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중력은 어디로 갔을까?
이 이야기는 넷플릭스와 집중력의 상관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나 말고 이런 현상을 겪고 있는 사람이 또 있으려나 궁금해서 쓰는.
나는 영화 보기가 취미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영화를 많이 본다. 회사 다닐 적엔 평일 자기 전에 한 편씩, 주말에는 대여섯편씩 기본으로 봤다. 특히 주말은 일어나서 밥 차려먹고, 낮잠 자고, 저녁에 약속 나가는 시간 제외하고는 하루종일 그냥 영화만 보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장르은 크게 가리지 않고 그날 그날 기분따라 보고 싶은 걸 본다. 우울할 때는 더 우울한 영화를 찾아 보는 편이고, 기분이 좋을 때는 가벼운 로코를, 고민이 많을 때는 속 시원한 액션물을 본다.
나는 영화를 틀어놓고 딴 짓을 하는 성격이 아니다. 핸드폰도 잘 하지 않는다. 잠깐 친구랑 수다를 떨 때는 차라리 영화를 멈춰놓는다. 배가 고파도 보던 건 다 보고 밥 생각을 한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그냥 귀가 심심해서 영화를 틀어놓는 게 아니라 정말로 영화를 보려고 트는 거다. 그러던 내가 넷플릭스라는 컨텐츠의 홍수를 만났다.
나는 넷플릭스같은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을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는데 딱히 필요성을 못 느껴서였다. 첫 시작도 넷플릭스에서만 제공하는 오리지널 드라마를 보려고, 첫달은 무료라기에, 아무 생각없이 가입했다가 그 뒤로 반년째 넷플릭스의 노예로 살고 있다. 넷플은 옳다. 좋다. 그런데 한 가지 전에 없던 요상한 문제가 발생했다.
바로 영화에 집중을 못 한다는 것. 시작부터 끝까지 온전히 집중해서 감상한 영화가 주에 두 세 편 꼴로 반토막도 아니라 반의반토막이 나버렸다. 영화를 틀어놓고 한참 동안 핸드폰을 하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기도 하고, 영화를 보다가 허기짐을 느끼면 고민없이 스페이스바를 누르고 싱크대로 향하기도 한다. 갑자기 이렇게 된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한 두달 고민하던 나는 최근 들어 그럴싸한 가설을 하나 세웠다. 바로 컨텐츠 선정이 너무 쉬워진 게 문제라는 것. 내가 볼 영화를 고르는 과정이 갑자기 너무 단축된 것이다. 이전의 내가 보통 영화를 고를 때 하던 프로세스는 아래와 같다.
ㅡ 포털 사이트에 검색하기 (주로 ‘액션 영화 추천’ 따위의 군더더기 없는 본론을 검색함)
ㅡ 십수가지의 후기글 감상 (그러다 맘에 드는 영화 리뷰 블로그를 발견하면 한바퀴 빙 구경하는데에 시간을 씀)
ㅡ 끌리는 몇 가지를 발견했을 시 예고편 및 출연 배우들 검색 (이 부분에서 우연히 좋아하는 배우를 발견했을 시 자연스럽게 그 배우의 대표작도 감상할 리스트에 추가됨)
ㅡ 최종적으로 제일 맘에 드는 한 두 편 선택 (주로 위 과정은 회사를 왔다갔다 하는 대중교통 안에서 이루어짐)
그러나 넷플릭스를 조우한 지금은 어떤가. 썸네일에 마우스 커서를 슥 갖다대고, 넷플릭스에서 제공하는 예고편과 줄거리를 확인만 하면 된다. 이것을 볼 것인가 말 것인가는 대게 15초 안에 판가름 난다.
오늘은 어떤 영화를 감상할까 심사숙고하며 사전 조사를 진행하던 나의 열정이 필요치 않게 되면서나의 집중력은 현저히 떨어졌다. 그것뿐 아니라 흥미가 생긴 영화라도 넷플릭스에 있지 않으면 다음에 봐야지 미뤄버리거나, 영화가 초반에 조금만 지루하다 싶으면 가차 없이 뒤로가기를 누르는 짓도 서슴지 않는다. 컨텐츠의 광활한 우주 앞에서 나는 집중력을 상실한 걸로도 모자라 줏대까지 잃어버린 것이다.
불특정 다수의 블로그를 뒤져가며 영화 리뷰를 찾아 읽어본 게 언제인지, 좋아하는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검색하여 다음엔 뭘 볼까 고민하던 게 언제인지. 과연 나의 취미가 영화 보기라고 할 수 있는가! 반성을 하며, 오늘도 넷플릭스를 뒤적거리는 손을 내려놓지 못 하는 나를 비난한다...
이번주 두 편의 영화를 추천 받았다. 시네마 천국과 어느 가족. 잠시 상실했던 집중력을 발휘해서 가까운 시일 내에 두 편의 영화를 감상하기로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