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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Jun 20. 2019

내가 심리 상담을 3개월만에 그만둔 이유

공감만으로는 마음의 병이 낫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지극히 주관적인 나의 심리 상담 후기로, 선생님마다 제각각 다른 방식으로 상담을 진행한다는 점 참고하여 읽어주길 바란다.


내가 처음으로 심리 상담 센터를 방문한 것은 작년 겨울이었다. 소파에 앉아 코트를 벗어두자 직원 분이 설문지 하나를 가져다 주었는데 센터를 방문하게 된 이유에 대해 자유롭게 적어보란 것이었다. 나는 단숨에 그 종이를 가득 채웠다. 진단 받을 필요도 없이 나의 문제들을 이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성격파탄자, 분노조절장애, 조울증의 대표 명사나 다름 없었고 (그런 나를 사랑으로 보듬어주고 지금까지 친구로 남아준 나의 소중한 이들의 인내심에 감사함을 전한다) 정상적으로 생활을 이어가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다.


밤새 한시간마다 벌떡 일어나는 수면장애를 넘어 이유없이 심장이 쿵쾅거리는 물리적 문제도 앓고 있었으나 정신과 대신 심리 상담을 선택했던 이유는 약에 의존하는 것보다 내 근본적인 문제에 다가가는 것이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리라 판단해서였다.


드디어 담당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고, 내가 작성한 종이를 쭉 스캔한 선생님의 첫마디는 아휴... 였다. 아휴... 정말 힘들었겠어요... 이 중에서 어떤 것 먼저 이야기를 나누고 싶나요?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비용을 감수해야 겠지만 머지않아 내 심신이 나아지리라는 희망찬 기대와 함께 시작한 상담은 3개월만에 끝이 났다. 차도를 전혀 느끼지 못 한 것이다.


상담 기간이 턱없이 부족했을 수도 있고, 담당 선생님이 나와는 맞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다만 이유가

따로 있느냐고 물어본다면 상담을 진행하며 내가 느꼈던 점들을 아래와 같이 대답할 수 있다.

누군가 나에게 공감을 해주는 것만으로는 내 마음의 병이 낫지 않더라. 라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속마음을 솔직하게 꺼내 보이고, 위로를 듣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해소가 되는 이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걸 넘어서서 해결점이 필요했다.

무당처럼 내 무의식을 꿰뚫어 나조차 인지 못 했던 실마리를 끄집어내주길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심리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또 이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으로서 보다 더 전문적이고 적극적으로 나에게 도움이 될 방향을 제시해주리라 예상했던 것이다.

그러나 상담은 내 기대와는 달리 사실상 입으로

일기를 쓰는 시간에 가까웠다. 주로 대화를 나누는 주제는 ‘지난 일주일’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고, 나의 크고 작은 사건들을 나열하면 ‘그래서 기분이 어땠나요’ 라는 질문에 대답만 하다가 종료하는 게 부지기수였다.

한 번은 이런 대화도 나누었다.

“오늘은 이만 여기서 마쳐야겠어요. 아까 들어올 때와 비교해서 기분이 조금 나아졌나요?”
“잘 모르겠어요. 남들한테도 다 하는 얘기 선생님한테도 그대로 하는 거라서... 그냥 비슷한 것 같은데요.”
“정말인가요? 제가 이렇게 제이씨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함께 눈시울이 촉촉해질 정도로 깊게 공감을 해주는데도 기분이 전혀 나아지지 않나요?”
“어... 네... 그러게요......”


사실이었다. 나의 담당 선생님은 타인에게 공감을 해주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나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상담 내내 안타까운 표정으로 나를 위로해주었으며, 가끔은 나를 위해 눈물을 글썽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왜 내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나. 물어도 대답할 말이 없었다.


한 번은 인형을 이용한 역할극 놀이도 했다. 인형

하나는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사람이(라고 쓰고 전직장 개같은 상사라고 읽는다) 다른 인형 하나는 내가 되어서 특정 상황을 재현해내는 것인데, 속에 쌓여 있는 말을 원하는 대로 질러도 되는 거였다. 내가 상사를 맡아 첫 운을 떼었다.


“너는 상사가 시키면 할 것이지 왜 그렇게 말대답이 많니?”

“말이 되는 걸 시켜야 하죠? 내가 무슨 초능력자예요?”

“나는 맨날 야근하고 주말에도 출근하는데 너는 나이도 어리면서 왜 그렇게 못 해? 그렇게 열정이 없어서 회사를 어떻게 다녀?”

“너는 월급이 많잖아요!! 너는 이사고 난 대리잖아요!!! 너처럼 회사에 헌신할 이유가 없다고요!!!!!”

“......”


리얼리티에 판타지가 얹어진 이 인형극은 나를 더 우울하게 만들었다. 선생님이 나를 대신하여 속시원히 소리를 질러줘도 실행 가능성 제로인 이 대화에

뼛속까지 현실주의자인 사람은 몰입할 수 없다는 사실만을 알아냈다.


이처럼 나보다 더 나에게 감정이입을 해주는 선생님에게는 진심으로 감사했으나, 안타깝게도 그 과정들은 다시 내가 정상 궤도로 돌아가는 데에 크게

도움이 되지는 못 하였다. 그리고 차도가 더뎌지니, 비용도 문제가 되었다.


상담 비용은 50분에 8만원이었고, 4회치를 한번에 결제하면 회당 만원씩 할인이 되는 식이었다. 누군가에겐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일 수 있으나 나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10회차를 넘어가면서부터 금액이 신경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경제적인 이유를 빌어서 조급함을 느낀 나는 결국 삼개월을 끝으로 그렇게 상담을 그만두었다.


프리랜서인 지금 나는 우울증과는 꽤 거리가 멀어졌다. 역시 퇴사가 효과 직빵이었던 모양이다. 지금 와 생각하면, 심리 상담보다도 평소 친구들이 해주던 조언이 나에게 더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집에서 한 끼를 먹더라도 제대로 된 요리를 먹을 것, 어떤 종류든 좋으니 당장 운동을 시작할 것 등. 마음의

안정을 찾은 지금까지도 실천하고자 하는 소소한 습관들이다.


하지만 심리 상담을 받았던 것도 의의가 있긴 했다. 스트레스를 잔뜩 받다가도 이번주 상담 가면 이 이야기를 꼭 해야겠다 떠올리며 잠시 생각이 전환되기도 했고, 매주 같은 시간 하나의 새로운 일과가 생겼다는 점도 알게 모르게 기분이 나아지는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나 스스로를 돌보기 위해 내가 무엇이든 시도를 했고 비용을 지불하였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했다. 그런 점에서 상담을 받은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다시 한 번 더, 이 글은 지극히! 주관적인 나의 후기이므로 심리 상담의 대략적인 윤곽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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