이 간다. 아니면 썰매없이 맨몸으로 위에서 뛰면서 얼음이 금이 가게 만든다. 얼음이 견딜 수 있는 힘이 약해진 것이다. 그때 썰매를 타면 약해진 얼음은 마치 파도처럼 오르락내리락 한다.


진짜 고무처럼 늘었다줄었다 하는 것이다. 그 어느 놀이기구보다 스릴 있고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너무 과하게 놀다보면 얼음이 깨져 빠지는 경우는 허다했다. 얼음에 빠져 양말만 버리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바짓가랭이 다 젖는 경우도 많았다.

고무얼음의 어설픈 원리.

그날은 부모님한테 혼날 게 뻔하다.


하지만 너무 걱정마시라. 우리에겐 건조기가 구비되어 있었다.

바로 성냥이다. 어디서 부모님 몰래 구해 왔는지 성냥은 매일 누군가의 호주머니에서 나왔다.

빠질 걸 예상했는지 이미 강가 옆에서 모닥불은 연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주위에 널린 바짝 마른 나무와 풀떼기들이 모닥불을 더욱 찬란하게 만들어 우리들의 옷을 말려주었다.


우린 얼음배도 만들었다. 무식하게 큰 돌로 얼음을 대충 둥글게 크게 깨고 긴 장대를 구했다. 긴 장대는 강바닥에 닿을 만큼 길어야 바닥을 짚어 얼음배가 움직일 수 있었다. 서너명이 올라가서 강으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고 건너편 동네도 갔다왔다.

이젠 남쪽 따뜻한 시골 강가에 야외 아이스링크장이 생기려면 빙하기가 다시 와야 할듯 하다. 설사 얼음이 언다해도 뛰어 놀 아이들이 없으니 무료 아이스링크장은 얼음처럼 썰렁함만 빈 공간에 가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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