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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박씨 Sep 12. 2015

간절하게, 더욱 간절하게

9. 11 (금) 나는 성실하고 싶다.

머릿속에서만

"해야지, 해야지"맴돌다가는,

밤 12시가 넘어서야

책상에 겨우 앉아 컴퓨터를 켰다.


글을 써야지 써야지,

하는 순간은 다름 아닌 마음이 복닥거릴 때다.

누군가에게  상처받았을 때,

인생의 갈림길에 있을 때,

크나큰 의지가 솟구칠 때,

그런 때 나는 책과 글에 의지한다.


오늘도 그랬다.

단체 카톡으로 친구들과 별것 아닌 수다를 한창 늘어놓다가는,

혼자 괜히 답답해졌다.

오랜 친구들이지만은,

언제까지 우리가 함께 이렇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하는 생각.

참 다르구나 하는 생각.

하지만 다를 것도 없다는 생각.

그러면 나는 어떻게 내 생각과 의지를 지켜나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뱃속에 아이가 있는 나에게 친구가 물었다.


"넌 니 애 어떻게 키울래?

 착한 오지랖으로 키울래, 약삭빠른 실속파로 키울래?"


굳이 둘 밖에 조건이 없다면,

착한 오지랖에 한 표를 던졌다.

그래도 인성이지 하면서.

친구는 더 깊이 들어간다.


"지꺼 하나도 못 챙기고 다 양보하라고 할 거야?

실없는 오지랖으로 살아도 괜찮다고? "


원래 극단적 상황에서 선택하기를 즐겨 이야기하는 대화방식이기 때문에,

진지하게 답하기도 겸연쩍어서 그냥 대충 얼버무렸다.


"야, 내 애는 건드리지 마라."


이야기는 자연스레 자식들의 교육 이야기로 이어졌다.

삼십 중반의 아줌마들 이야기는 어쩔 수 없나 보다.

언제부터 영어교육을 시키는 게 좋다더라,

돈은 얼마나 든다더라,

영어 하나로 연봉이 달라진다더라,

역시 부자는 대물림인가 보다...

대화에 피로감이 몰려와 그 후부터는 카톡 창을 닫아 버렸다.


 '아이의 자유의지에 맡기겠다,

학원은 보내지 않겠다,

공부나 돈보다는 인성이 바르고 곧은 아이,

사랑할 줄 아는 아이,

행복한 아이로  키우겠다'라는

막연한 생각들 뿐이지만,

그래도 돈과 출세가 전부인 듯한 대화는 저급하게도 느껴지고,

나는 다르다는 생각을 지키고만 싶었다.

그런데 과연, 내가 다르기나 할까?

내가 세상물정 모르는 생각에 빠져있는 건 아닐까?


내가 오늘 컴퓨터를 기어이 키고 만 이유다.

지켜낼 수 있는 힘은, 기록에서 나온다고 믿기에.

간절하게도 성실하게 글을 써 내려가고 싶다.

간절하고 또 간절하게.




잘해야 삼류 이상은 되지 못한다고 해봐요.
그걸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할 가치가 있겠습니까?
다른 분야에서는 별로 뛰어나지 않아도 문제 되지 않아요.
그저 보통만 되면 안락하게 살 수 있지요.
하지만 화가는 다릅니다.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 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 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달과 6펜스 본문 69쪽 중에서]



아직 생생하다.  
『달과 6펜스』를 읽으며
밑줄 박박, 메모하며 읽었던  그때가.
재능, 완벽, 성취 따위의 것들이 발목을 잡았다.
하면 무엇하느냐고.
너보다 잘 쓰는 사람들이 세고 셌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상관이랴.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는데.
글은 나의 숨구멍이지 않은가.
개의치 말고
용기 있게, 성실하게,
그리고 간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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