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면 독박을 하는 나는, 날씨가 좋은데 집에만 있을 수 없어 놀이터로 향했다. 그것도 집에서 15분 여 거리에 있는 놀이터로. 가까운 놀이터는 코로나로 개방을 안 했고, 어린이대공원은 자주 가니 다른 곳을 가보고 싶던 차에, 오며 가며 봤던 놀이터가 생각나, 6세, 5세, 3세 세 아이를 이끌고 차도를 건너, 골목을 지나 지나 놀이터에 닿았다. 다행히 아이들은 신나게 놀아주었고, 그러던 중 문제의 애벌레를 큰 아이가 발견했다. 그 즉시 세 아이는 모든 행동을 멈추고 애벌레에 집중했다. 나뭇잎도 먹으라고 줘보고, 나뭇가지로 만져도 보고, 3세 막내 아이는 유튜브를 보듯 엎드려 볼 참이었으나, 그것만은 겨우겨우 말렸다.
애벌레 구경중인 아이들(맨 왼쪽은 동네 언니)쪼꼬미들이 애벌레의 출현을 알리자, 동네 초등 언니 오빠들도 하나 둘 와서 애벌레의 거처에 대해 논의했다. 대체로 남자아이들은 나뭇가지로 툭툭 건드려보거나 장난치려고 하는 데 비해, 여자 아이들은 애벌레도 생명인데 건들지 말라며 야단을 치는가 하면, 애벌레가 집까지 잘 가는지 봐야겠다며 걱정하기도 했다. 나 역시도 왠지 작은 생명을 아이들이 귀찮게 하는 것 같아, 그만 보고 가자고, 애벌레가 힘들어한다고 채근했으나, 30분은 족히 봤지 싶다.
문득, 이 애벌레가 누구의 것인지 궁금했다. 네이버 검색으로 사진을 찍어보았으나, 근처 나무가 검색된 건지 칡뿌리 따위만 나왔다. 나는 자연 박사 어머님께 의뢰했다. 요놈이 누구일까요?
어머님은 귀뚜라미와 호랑나비를 후보로 올렸는데, 나는 듣자마자 귀뚜라미에 한 표를 주었다. 일단 출현 장소가 나무 밑이였고, 귀뚜라미와 비슷한 다리 모양이 보였으며, 거뭇한 색깔도 투명 껍질 속에 보였기 때문이다. 갑자기 그 애벌레가 무척이나 징그럽게 느껴졌다. 과연 다 큰 귀뚜라미였어도 아이들이, 내가, 그렇게 따뜻하고 불쌍한 눈길을 줄 수 있었을까. 아마도 바로 도망가든지, 소리 지르든지, 잡히는 아무거나로 때려죽이든지, 했을 테다.
그러나, 귀뚜라미의 애벌레라는 걸 알았다 해도 귀뚜라미는 죽였을지언정, 애벌레는 해야 할 임무를 완수하도록 두었을 것이다. 모든 생명이 귀하고, 자라야 할 임무가 있고, 특히 갓 태어난 생명은 더없이 사랑스러우므로.
느닷없는 생명체 출현에 주말 내내 이 애벌레에 대해 곱씹은 것 같다. 때마침 나이 든 우리 아버지, 암투병 중인 아빠가 목욕탕에서 쓰러져 119를 부르고 응급실에 가는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나는 이렇게 가시나보다, 생각했으나 다행히 찰과상 정도라고 했고, 피를 많이 흘려 수혈은 하고 퇴원해야 한다 했단다. 수혈도 안 하겠다고 버티다가 엄마가 울고불고 설득해 겨우 수혈이라도 하게 된 아빠(이게 대체 설득할 일인지 이해가 안 된다.), 앉아서 하거나 씻겨줘야 한다는 엄마를 뿌리치고 혼자 일어서서 하려다 그대로 쓰러져 머리가 찢어진 아빠. 고집불통 아빠를 보고 있자니, 이렇게 엄마 고생시키며 목숨 부지하느니, 가시는 게 좋겠다, 라는 마음이 자꾸 드는 건, 이제 애벌레가 아닌 귀뚜라미를 보는 심정인 걸까, 뭐 이런 되지도 않는 생각들이 정처없이 오간다.
애벌레는 왜 자꾸 내 머릿속을 왔다 갔다 하는지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