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에 약한 나.
도서몰 검색창에 옅은 회색으로 '회사를 갈 수 없게 된'이라는 글자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돋보기를 누르고야 말았다. 원래 검색하려던 책은 일단 제쳐두고. 도대체 무슨 얘길까? 이 회사원은 어떤 사연이 있을까? 나처럼 회사원으로 사는 아줌마 얘긴가?
온라인으로 책을 고를 때는 일단 먼저 책 속으로의 문장들을 읽어본다. 오, 맘에 드는데? 싶을 때는 목차와 구매평을 꼼꼼히 살핀다. 혹시 읽어보니 별거 없더라, 는 평일 수도 있으니까. 오, 평도 좋네? 싶으면 미리보기를 눌러 맛을 본다. 합격! 이때부터는 이북으로 살까, 종이책으로 살까 고민이 시작된다. 책이 짐이 되고부터는 종이책보다는 이북 소장을 추구하는 편인데, 이북으로 안 나온 책들도 많고, 이북이라고 종이책보다 더 싼 것도 아니라(서점 직원이라 책은 좀 싸게 살 수 있다) 잠시 저울질을 해본다. 소장할만한 가치가 있을까? 한 번 보고 마는 책 아닐까? 좋은 책도 두 번 본적은 별로 없는 나의 성향으로 보아 종이책은 책장에 고이 모셔둘 게 뻔하다.
그런데도 이 책은 종이책으로 구매했다. 일단은 엄마의 [문화누리카드]를 소진해야 했기 때문이고, 둘 째는 누군가의 첫 작품은 종이책으로 구매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얼마나 공들이고 설레며 썼겠는가.
최근 일반인들이 내는 첫 작품을 곧잘 구매했다. 브런치 데뷔작들이 그러고 보니 많았던 것 같다. [90년생이 온다] [직장 내공] [엄마의 독서] [우리가 돈이 없지, 안목이 없냐?] 등의 책들을 읽었는데, 생각해보니 정여울 작가도 베스트셀러가 되기 전 [ 시네필 다이어리]의 데뷔작을 점찍어 두기도 했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나의 원래 일이 누군가의 '새로 쓴 글'을 리뷰하는 게 일이지 않았는가! 매력 있는 새 책을 찾는 게 일이었는데, 그 일을 하지 않아도 좋은 데뷔작을 보면 지금도 같이 설렌다.
이번 책은 무엇보다 에세이의 전형적인 형식이 아니라, 소설 같은 이야기 형식이 신선했다. 에세이가 이렇게 흥미진진하다고? 에세이에 대한 틀에 박힌 편견을 와르르 무너뜨리고, 아, 역시 난 아직 멀었어, 라는 자괴감도 들게 하는 그런 책이었는데, 여성이 화자인 에세이를 주로 보다가 비슷한 또래이자 남성의 내밀한 일기장을 훔쳐보는 기분이란! 남편 말고 내가 어떤 남자의 일상을 알 수 있겠는가! 특히나 혼자 사는 남자의 일상 같은 건 내가 알 바인가 싶었는데, 오 이건 한 장 펼치자마자 푹푹 빠져든다.
아직은 읽는 중이니,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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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엔 이 책만 완독 해야지, 생각하고 챙겨 왔는데, 너무 재밌어 새벽 2시 반경 완독 했다. 특히 에피소드로 등장하는 '시버러버'가 궁금해 죽겠어서, 에피소드만 따로 먼저 읽기까지 했다. 아니 이런 에피소드가 다 있나? 리뷰에서 다 읽고 보니 소설이었다며 깜놀했다던 독자가 있었는데, 에세이로 알고 봤던 나도 읽으면서 의심했다. 이게 실화야?
이 사람, 소설가가 돼야겠구먼!
