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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박씨 Nov 28. 2017

역지사지

소설 [아버지와 아들] 중에서


남편은 종종 아들한테 말한다.  

   

“하랑아, 너는 좋겠다.

아빠는 아빠가 하나도 안 놀아 줬는데,

너는 이렇게 아빠가 잘 놀아주잖니.”     


나도 종종 비슷한 생각을 한다. 내가 받고 싶었던 사랑을 내 자식에게는 주겠노라고.     


그게 바로 착각이다.

우리의 부모님 역시 우리에게 최선의 것을 주고자 얼마나 고군분투하며 살았겠는가.     


형님, 제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세요?
돌아가신 어머니랑 논쟁하던 일이 떠올랐어요.
어머니는 역정을 내면서 제 말은 들으려고도 하시지 않았지요.
결국 저는 어머니가
날 이해하지 못하는 거라고,
우리는 서로 다른 세대에 속해 있다고 내뱉고 말았어요.
어머니는 몹시 상처를 받으셨겠지만
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지요.
약은 입에 쓰지만 삼켜야 하는 법이니까요.
그런데 이제 우리 차례가 되었군요.
뒤를 이을 사람들이 와서
우리와는 세대가 다르다고,
어서 쓴 약을 삼키라고 하는 거예요.

-본문 중에서     



부모 자식간에만 그럴까.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파릇파릇하게 생기 넘치는 모습으로 출근했던 때가 생생한데, 이제는 푸르죽죽 시들어가는 모양으로 신입들을 맞이하고 있다.     


오늘은 후배가 조용히 할 말이 있다며 불러냈다.

신입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생 초짜만이 할 수 있는 천진난만 순진무구한 행동과 말들에 대해 선배님이 말을 좀 해줘야 하지 않겠냐는 거였다.

주의를 주긴 해야겠노라며 돌아서는데

막상 내 신입시절이 생각나,

하려던 말을 주워 담았다.  


“까르르 3인방”이라고 불릴 만큼 해맑던 신입시절.

밥 먹자는 사람도 많고, 밥 사준다는 사람도 많고, 업무이야기도 긴장감 없이 하하호호 포부와 열정으로 이야기하곤 했다. 그러면서 정체되있어 보이는 선배들이 못마땅하기도 했다. 왜 그렇게 고인물처럼 있는걸까 하면서.


지금 그 선배들은 임신 출산과 맞물려 일찌감치 그만 두었고, 동기들은 육아휴직에 들어갔고, 나머지는 이제 과장급 이상이거나 까마득한 후배이거나. 업무이야기엔 손익계산이 앞서 말 꺼내기 조심스럽고, 이제 갓 졸업한 앳된 후배와는 편하게 지내고 싶으나, 그들이 나를 불편해한다는 걸 어렴풋이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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