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에 카드며 모든 결제수단을 갖고 다니는 나로서는 휴대폰을 안 갖고 오는 날이면 낭패다. 그러나 종.종. 휴대폰을 잊고 나오고, 그러면 지하철에서 휴대폰을 빌리고 남편을 소환하는 대소동이 벌어진다. 몇 차례 그래 왔고, 오늘도 바로 그런 날이었다.
휴대폰이 없는 걸 감지한 나는 지하철 사람들을 스캔했다. 조금 덜 바빠 보이고 착해 보이는 사람들을 골라 휴대전화를 빌려주십사, 했다. 모두 난색을 표하며 거절했다. 학생은 시간이 없다고, 아주머니는 휴대전화는 좀 그렇다고.. 그러면서도 이유는 다들 물어봤다. 안 빌려줄 거면 말지 왜 이유는 묻고 그런담. 아마 마음은 빌려주고 싶으나, 흉흉한 세상 탓일 게다. 워낙 휴대전화로 장난치는 나쁜 놈들이 많으니까. 암, 그렇지. 그렇고말고.
전에도 유일하게 빌려주셨던 편의점 아주머니를 어쩔 수 없이 다시 찾았다.
아주머니, 안녕하세요..(쭈뼛) 이전에도 한 번 빌렸었는데 휴대전화 좀....
이번에는 안되겠다고 단호히 거절하셨다. 그래도 친절하게 지하철 안내데스크에 부탁해보라고 해주셨다.
안내데스크에 가니 아저씨가 공중전화를 이용하란다. 공중전화할 돈이 있으면 여기에 왔겠니.. 장황하게 설명하고 겨우 전화기를 받아 들었다.
남편, 미안한데...
신랑의 꾸지람을 예상했으나, 의외로 별말 않고 요즘 수고가 많다는 따뜻한 위로를 주었다. 이 사람이 왜 이러지? 하면서도 한 켠이 든든하고 고마웠다.
카드지갑이랑 휴대폰을 따로 갖고 다니는 게 낫겠다 싶다. 다시 이런 일이 생기면 우리 동네 지하철에 소문나겠다. 분기별로 휴대전화 빌리는 여자가 있으니 조심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