아이들이 드디어 격리 해제가 되고 대공원에서 신이 나게 논 뒤, 죄책감 없이 이제 엄마도 책 좀 보마, 하는 심정으로 첫째 둘째가 좋아하는 '탁주쪼꼬'와 핸드폰 게임을 각각 쥐어주고 독서의 세계로 빠져들고 싶었으나, 나는 아이가 셋이었고, 막내는 아직 엄마를 찾을 일이 많았다. 주말 근무를 마치고 온 남편도 논문을 위한 독서 중이었으므로, 취미로 하는 독서를 하는 내가 뒤치다꺼리를 해야 했다. 얼른 완독을 하고픈 마음과는 달리, 집안일은 끝이 나질 않아 독서는 중도 포기하고, 아이들과 지지고 볶다 잠이 들었다.
윙-윙-
모기다! 며칠째 방에 모기가 들어와 밤마다 물어 대는데, 오밤중에 불을 환하게 켜놔도 잡지 못하기를 여러 날이었다. 새벽 한 시, 부스스 일어나 읽다만 책을 집어 들었다. 핸드폰 손전등을 켜고 남은 독서를 하며, 다시 소리가 나면 오늘은 기필코 잡아주겠다는 일념이었다.
다시 윙-
안 되겠다, 형광등 불을 딸칵, 켰다. 환한 불에 막내가 뒤척였다. 다시 책을 읽으며 모기가 눈앞에 보이기만을 기다렸다.
한 놈 날아갔다.
잡았다.
에잇, 수컷인가. 피 먹은 놈이 아닌데.
다시 기다렸다.
책은 다 읽었다.
퉁퉁한 놈이 막내의 얼굴 쪽으로 날아간다.
요놈! 잡았다!
고맙습니다 작가님, 며칠 안방에 기생하며 온 가족의 피를 빨아먹은 모기를 드디어 잡게 해 주셨습니다!
망원동에서 초등 시절을 보냈다.
아빠가 지금의 내 나이보다 조금 넘어 그곳에 교회를 개척했다. 지금은 힙한 동네가 되었다는 망원동은, 나의 유년시절이 있던 동네다. 골목골목을 휘저으며 아이들과 고무줄을 하고, 도둑잡기 게임을 하며 밤늦도록 놀았던 그 동네. 한강 고수부지로 나가 친구들과 롤러스케이트 경주를 신나게 했던, 여름이면 수영장으로 바뀌어 살이 새까맣게 타도록 물놀이를 했던 그 시절이 생각났다.
물난리도 나고, 지금은 공원이 되었지만 난지도 소각장도 있던, 그리 잘 사는 동네는 아니었던 망원동이 그렇게 잘 나간다고. 힙해진 뒤로는 가본 적이 없어 실감은 못하지만, 사람들이 부러 찾는 좋은 동네가 되었다니 한 번 놀러 가봐야 하나.
선택이 쌓여 인생이 되었다.
평범한 선택지를 골랐으나 평범하지 않았다던 작가의 삶이 결국은 글을 써야만 하는 길로 가려고 그랬나 보구나, 싶었다. 교회에서는 이런 걸 '인도하심''섭리'라고 자연스레 얘기하는데, 글로는 어떻게 멋있게 맛있게 표현하는 건지 모르겠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이 땅에 살면서 크든 작든 내 몫으로 던져진 무언가는 해야하는 운명같은 게 있다고 생각한다. 겉핡기식 인생은 만족감이 없다. 뭘해도 뭔가를 더 해야할 것 같은 공허함이 따라온다.
마흔이 별건가 싶었다. 삼십 초에서 생각했던 일들을 별로 이루지도 못했고, 결혼과 육아로 정신없이 달려왔기에 정신적으로는 그 때와 달라진게 없었다. 이 책을 읽으니, 아 그런데,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이제는 하고 싶다,라는 마음. 누구나 하는 평범한 선택들따라 다 해봤으니, 이제는 누구 눈치도 보지 말고 내 삶을 살자는 마음. 이게 마흔이라는 생각이 든다. 홀몸은 아닌지라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선택은 어렵겠지만 나의 찐인생은 어떻게 채워야 할까, 생각하는데, 일찍 잠들었던 둘째가 잠이 깨 울면서 건넌방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린다.
자는 척을 해야겠다. 얼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